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깊은 여인의 품 같은 점입가경의 신천지

[머니위크]민병준의 길 따라 멋 따라/포항 내연산 청하골

민병준 여행작가  |  2011.08.21 12:39  |  조회 7362
여름 산행은 사실 고생이다. 이글거리는 햇살, 무거운 배낭, 비 오듯 쏟아지는 땀방울…. 나무 없는 능선이라면 더 그렇다. 하지만 산행지가 굽이마다 물보라 흩어지는 폭포들이 즐비한 계곡이라면 사정은 다르다. 그곳이 바로 천국이다. 우리나라 여러 명산 중 포항의 내연산은 12폭포 쏟아지는 청하골(내연골)을 품고 있어 여름 계곡 산행지로 아주 인기가 있다.
 
포항 내연산(內延山, 710m)은 화장기 하나 없는 맨 얼굴의 여인이다. 겉에서 보면 가꾸지 않은 시골 아낙처럼 수수하다. 문수봉, 삼지봉, 향로봉을 거쳐 매봉, 삿갓봉, 우척봉으로 이어진 능선의 자태도 부드럽다. 뾰족 솟은 암봉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어디로든지 일단 능선에 오르기만 하면 초승달 같은 주릉을 한바퀴 도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능선 오를 때 땀만 한줄금 쏟으면 된다.



관음폭과 연산폭은 청하골 최고의 비경

초승달 닮은 형국의 주릉엔 20리가 넘는 긴 계곡이 안겨 있다. 청하골이다. 청하(淸河)라는 뜻대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다. 조선시대 이 일대의 행정구역 명칭도 청하현(縣)이었다. 이 계곡을 부르는 이름은 또 있다. 내연골은 내연산이란 이름에서 따왔는데, 내연(內延)의 '안 내(內)', '늘일 연(延)'의 뜻처럼 긴 골짜기 이름으로도 적합하다. 계곡 아래에 보경사가 자리 잡았다 해서 불리는 보경사계곡이란 이름은 조금 밋밋하다. 12폭포골은 계곡 안에 숨은 열두폭포에 방점을 찍어 부르는 이름이다.

상생폭(쌍생폭), 보현폭, 삼보폭, 잠룡폭, 무풍폭, 관음폭, 연산폭, 은폭, 복호1폭, 복호2폭, 실폭, 시명폭. 20리 긴 골짜기에 걸려 있는 열두폭포의 이름이다. 눈에 띄는 폭포들만 이름 붙인 것이다. 살짝 눕거나 깊은 곳에 숨은 것까지 합하면 셀 수도 없다. 이 폭포들은 크고 작은 소(沼)와 담(潭)을 거느리고, 까마득한 기암절벽과 어우러져 동양화 병풍 같은 절경을 이룬다. 능선 둘레엔 그 흔한 암봉 하나 안 거느렸으면서도 어찌 속은 이토록 잘 가꿨단 말인가. 그래서 내연산은 속 깊은 여인이다.



점입가경(漸入佳境). 이 사자성어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산이 바로 내연산이다. 보경사에서 계곡 길을 오르다보면 제일 먼저 반기는 두줄기 쌍폭포. 바로 상생폭이다. 폭포 왼쪽에 솟은 바위벼랑은 옛날 기녀가 풍류객과 노닐던 기화대요, 낙타 등처럼 생긴 바위턱을 흘러내린 두줄기 폭포수가 몸을 담그는 못은 그 기녀가 술에 취해 빠져 죽었다는 기화담이다. 폭포와 암벽의 조화가 정말 그림 같다.

풍류객과 기생의 애절한 사연이 깃든 상생폭을 뒤로 하고 보현폭, 삼보폭을 멀리서 바라보면 힘차게 물줄기를 떨어뜨리는 잠룡폭 소리가 들려온다. 과연 용이 숨어 있을 듯한 풍치를 자랑하는 이곳은 영화 <남부군> 촬영 장소로도 쓰였다. 남녀 빨치산 대원들이 지리산 어느 계곡에서 목욕하다가 총대장인 이현상을 만나는 바로 그 장면이다.

무풍폭 위로는 청하골 12폭포 중 백미로 꼽히는 관음폭과 연산폭이다. 까마득한 암벽인 학소대와 비하대 사이의 바위를 휘감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쏟아진 연산폭 물줄기가 숨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관음폭을 더듬고 감로담으로 흘러내리는 광경은 청하골 경관의 핵심이다. 폭포수는 휘감고 굽이치고 쏟아지며 울부짖는다. 계곡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보라 일으키는 폭포 아래에 서면 살갗에선 금방 소름이 돋고 무더위는 저만치 물러간다. 세상을 등진 도사가 머물렀음직한 큼직한 굴이 뚫린 바위벽 틈새로 두갈래 물줄기를 쏟아내는 관음폭은 자연의 솜씨를 찬탄케 하는 명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서 되돌아 내려가지만 상류로 조금만 올라가도 한적하게 청하골의 풍치를 더 즐길 수 있다. 청하골 하류는 화려했지만, 이곳에서 시명리까지의 청하골 상류 경관은 소박한 편이다. 여성을 닮아 음폭이라고도 불리는 은폭을 비롯해 복호폭, 시명폭 등이 반긴다. 청하골 끝 시명리 주변엔 축대 흔적이 많이 보이는데,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화전을 일구거나 숯을 굽는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다고 한다.



내연산 주봉은 삼지봉, 최고봉은 향로봉

내연산 최고봉은 서쪽의 향로봉(香爐峰, 930m)이다. 내연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답게 주변 조망이 아주 빼어나다. 흥해에서 호미곶으로 이어진 해안선과 짙푸른 동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요지다. 내륙 쪽도 뒤지지 않는다. 주왕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 산줄기가 파도치듯 일렁인다. 반딧불이가 별빛처럼 수를 놓고, 바다에선 오징어잡이배의 어화(漁火)가 은하수처럼 화려하게 피어나는 여름밤이면, 포항의 땅과 하늘과 바다를 환하게 밝히며 불야성을 이루는 포스코의 불빛도 감상할 수 있다.

굳이 족보를 따지자면 향로봉은 내연산 최고봉이긴 하지만 주봉(主峰)은 아니다. 주봉은 북쪽에 솟은 삼지봉이다. 이 삼지봉 정상에선 문수봉, 향로봉, 동대산으로 이어지는 세개의 산줄기가 뻗어나간다. 내연산에서 주요한 세갈래 산줄기의 정점이 되는 삼지봉은 전체 산세의 중심이 되기 때문에 비록 최정상 자리는 향로봉에게 양보했지만, 자신은 주봉이라는 영광의 자리를 꿰차고 앉은 것이다. 이처럼 주봉과 최고봉이 다른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물론 산의 규모와 비교해 이토록 길고도 아름다운 계곡을 가진 산도 그리 많지 않다.



여행수첩

●산행길잡이 ▼폭포만을 즐기는 탐승, 노약자 있는 가족 여행이라면 청하골 백미를 감상할 수 있는 보경사~연산폭포(2.7km) 코스를 이용하는 게 좋다. 왕복 1시간30분~2시간 소요. ▼본격 산행인 보경사~문수암~문수봉~내연산(삼지봉)~미결등~은폭포~청하골~보경사 회귀 코스는 4~5시간 걸린다. ▼내연산를 크게 도는 종주는 보경사~문수암~문수봉~내연산(삼지봉)~향로봉~고메이등~시명리~청하골~보경사 회귀 코스가 일반적이다. 최소 6~7시간 정도 걸린다. 내연산 입장료 어른 2500원, 주차료 승용차 2000원.

●교통 경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여주 분기점→중부내륙고속도로→김천 분기점→경부고속도로→금호 분기점→도동 분기점→익산·포항고속도로→포항 나들목→28번 국도→흥해→7번 국도→송라→보경사 <수도권 기준 5시간 소요>

●숙박 보경사 매표소 바로 앞에 있는 연산온천파크(054-262-5200)는 온천사우나와 숙소를 함께 갖추고 있는 업소다. 이밖에 보경사 입구 상가단지엔 삼보가든(054-262-2224), 삼지봉식당(054-261-6679), 영일식당(054-262-1130), 천령산가든(054-261-4330) 등 민박을 겸하는 음식점이 여럿 있다.

●별미 상가단지엔 춘원식당(054-262-1170) 등 30여 개의 식당들이 가득 들어서 있다. 우리 밀을 이용해 손으로 빚은 손칼국수(5000원)가 가장 인기 있다. 이외에도 토종닭(4만원), 산채비빔밥(7000원), 산채정식(1만2000원, 2인 이상) 등을 차린다.

●참조 포항시청 054-270-8282, 보경사 종무소 054-26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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