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미수 청년에 "살아달라" 판결문으로 호소…세상 울린 판사

머니투데이 이은 기자  |  2022.06.15 22:50  |  조회 10551
/사진=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 화면 캡처
/사진=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 화면 캡처
2019년 울산 3인 자살 미수 사건 재판에서 따뜻한 판결문으로 세상에 울림을 전해 화제를 모았던 박주영 판사가 판결 당시를 떠올렸다.

15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똑바로 살기' 특집으로 꾸며진 가운데,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박주영 판사가 출연했다.

이날 MC 유재석은 박주영 판사를 "판결문 하나로 법정을 울리고, 세상에 울림을 주는 판사"로 소개했다. 16년째 판사 생활중인 박주영 판사는 따뜻한 판결문으로 뉴스에도 등장한 바 있는 화제의 인물이었다.

박주영 판사는 자신이 판결을 내린 2019년 울산 3인 자살 미수 사건에 대해 "혼자 자살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피고인들이었는데, 혼자서는 안 되겠다 생각한 한 피고인이 SNS에서 자살할 사람을 모집했던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3명이 모여서 울산 여관방에서 같이 자살을 시도했으나 그 중 한 친구가 마음을 고쳐먹고 다른 사람을 깨워 자살미수에 그쳤다. 한 사람은 의식 불명에 빠져서 응급실에서 도망갔고, 두 명만 기소돼 법정에 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공소장만 읽어보는데 가슴이 덜컥 내려앉더라. 피고들 나이를 보니까 20대 초반, 30대 초반이었는데, 자살 미수에 그쳤기 때문에 대부분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사안이다. 근데 이렇게 그냥 석방했다가는 또 나가서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이 농후해 보여서 대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박 판사는 또 "피고인들의 환경이나 처한 상황에 대한 조사를 보호관찰소에 부탁을 했다. 피고는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고 학업도 제대로 못하고 의지할 사람은 여동생과 엄마뿐이었는데, 여동생이 결혼해 유일하게 기댈 사람이었던 어머니가 군 제대 후 돌아가시면서 계속 자살을 시도하다 온 사건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판결문에 대해 "어떻게든 저는 법정에서 삶의 의지가 될 만한 얘기들,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방법을 강구했었다"고 덧붙였다.

/사진=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 화면 캡처
/사진=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 화면 캡처
유재석은 당시 박 판사의 판결문의 일부를 읽어나갔다.

"밖에서 보기에 별것 없어보이는 사소한 이유들이 삶을 포기하게 만들듯 보잘것 없는 작은 것들이 또 누군가를 살아있게 만든다", "비록 하찮아 보일지라도 생의 기로에 선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대책은 그저 그에게 눈길을 주고 귀기울여 그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당시 박 판사는 청년들을 위해 재판날 편지와 책 두 권, 용돈 20만원을 준비했다고 했다.

그는 "책은 준비해 갔었는데, 돈은 줄 생각은 없었다. 구속된 피고들에게 '영치금이 얼마있느냐' 물어봤는데 7만원 정도 있다고 하기에 차비는 될 것 같은데 넉넉하지는 않을 것 같아 주머니에 있는 20만원을 책에 끼워서 줬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출소하자마자 나쁜 선택을 할까봐 걱정이 돼서 동생 집으로 빨리 가고 조카에게 줄 선물 사서 가라고 당부했었다"고 했다.

박 판사가 청년들에게 쓴 편지 내용도 공개됐다.

유재석은 "피고인들의 삶과 죄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전에 형의 선고로 모두 끝이 났다. 이후의 이야기는 여러분이 각자 써 내려가야 한다. 설령 앞으로 채워갈 여러분의 이야기가 애달프다 해도 이야기는 절대로 도중에 끝나서는 안 된다. 저희는 여러분의 못다한 이야기가 너무도 궁금합니다"라는 편지를 읽었다.

박 판사는 "판결 후 홀가분하게 퇴근을 했다. 피고인은 여동생 집으로 갔다고 한다. 6개월 후에 보호관찰소에 피고인의 상태를 물어봤는데 심리 치료 잘 받고 있고, 새로 찾은 일도 잘 하고 있다더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 이후로 1년 쯤 지나서 계속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여동생 분이 그때 판결 뉴스를 유튜브로 보고, '너무 잘 지내고 있고, 지금도 당시 재판 이야기를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는 댓글을 봤다. 말할 수 없이 기뻤다"고 전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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