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원으로 시작한 패션사업, 9년만에 해외시장서 주목

[스타일M 인터뷰] '소울팟 스튜디오' 김수진 디자이너

머니투데이 스타일M 배영윤 기자  |  2015.12.21 07:52  |  조회 11798
/사진=홍봉진 기자
/사진=홍봉진 기자
"보편적인 것이 반드시 타당하지는 않더라고요. 저는 타당한 것이 보편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을 거예요."

사유하는 디자이너.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디자인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디자이너. 브랜드 '소울팟스튜디오(Soulpot Studio, 이하 '소울팟')'를 이끄는 김수진 디자이너다. 이제 갓 서른을 넘겼지만 패션계에서 잔뼈가 굵은 9년차 디자이너다.

'소울팟'은 영화에 비유하자면 다양성 영화 혹은 독립영화다. 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하지만 그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김수진 디자이너는 지난 10월 열렸던 2016 S/S 헤라서울패션위크가 끝나기 무섭게 곧바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넘어가 컬렉션 '두탕'을 뛰었다. 해외 전시 경험은 다수 있었지만 쇼는 처음이었다. 자카르타 인기 디자이너 패트릭 오웬과 협업해 컬렉션의 메인 무대를 장식했다.

"자카르타 패션위크는 프레스그룹 주최인데 이들이 자국 디자이너에 쏟는 애정과 관심은 엄청나요. 그들이 패션씬을 키워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아시아권 중에서도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는 곳이다보니 컬렉션도 다채롭고 그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입니다. 한국과의 시스템 차이도 느꼈죠."

'소울팟'의 옷이 그렇듯 그녀의 말에도 단단함이 묻어났다. 지난 2016 S/S 컬렉션 '소울팟'이 전하는 서울 이야기의 마지막편이었다. 재개발, 세월호 등을 다뤘던 앞선 두 시즌에 이어 'Wild Flower'라는 주제 아래 서울에서 크리에이터로 살아가는 이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영상과 의상들이 어우러지는 한편의 '공연'이었다. 패션쇼에 가면 주목을 받는 맨 앞줄의 셀러브리티, VIP 손님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 순간 만큼은 관객, 모델, 디자이너 모두가 평등한 채로 오로지 쇼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만이 주인공이었다. 울림이 있는 메시지에 관객들은 쇼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남다른 방식의 쇼를 선보이는 것에 대해 김수진 디자이너는 '화법의 차이'라고 말했다. "옷은 화법의 하나예요. 관객에게 무슨 말을 어떤 방법으로 전달할 것인가가 중요하죠. 컬렉션을 준비할 때 메시지를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공간과 장면을 기획하고 퍼포먼스를 구상합니다. 옷은 메시지를 뒷받침하는 '플롯'과 같은 역할을 하죠."

/사진=홍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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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녀가 작가주의를 연구하는 미디어아트 전공자인 것과도 관련이 깊다. 어떻게 하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내린 결론이 '옷'이었던 것. "옷은 내 몸에 가장 가까운 물질이잖아요. 우리가 입고 있는 옷들은 자본주의의 표상이면서 하루의 내 기분을 좌우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죠. 옷이야 말로 사회적인 힘이 큰 '미디어'라 생각했어요."

대학 재학시절 단돈 30만원으로 만들어 판 그래픽 티셔츠가 소울팟의 시작이다. 처음에는 무브먼트 브랜드를 만들 생각이었다. '시즌' 대신 '이슈'라는 개념으로 캠페인을 진행하듯 꾸려갔다. 티셔츠로 부족해 점점 아이템을 늘렸다. 이슈에 맞는 메시지를 정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영상과 사진, 옷, 액세서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점점 패션 브랜드로써 윤곽이 잡혔다. 3~4개 시즌 컬렉션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긴 호흡으로 스토리를 이어가는 독창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다.

"의상을 따로 배운 적은 없고 책을 보고 공부했어요. 제 옷 중에 남아나는 옷이 없었죠. 책만 봐서 알 수 없으니 일일이 해체하면서 공부했죠. 못 만드는 옷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한계가 없었어요. 그래서 움직일 때 만들어내는 공간이 다양한 옷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옷을 입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소울팟의 옷이죠."

/사진=홍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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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컬렉션 데뷔'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없었다. "세상이 내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너무 빨리 알아버렸지만 그게 오히려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내 속도를 지키고 내 신화를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내가 밟고 넘어가야 할 것들을 거스르지 말자 생각했죠.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늘 생각하면서 꿋꿋하게 왔습니다." 지금의 소울팟이 다른 브랜드와 구별되는 뚜렷한 색깔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수진 디자이너는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도 영감을 얻는다. 우리네 아버지들의 퇴근길 뒷모습, 좌판에 직접 기른 나물을 내놓고 주름진 손으로 손님을 부르는 어머니들의 모습, 팬들이 전하는 이야기가 모여 '메시지'를 만드는 뼈대가 된다.

2년여에 걸쳐 우리가 발 붙이며 살아가는 도시 이야기인 '서울 프로젝트'를 마쳤으니 다음 프로젝트가 궁금했다. "'본(Born)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나'에 대한 보편적인, 좀더 '오리진(origin)'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몇개 시즌에 걸쳐 풀어갈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6개월 한 시즌만에 어떤 이야기를 깊이 있게 풀어내는 건 어려우니까요."

'혼(soul)'을 담는 '그릇(pot)'이라는 브랜드 이름은 그녀의 다짐이기도 하다. 소비재나 소모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다. '세일즈'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브랜드의 숙명이다. 소울팟 만의 색깔과 트렌드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며 최적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결핍돼 있는 것들을 얘기하는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마음은 앞으로도 변함 없다. 단순한 패션 브랜드가 아닌 큐레이션을 통해 다각적인 체험을 제공하는 브랜드가 되겠다는 목표도 뚜렷하다.

"다양성 없이는 그라운드가 절대 클 수 없다고 생각해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획일화를 택하지만 그건 단편적인 결과를 얻을 뿐 시장을 키우는 장기적인 힘이 될 순 없어요.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소울팟 같은 브랜드는 없었는데 지금은 꽤 많이 볼 수 있어요. 그런걸 보면 꽤 긍정적이죠."

좋은 브랜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는 김수진 디자이너. 소울팟처럼 세상에 꼭 필요하지만 결핍돼 있는 작은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브랜드가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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