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사랑도 변한다…중요한 건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다
Style M | 2014.11.16 11:11 | 조회 1239
[김정훈의 썸⑮]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면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썸. 묘한 단어가 등장했다. 짜릿한 흥분과 극도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롤러코스터 마냥, 탈까 말까 망설여지기도 하고. 간질 간질. 정체를 알 수 없는 간지러움에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랑만큼 떨리지만 이별보다 허무한 '썸'. 그리고 편식남 편식녀를 비롯한 그 밖의 다양한 '썸'에 대한 연애칼럼니스트 김정훈의 토킹 릴레이.
영화 '동경가족' 스틸컷/사진=오드
누구나 진실 되고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하지만 정작 그 존재를 100% 믿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그렇게나 만나고 싶었던 산타클로스가 사실은 아버지였음을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까. 영원히 마르지 않는 사랑의 감정이란 실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며, 그런 환상에 빠져 있는 이들을 향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오히려 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랑이 있다고 믿는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언제나 그리워하던, 해마다 할머니의 묘를 손질하며 눈시울이 촉촉해 지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분명히 그런 사랑이었다.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도, 더 이상은 만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인의 안부를 궁금해 할 수 있는 할아버지의 사랑을 본받고 싶었다.
언젠가 내가 '사람을 만날 땐 가정환경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을 때 '그렇지. 경제적 윤택함에 따라 사람의 생활양식은 바뀌니까'하고 대답을 했던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 말도 물론 맞다. 하지만 당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가정의 분위기에 대한 것이었다. 구성원과의 커뮤니케이션 빈도 등으로 달라지는 가정의 분위기는 개인이 신뢰하는 사랑의 정의를 결정짓는다. 그 친구와 내가 헤어졌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선호하는 사랑의 정의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가족 내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없음에도 행복하게 살아온 그녀의 가치관은 나의 그것과 완전히 달랐다. 나는 사랑을 상대방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이라 생각했고 그녀는 그것이 불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만약 대화 없이 경직된 아버지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면 그 상실감을 연인을 통해 채우려 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 가족에 대해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며 영원한 사랑을 함께 꿈꾸는 부부 형태에 대해 거부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녀와의 이별을 통해 확실히 깨달은 게 있다면 무조건 큰 사랑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주고 싶은 사랑의 크기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상대가 원하는 형태 혹은 그 성격이 아닐까?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다. 취향의 문제다. 이상적인 사랑을 꿈꾸는 사람과 현실적인 사랑을 중요시 하는 사람이 만나서 행복할 확률은 매우 낮다. 한 쪽은 그런 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한 쪽은 그런 사랑은 분명히 있다고 믿으니 다툼이 일어난다. 가치관이 다를 땐 이별의 조짐 역시 극복하기 힘들다. 앞서 말했듯, 행복한 연애를 위해선 상대방이 원하는 성격의 사랑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화려한 사랑을 원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따뜻한 사랑을 줘 봤자 큰 감흥이 없다. 달달한 연애를 꿈꾸는 사람에게 이지적이고 절제된 감정전달은 상처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이 변하는 걸까, 사랑이 변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내리려면 사랑에 대한 가치관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 변하지 않는 것만이 사랑이라고 믿는 극단적인 낭만주의자들에겐 변하는 것 역시 사랑의 과정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대부분 남자들이 연애 초기 "너를 향한 내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아!"라고 호언장담 한다. 자신이 대단한 낭만주의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말의 유통기한에 책임을 질 수 없음에도 이처럼 말하는 이유는 여성에게 기쁨을 주고 싶어서다. 그 노력이 무작정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면 그 유통기한은 짧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대방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닌, 스스로 믿는 사랑의 가치를 위해 노력 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말은 정말로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낭만적인 사랑의 신화를 믿고 그걸 표현하려는 남자들은 드물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허세를 곧이 믿는 여성 역시 드물다곤 해도 사랑하는 연인에게 영원함을 남발하는 것은 좋지 않은 행동이다. 책임질 수 없는 필요 이상 기대치는 만들어 내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신 '다른 것들이 변한다고 해도 이것 하나만큼은 변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게'라는 약속을 하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한 가지의 약속은 당신이 상대에게 주는 사랑의 외형이 변한다고 해도 본질은 변함이 없음을 증명하는 표현이 될 수 있다. 만약 그 기본적인 노력마저 지속할 자신이 없다면 당신은 아직 연애를 할 준비가 안됐단 거다.
사람은 당연히 변한다. 외형도 변하고 성격도 조금씩 바뀐다. 그럼 사랑은? 애초부터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추상적인 그것의 변화를 얘기한다는 게 모순일지도 모르겠다.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이라는 틀을 채우고 있는 내용물이 바로 사랑이다. 틀이 변하면 내용물 형태도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형태가 바뀐다고 해도 내용물의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 성질은 한 사람의 인생 그 자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가치관, 그리고 그가 나에게 주려하는 사랑의 성격이나 본질 그 자체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옳다. 그렇지만 형태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강조하지만 영원하고 진실된 사랑을 하고 싶다면 당신과 똑같이 그걸 꿈꾸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의 방식이나 요령, 혹은 상대방의 배려보다 우선시 돼야할 건 각자의 가치관이다. 현재 절실하게 서로를 갈망하고 있다 해도, 기본적인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만나 그 감정을 이어가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가치관이 맞는 상대를 만난다면, 그리고 싶은 형태를 완성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그와 함께 그것을 그려 나가는 시간 자체가 충만한 사랑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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