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EU FTA 발효…그래도 명품은 올라

FTA 가격인하 효과 없어…일부 명품 "오히려 가격 인상"

머니투데이 이명진 기자  |  2011.07.01 16:40  |  조회 217684
머니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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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조미정(39)씨는 모처럼 백화점 나들이에 나섰다. 한·EU FTA(자유무역협정)가 발효 된다는 뉴스가 떠들썩해 평소 점찍어 둔 유럽산 명품 백을 사기 위해서였다. 관세가 없어진다기에 그녀는 몇 달을 기다렸다. 하지만 가격표를 본 그녀는 당황하고 말았다. 그녀의 계산으로는 적어도 8%는 내려갔어야 하는 가격이 웬일인지 지난달보다 5%나 올라 있었다.

1일 한·EU FTA(자유무역협정)가 공식 발효됐다. 소비자들은 관세가 철폐되면서 의류·가방·신발·시계 등 유럽산 명품을 이전보다 값싸게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가격 인하는 없었다.

FTA 내용대로라면 유럽산 의류(13%)와 구두(13%), 가죽가방(8%)등은 관세가 즉시 철폐되거나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폐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관련 업체들은 가격을 내릴 기미가 안 보인다. 오히려 일부 이름 있는 명품브랜드들은 가격을 인상했다.

이유가 뭘까. 업체들은 고급 이미지 유지를 위해 여전히 고가 전략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또 EU브랜드라 할지라도 제3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FTA의 효력이 못 미친다는데 그 한계가 있었다.

◇ 명품 "원가 상승분 반영하면 비슷해져" 고가전략 고수

루이비통은 FTA 발효 1주일을 남겨둔 지난 24일 제품가격을 평균 4~5% 정도 올렸다. 지난 2월에도 가격을 올렸던 루이비통은 불과 4개월 만에 또 다시 제품가격을 올린 것이다. 샤넬도 지난 5월 제품 가격을 올렸다. 2년 반 동안 4번을 인상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FTA 이후의 가격 인하 분을 미리 올린 것 아니냐는 의견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루이뷔통, 샤넬 등 유럽 명품 브랜드들은 가격을 올리기만 할뿐 지금까지 FTA에 대한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에르메스 등 대부분 명품업체들은 "결정된 것이 없다"라는 답만 줄곧 내놨다. 일부 업체들은 "가격인하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거나 "관세 인하분 만큼을 마케팅 비용에 투입할 생각"이라고 답해 아예 가격을 내릴 생각이 없음을 시사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명품브랜드들이 고급 이미지와 고가 전략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가격을 고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루이비통 관계자는 "가격인상은 글로벌 정책에 따라 한국과 프랑스 등에서 일제히 올린 것"이라며 "FTA로 인해 한국만 가격을 내릴 수는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명품브랜드의 특성상 자동차와 달라 제품의 가격을 내린다고 매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브랜드마다 우선하는 가치가 다르다"라고 말했다.

샤넬코리아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어 당장은 (가격인하) 혜택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보테가베네타 관계자도 "가격을 인하할 예정이 없다. FTA 발효 후라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 한 전문가는 "올 초 섬유 등 원자재 가격이 10%정도 올라 관세 철폐가 제품가격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일부 명품업체들은 관세가 13%인 의류의 경우에 한해서만 단계적으로 가격 인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명품브랜드 한 관계자는 "루이비통과 샤넬이 몇 십만 원 차이가 난다고해서 브랜드를 바꿔 구매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명품 수요는 가격에 비탄력적(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줄지 않음)이어서 여전히 고가전략을 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브랜드 관계자는 "명품이 너무 대중화되는것을 글로벌 본사에서 걱정하기 때문에 고가 제품을 강화해야 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더 강하다"라고 귀뜸했다.

소비자 김소영(36)씨는 "관세 인하로 얻는 이익은 이익대로 가져가고, 가격을 추가 인상해 소비자들로부터도 더 많은 돈을 받겠다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 EU 브랜드라도 제3국 생산·유통제품 효력 못 미쳐

EU지역 브랜드라 해도, EU 지역에서 디자인한 뒤 스위스·홍콩·중국 등 제3국에서 생산했다면 관세 인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구찌코리아 관계자는 "구찌 제품은 EU 외 국가인 스위스를 거쳐 유통되기 때문에 (한-EU FTA 발효에 따른) 관세 혜택이 없을 것"이라며 가격을 내릴 의향이 없음을 시사했다.

최종 선적도 EU지역에서 해야 혜택이 돌아온다는 점도 한계다. 구찌·보테가 베네타·입생로랑·발렌시아가·알렉산더 맥퀸 등이 속해 있는 PPR그룹의 경우 디자인은 이탈리아에서 하지만 생산은 제3국에서 물건 선적은 스위스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이번 FTA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버버리와 프라다는 홍콩을 경유해 수입하기에 역시 FTA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명품업계 한 관계자는 "버버리와 프라다 등 많은 브랜드들이 중국, 모로코 스칸디나비아 등 제3국가에 공장을 두고 생산을 한다"며 "버버리 경우 버버리프로섬만 디자인부터 제작 등 모든 것을 잉글랜드에서 진행하고 그 외 버버리는 중국에 공장을 두고 생산을 진행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오데마 피게·피아제·오메가 등 명품 시계 대부분과 쇼파드·불가리 같은 보석 브랜드도 스위스에서 제조하거나 선적해 혜택이 없다. 스위스는 유럽에 있지만 EU 국가는 아니다.

한ㆍEU FTA 발효…그래도 명품은 올라
명품업계 또 다른 전문가는 "하나의 명품도 부품별로 제조국가가 다르다. 예를 들어 프랑스 까르띠에 시계는 디자인은 프랑스에서 줄은 오스트리아에서 조립은 스위스에서 한다"며 "디자인만 유럽에서 하고 생산과 선적은 제 3국에서 하는 경우가 많아 FTA의 효력이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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