'썸'이라고 생각했던 그 남자, 사실은 '엔조이(?)'라니…

Style M  |  2014.11.16 11:11  |  조회 865

[김정훈의 썸⑨]호구남녀 vol. 2 - 남자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썸. 묘한 단어가 등장했다. 짜릿한 흥분과 극도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롤러코스터 마냥, 탈까 말까 망설여지기도 하고. 간질 간질. 정체를 알 수 없는 간지러움에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랑만큼 떨리지만 이별보다 허무한 '썸'. 그리고 편식남 편식녀를 비롯한 그 밖의 다양한 '썸'에 대한 연애칼럼니스트 김정훈의 토킹 릴레이.


영화 '연애의 목적'의 한 장면/사진=CJ엔터테인먼트


며칠 전 소바로 유명한 일식집에 가게 됐다. 인기 비결은 밀가루와 메밀 비율을 2:8로 섞은 '니하찌반죽'으로 만든 면이라고 했다. 맛있었다. '미슐랭 도쿄판'에 실린 대부분의 소바집들이 니하찌반죽을 사용한다는 지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파레토의 법칙을 떠올렸다. '20%의 상위고객이 80%의 수익을 창출한다', '20%는 트렌드를 선도 하지만 80%는 트렌드를 따라 간다' 등 2:8의 비율은 낯선 게 아니었다. 이 법칙은 남녀사이에도 적용된다. 이성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선수들은 2:8의 비율을 적절히 유지한다.

성공하는 작업은 20%의 진심과 80%의 행동으로 이뤄진다. 한 쪽이 안달 나 있는 남녀의 카톡창을 살펴보면 대화 비율이 2:8 정도인 걸 확인 할 수 있다. 이 마법의 비율을 잘 유지하는 사람이야 걱정이 없겠지만 당하는 쪽은 늘 애가 탄다. 호구녀 이야기를 모집하다보니, 2:8의 법칙을 잘 활용하는 남자들에게 휘둘린 안타까운 사연이 많았다.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할 순 없어도 그녀들의 공통점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란 말의 해석을 잘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신의 기대처럼, 그가 '아직' 당신에게 반하지 않은 거라면 적어도 그는 당신이 서운함을 느끼게 놔두진 않을 거다. 썸남이 당신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면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그는 애초부터 당신에게 반할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는 것을. 그런 남자와는 시작조차 말았어야 했다. 썸이라고 믿던 시간이, 그에게는 엔조이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마주 하기 싫다면 다음의 두 가지는 확실히 기억해야 한다.

똑똑한 척 하는 남자보다 무서운 건 멍청한 척 하는 남자다. 똑똑한 사람은 멍청한 척 하는 연기를 완벽히 할 수 있다. 하지만 멍청한 사람이 똑똑한 연기를 하려 할 땐 확실히 티가 난다. 그 어설픔은 누구나 눈치 챌 수 있는 것으로 딱히 뛰어난 통찰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어설픔을 잘 발견한다고 해서 '나는 남자를 잘 파악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는 여자들이 많다. 뚜렷한 직관에 확신이 있는 여자, 자신이 남자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여자일수록 똑똑한 선수들에게 휘둘리기 십상이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다.

[클럽. 여자는 끊임없이 집적대는 수컷들을 피해 소파에 앉았다. 대놓고 스킨십을 시도하거나, 속내가 뻔히 드러나는데도 그렇지 않은 척 하는 수컷들이 안타깝다며 친구들과 코웃음을 친다. 그러다 여자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몇 번 눈이 마주쳤지만 자신에게 다가오진 않고 있는 남자. 깔끔한 외모 탓에 그에게 들이대는 암컷들이 꽤 보인다. 하지만 남자는 관심이 없는 듯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여자는 남자와 또 눈이 마주친다.

남자의 친구와 여자의 친구가 섞여 놀기 시작했다. 남자는 절제된 웃음과 함께 여자에게 술을 샀다. 딱 거기까지였다. 남자는 여자에게 전혀 집적대지 않았다. 내 매력이 부족한 건가? 여자는 남자의 속내가 궁금하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남자는 이런 곳에서 사람만나는 일이 익숙지 않단다. 심지어 요즘에는 딱히 연애를 할 생각도 없다고 한다.

그리고 '당신과는 편한 친구처럼 대화를 할 수 있어 좋다'고 덧붙였다. 괜찮은 학벌과 직장을 갖췄고, 유머도 풍부한 이 남자가 싫지 않은 여자다. 경계심은 사라졌다. 여자는 그와 친하게 지내고 싶단 생각이 든다. 굳이 연인이 아니라 해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쯤 되면 여자의 연락처를 물어볼 만도 한데 남자는 그러지 않는다. 여자가 연락처를 주고받고 싶단 신호를 보내보지만 남자는 바보같이 눈치를 못 챈다. 순진한 거야 뭐야?

결국 업무를 구실삼아 명함을 주고받게 된 남자와 여자. 다음 날 여자는 남자에게서 메시지를 받는다. '밥 먹으면 좋긴 한데 야근 때문에. 술이나 한 잔 할까?' 여자는 늦은 시간이 맘에 걸리지만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다른 남자들과 다르니까', '가볍게 만나 즐길 능력이 얼마든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욕망을 억제할 줄 아는 어른스런 남자니까', '나를 여자로 보는 것 같지도 않고 어쨌든 관계는 내가 컨트롤 하면 되니까']

위의 남자가 다른 수컷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의 불행은 시작된다. 똑똑한 남자는 여자들이 좋아할 매력을 갖추고 있다. 모든 똑똑한 남자들이 재밌는 건 아니지만, 재밌는 남자는 대부분 똑똑하다. 학벌이나 직업이 좋을 확률도 높다. 자신감이 있고 철저한 자기관리는 물론이다. 그 매력에 이끌리는 것 자체가 문제 되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우연이 아닌, 그의 철저한 계산이란 가능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

여자가 진짜 조심해야 하는 남자란 '있는 척 하는 남자가 아니라 없는 척 하는 남자'다. 관심, 매력, 재력 그 모든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입으로는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 말하며 눈은 계속 당신을 쫓는다. 당신이 마치 그의 관심을 이끄는 유일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전달하는 거다. 여기서도 20:80의 법칙이 적용된다. 그들은 매력적인 행동을 충분히(80%) 하지만, 진정성은 적당히(20%) 드러낸다. 80%의 행동은 당연히 능숙하다.

하지만 그걸 강조하진 않는다. 굳이 20% 이상의 진정성을 드러내며 부담스럽게 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들은 20%의 진정성을 가장 극적으로 내보일 순간, 무심한 듯 시크하게 당신의 심장에 자극을 줄 그 순간을 기다릴 뿐이다. 빠른 시간에 목적을 달성하려는 남자일수록 그 끼는 다분하다. 올라운드 TKO승을 노릴 게 아닌 이상, 잽보다는 카운터블로가 효과적으로 상대를 다운시킨다는 걸 알고 있는 거다.

'원래 안 그랬던 사람인데?', '나한테 이렇게 까지 했는데?'와 같은 고민들은 시간낭비다. 똑똑할수록 목적지향적인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모르는 척, 사랑의 바보인 척 하는 행동도 마다않는다. 하지만 그 후엔 180도 바뀐다. 섹스 후 썸남이 시들해지거나 냉정한 행동을 보인다면 더 이상의 기대는 하지 말자. 그는 더 이상 당신과 시간을 보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가 보여준 20%의 진정성, 그것 역시 애초부터 연애가 아닌 섹스를 향해 있었던 거다. 여자들의 숱한 고민에 대한 남자들의 대답이 "잤네 잤어"로 귀결 되는 건 농담이 아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선수라고 해도 내가 휘둘리지 않으면 되는 거 아냐? 관계는 내가 주도 하는 건데 뭘'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들에게 남자들이 쉽게 접근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너도 나랑 똑같은 목적인줄 알았지'라는 구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남자들이 섹스에만 혈안이 돼 있는 것은 아니다. 똑똑한 남자가 전부 선수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자들이 염두해야 할 또 다른 사항 한 가지는 대부분의 남자에게 적용된다. 나쁜 남자는 착한 남자가 되려 노력할 수 있지만, 착한 남자가 당신에게만 나쁜 짓을 할 리는 없단 사실이다. 이건 편식남의 탄생 과정과도 관련이 있다. 다음 주에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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