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없는 영화 '베테랑'…캐릭터 설정이 아쉬운 이유
[이현지의 컬티즘<61>] 범죄 오락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확실한 캐릭터 설정이다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5.08.21 09:01 |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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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영화 '베테랑' 포스터/사진=CJ엔터테인먼트 |
기대가 컸다. 신선한 감각의 액션과 탄탄한 연출력, 재치있는 입담으로 유명한 류승완 감독의 작품이다. 류승완 표 범죄 오락액션은 그 자체로 흥행보증 수표다. 2010년 '부당거래'로 웰메이드 범죄 영화의 탄생을 알린 데 이어 2012년 '베를린'을 통해 한국 첩보 액션영화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 게다가 황정민, 유아인을 비롯해 유해진, 오달수 등 연기파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다. 개봉 14일 만에 700만을 돌파하고 곧 천만 영화에 등극할 것이라 기대를 모으고 있는 영화 '베테랑' 말이다.
123분의 러닝타임은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다. 몇몇 재밌는 대사에서 폭소가 터졌고, 중간 중간 액션 장면의 몰입도도 높았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이 영화가 천만 관객을 앞두고 있는 것은 작품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갑작스럽게 생긴 광복절 연휴의 영향이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하게 통쾌하지도, 확실하게 재밌지도 않은 채로 어중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가장 아쉬운 지점은 영화 '베테랑'에서 말하는 베테랑이 누군지 모르겠다는 사실이다. 영화를 보기 전, 나는 뼛속까지 경찰인 서도철(황정민 분)과 재벌로 태어나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전문가인 조태오(유아인 분), 이 두 베테랑의 숨 막히는 대결이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는 '제목이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라는 의문만 남았다.
영화 '베테랑'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
물론 서도철이 결국 사건을 해결한 것은 맞다. 윗선까지 움직이며 어떤 방식으로든 잡히지 않을 것 같은 조태오에 손에 수갑을 채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도철이 한 일은 많지 않다. 배기사(정웅인 분)의 죽음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 것은 배기사의 아내다. 더 이상 사건을 들추지 말라는 총경(천호진 분)이 마음을 바꾼 이유는 막내가 칼에 맞았기 때문이다. 수사망이 조여오는 것을 알면서도 조태오는 마약 파티를 연다. 결국 사건의 해결은 조태오와 그의 심복 최상무(유해진 분)가 알아서 빌미를 제공하고 다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 '베테랑'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
범죄 오락 영화가 재밌고 통쾌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확실한 캐릭터 설정이다. 정의로운 자는 확실히 정의롭고, 악한 자는 확실히 악해야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지나 흐름이 반전되는 지점에서 '통쾌함'이 나온다. 선악의 분명한 구분으로 현실성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어차피 감독 류승완도 "아무 생각 없이 즐겨주길 바란다"고 말한 오락영화가 아닌가. 우리가 마블 코믹스의 영웅 시리즈에서 현실성을 논하지 않는다. 영화 '베테랑'에서 조금 더 확실한 캐릭터가 아쉬움으로 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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