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왜 이렇게 변했어?"…매일 화내는 여자친구들에게

Style M  |  2015.04.10 03:04  |  조회 1155

[김정훈의 별의별 야식-2] 식어도 맛있는 닭강정 - 변화 자체를 사랑할 줄 알아야 진정한 사랑


누구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을 것 같은 날, 마음껏 연애상담을 할 수 있는 편안한 술집이 있다면 어떨까? 공허한 마음과 몸을 채워 줄 요리, 만족스런 연애와 사랑을 위해 먹으면 좋은 음식은 뭐지? 남녀가 섹스 전과 후에 먹는 음식은? 이 모든 궁금증이 해결 되는 곳이 있다. 아무에게도 털어 놓지 못했던 은밀한 연애 이야기로 만들어진 맛있는 메뉴가 매주 채워지는 곳. 김정훈 연애칼럼니스트가 이 시대의 편식남·편식녀들에게 추천하는 힐링푸드, 별의별 야(한)식(탁)!


/사진=머니투데이 DB


'써니 싸이드 업(Sunny side up, 한쪽 면만 살짝 익힌 반숙 상태. 해가 뜨는 모양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단어는 참 예쁘다. 봄날 데이트를 나선 시작하는 연인들의 기분이 생각난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충만한 두근거림 같다. 상대방에게 더 큰 행복을 주려고 조심스레 눈치를 보는 기분 좋은 사랑의 긴장감이 떠오른다. 터질 것 같이 아슬아슬하게 코팅된 밝은 색 노른자의 부드러운 맛이 상상돼서인지도 모르겠다. 역시 난 완숙보다 반숙이 좋다.


최근에는 수란(껍질 없이 반숙한 달걀 요리)을 즐겨 먹는다. '써니 싸이드 업'같이 달걀의 부드러움을 최대한 맛볼 수 있는 조리방식이다. 만들기 번거로울 것 같지만 생각보다 간단하다. 끓는 물에 식초를 넣고 달걀을 풀어 넣기만 하면 된다. 기름을 두른 팬보다 설거지하기도 편하다. 라구소스나 크림소스로 만든 파스타에도 수란을 곁들이면 한층 풍미가 높아진다.


그렇게 만든 맛있는 파스타가 앞에 놓여 있는데도 싸움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남녀가 오늘의 손님이다. 지나치게 익혀버려 텁텁한 맛을 내는 완숙 같은 커플이다.


"그러니까 그건 내가 변한 게 아니야." 남자가 답답한 듯 이야기 했다. "아니거든. 오빠가 변한 게 맞거든." 여자가 화를 내며 자신의 주장을 강요한다. "그러는 넌 안변했어?" 발끈한 남자가 꼬리 물기 작전을 시도한다. "응, 난 안 변했어. 나한테 뭐 서운한 거 있어?" 여자가 태연하게 반격한다. "아니 없어"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 같다. "당연하지. 난 안변했으니까. 근데 난 엄청 서운해. 오빠가 변.해.서." 여자도 남자를 사랑하나 보다.


/사진=mccun934 in Flickr


듣고 있자니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식어가는 파스타를 이대로 둬선 안 될 것 같았다. 서로 사랑하는 것 같은데 이제 그만 싸우고 파스타나 먹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려던 찰나, 화가 난 여자가 나가버리고 말았다. 가방은 놔둔걸 보니 완전히 떠나 버린 건 아닌 듯 했다.


남자는 속이 상한지 여자의 맥주까지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소주를 찾았다. 그리고는 식어버린 크림소스파스타와 함께 소주 반병을 순식간에 비워버렸다. 크림소스와 소주의 찰떡궁합을 아는 걸 보니 꽤 술을 좋아 하는 듯 했다. 남자가 말했다. "그런데 이거, 아까는 맛있었는데 식으니까 별로네요."


"원래 화가 나면 무턱대고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고 그래요." 남자는 내 의아한 표정을 감지한 듯 친절하게 말을 이으며 그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사이 난 토마토와 올리브를 넣어 콜드파스타를 조금 만들었다. 토마토는 만성피로나 스트레스에 좋다. 몇 차례 전화연결에 실패한 남자는 휴대전화를 가방에 던져 넣다시피 하곤 술을 계속 마셨다. 그러다가 "파스타를 원래부터 이렇게 차갑게 만들 수도 있는 거였네요"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둘은 사귄 지 1년이 조금 넘은 커플이라고 했다. 100일까지 여느 커플 마냥 행복하고 즐거웠다. 남자가 여자친구를 위해 처음해 준 요리가 크림파스타였다. 부엌을 치우고, 장을 보고, 한창 면을 삶고 있을 때 '띵동'하고 울리던 초인종 소리가 떠오른다고 했다. 처음 그녀가 방에 들어왔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며 헛웃음을 짓는 남자에게 술을 따라줬다.



영화 '원데이' 스틸컷/사진=(주)팝 파트너스


남자는 말을 이었다. "그녀가 말했었죠. '남자 방치고 깨끗하네. 내가 치워주거나 필요한 것 없어?'라구요." 남자는 여자에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 그냥 이렇게만 있어달라고 말했다. 둘은 그날 처음으로 섹스를 했다.


그 날 이후 둘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잦아졌다. 남자가 취직을 했고 뒤따라 여자가 취직을 했다. 둘은 바빠졌고 반 동거식의 연애모드가 됐다. 처음의 긴장은 완전히 사라지고 각자의 일상이 하나가 되면서부터 싸우는 일도 잦아졌다고 한다. 소주 한 병을 비우며 말을 잇던 남자는 갑자기 여자를 찾으러 가봐야겠다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취한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이 여자가 돌아왔다. 남자가 나간 뒤 5분 쯤 지난 뒤였다. "그가 당신을 찾으러 나갔다"고 그녀에게 말해주니 "알아서 오겠죠" 라며 남자의 잔에 남아있는 소주를 마셨다. 화는 좀 가라앉아 보였다. "남자분이 그쪽을 많이 사랑하는 것 같은데 왜 화가 났냐"고 슬며시 물어봤다.

그녀는 말했다. "더 이상 오빠는 나를 보고 두근거리지 않아요. 처음 집에 갔을 때처럼 청소를 해 놓지도 않고, 나보고 치워달라고 하죠. 요리도 안 해주거든요. 오빠가 만들어 준 따뜻한 크림파스타가 진짜 맛있었는데. 차라리 처음부터 이렇게 차가운 파스타나 만들어주지" 남아있는 콜드 파스타를 먹으며 그녀가 서운함을 토로했다.



/사진=hyeonjeongsuk in Flickr 


그때 남자가 들어왔다. 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마침 먹다 남은 닭강정이 있어 그들에게 권했다. "식어도 맛있다 길래 반신반의 했는데 정말로 어제 먹었을 때랑 오늘 먹을 때랑 맛이 또 다르더라구요" 접시를 건네며 그들에게 말을 이었다. "처음과는 달리 이젠 방청소를 하지 않는 사람이나, 치워줄 것 없냐며 상냥히 묻던 모습은 사라지고 더러운 방 때문에 화를 내는 사람이나 변한 건 마찬가지겠죠." 그녀가 조금 뜨끔하는 듯했다.


"지금 내 모습과 내일 자고 일어난 내 모습이 다르듯 사람은 계속 변하는 것 같아요. 외모도 성격도 말이죠. 그렇게 서로의 변화를 함께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연애의 행복 아닐까요? 물론 그 관심을 위한 노력은 두 사람 모두 함께 지속적이어야 하구요" 남자는 여자를 한 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젊고 싱싱함만 사랑한다면 함께 늙어갈 미래는 없겠죠. 결국 변화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는 거예요. 사람의 모습은 변하고 그에 맞춰 사랑의 형태도 변하는 게 당연하니까요. 다만 그 본질만 변하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뜨거울 때나 식었을 때나 제가 이렇게 닭강정을 맛있게 먹는다는 사실처럼 말이죠" 조금 과장된 익살스런 몸짓으로 닭강정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그들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한 서비스 정신이었다.


얼마 후 그들은 다시 가게에 방문했다. 지난 주말엔 둘이서 함께 청소를 하고 밥을 만들어 먹었단다. 식어도 상관없는 콩나물국에 계란찜. 그리고 닭강정까지. 다음 날에도 먹을 수 있어 너무 좋은 반찬들이었다고 즐거워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연애의 긴장감을 잘 유지하란 의미로 오랜만에 써니싸이드 업 프라이를 해주려는데 그들이 말했다. "아, 저희는 원래 완숙 좋아해요. 완전히 텁텁하게 익혀주세요" 완숙커플의 완숙된 사랑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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