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핫트렌드]'게이 유전자' 있을까…동성애 연구 '20년 논쟁'

<1>한쪽이 게이인 男일란성 쌍둥이 47쌍 타액 DNA 검사에서 동성애자 가능성 67% 예측

박솔 객원기자  |  2015.10.18 17:13  |  조회 9948
미래에는 어떤 분야가 유망할까? 미래 주도권의 열쇠가 될 원천기술은 무엇일까? 사물인터넷(IoT), 소셜미디어, 3D 생산, 바이오신약 등 모든 산업분야의 게임 규칙을 확 바꿀 과학계의 연구개발(R&D) 트렌드를 짚어봅니다.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세상의 시선이 과거와는 달라지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바다 건너 어느 곳에서는 동성애 커플이 결혼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염색체 모양에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색을 입힌 그래픽/사진=위키미디어
염색체 모양에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색을 입힌 그래픽/사진=위키미디어
동성애 성향은 어떻게 유발되는 것일까? 동성애 성향을 유발시키는 데 생물학적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생각은 20년 전부터 있었지만 '게이 유전자'의 실체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사실 동성애 성향을 가지는 남성의 일란성 쌍둥이 역시 동성애 성향을 가질 확률은 20~50%밖에 되지 않는다. 때문에 요즘은 '게이 유전자'를 찾기보다 동성애 성향을 유발하는 후생유전학적 요인이 더 중요할 것이라는 주장이 점점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최근 유전자(DNA) 검사로 특정 남성의 성 정체성이 동성애자(게이)인지를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주 미국 볼티모어에서 열린 미국 인간유전학회(ASHG; American Society of Human Genetics)에서 캘리포니아 대학 로스엔젤레스의 에릭 빌레인(Eric Vilain)교수와 턱 응운(Tuck Ngun) 박사 연구팀은 둘 중 최소 한쪽이 게이인 남자 일란성 쌍둥이 47쌍의 타액을 채취해 DNA를 분석한 결과 동성애자의 가능성을 정확하게 67% 예측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게이 유전자'는 정말 존재하긴 하는 걸까?

최초로 '게이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주장한 사람은 미국 국립 암센터의 유전학자 딘 하머(Dean Hamer)다. 1993년 하머 박사는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과 그 형제 38쌍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그는 X 염색체의 'Xq28'이라는 위치에 존재하는 유전자가 동성애 성향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결과를 재현하려던 수많은 시도들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심지어 10배 큰 규모의 표본 집단을 대상으로 수행된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하머 박사의 연구 결과는 끝내 신뢰를 얻지 못했다.

그 후 노스웨스턴 대학의 심리학자 마이클 베일리(J. Michael Bailey)와 노스쇼어 대학에서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던 알란 샌더스(Alan Sander)가 2004년부터 5년에 걸쳐 새로운 분석을 시도했다. 총 409쌍의 동성애 성향을 가진 형제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이 연구 결과는 놀랍게도 과거 하머 박사가 지목했던 것과 같은 'Xq28'지역과 8번 염색체상의 또 다른 부분이 동성애 성향에 관련 있다고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대학 샌프란시스코의 유전학자 닐 리쉬(Neil Risch)는 당시 '사이언스'지를 통해 베일리와 샌더스의 연구 결과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고, '게이 유전자'에 대한 의심은 계속됐다.

◇"게이 유전자가 아니라 후생유전학적 표지가 동성애 유발"

2012년에는 드디어 캘리포니아 대학 산타바바라의 진화유전학자 윌리엄 라이스(William R. Rice)에 의해 '게이 유전자'가 아니라 후생유전학적 표지가 동성애를 유발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라이스 박사는 아빠에게서 딸로, 또 엄마에게서 아들로 후생 표지자가 전해지는 경우 동성애 성향이 유발될 수 있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이 가설에 따르면 표지자가 태아의 자궁 내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 민감도에 영향을 줘 여자아이의 뇌를 남성화시키거나 남자아이의 뇌를 여성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턱 응운 박사후 연구원 주도로 수행된 이번 연구는 동성애 성향을 가지는 47쌍의 일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47쌍 중 두 명 다 게이인 경우가 10쌍, 둘 중 한 명이 게이인 경우는 37쌍이었다.
동성애자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무지개색 깃발
동성애자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무지개색 깃발

연구진은 DNA의 14만개 지역에 대한 메틸화 패턴을 분석하여 다섯 곳에서 동성애 성향과 매우 관련이 깊은 패턴을 찾아냈다. 또, 분석한 패턴 정보로 동성애 성향을 예측해보니 그 정확도가 70%에 가깝게 나타났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번 연구 결과는 ‘게이 유전자’를 찾아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태아의 발생 과정에서 염색체는 화학적 변화를 겪으며 유전자의 발현 수준이 조절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메틸화다. 즉, 이번 연구는 동성애 영향을 유발하는 후생유전학적 요인을 찾아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여전히 '게이 유전자'의 실재여부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빌레인 교수와 연구진은 지난 9일 '사이언스'지를 통해 이번에 발표한 연구 결과가 동성애 성향을 인위로 조작하는 등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반면 베일리 교수는 이런 오용 사례는 걱정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어떤 경우라도 가설 또는 특정 사례에 기반해 성적 방향성의 근원에 대한 연구가 제한되어선 안 된다는 점을 더 강조했다. 또, 유전체의 구성이 동일하고 발생 과정을 함께하는 일란성 쌍둥이가 왜 다른 메틸화 패턴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앞으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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