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없는 영화 '국제시장',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

[이현지의 컬티즘㉔]부모 세대 이야기이자 한국사의 한 페이지, 그 소재의 무거움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4.12.01 13:32  |  조회 5471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영화 '국제시장' 포스터/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국제시장' 포스터/사진=CJ엔터테인먼트
나는 엄마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7남매가 한 집에서 만들어내는 에피소드들이 재밌고 지금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외삼촌 이모들의 어린 시절 행동들도 신기하다. 무엇보다 지금은 전혀 남아있지 않은 6.25 전쟁 직후 한국의 모습 때문이다. 빠른 경제성장의 성장통을 거치면서 한 세대의 모습이 다음 세대에 전혀 남아있지 않게 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했던가. 엄마가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는 마치 영화나 소설처럼 낯설다.

시사회를 통해 먼저 접한 윤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은 바로 우리 부모 세대 이야기다. 전쟁통에 가족이 생이별을 하고 돈을 벌려고 독일로 광부 간호사가 되어 떠나야했던 시절. 베트남 전쟁에서 또 한 번 역사의 반복을 체험하고 여의도 광장의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곱씹어야 했던 그 시절. 자신을 위해 살기에는 모두가 너무나 가난했기에 서로가 서로를 위해 희생하며 살았던 그 시절의 이야기 말이다.


영화 '국제시장'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국제시장'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사실 전쟁과 전쟁을 겪은 세대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콘텐츠다. 수잔 손탁은 '타인의 고통'이라는 자신의 저작에서 이러한 흥미와 관심에 대해 '연민'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이미지로 소비하며 그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이 연민이란 감정은 나 자신이 그 고통의 원인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숨겨주는 자기방어기제다. 즉, 연민을 느끼는 순간 타인의 고통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윤제균 감독 역시 이러한 지점에 대한 매력을 크게 느꼈던 것 같다. 전쟁통에 동생과 아버지를 잃어버린 한 남자아이가 남은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간다. 동생 학비와 결혼 비용을 위해 파독 광부, 베트남 전쟁에 자원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려고 끝까지 고모의 가게를 지켜낸다.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잃어버린 여동생을 찾아낸다. 이 장면을 그저 신파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이며 불과 50년전 한국사의 한 페이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국제시장'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아쉬운 지점은 영화가 전체적으로 이러한 소재 자체의 무게에 짓눌려 버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윤제균 감독의 작품은 늘 적당한 감동과 적당한 유머로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는 그 '적당한' 지점이 사라져버렸다. 먼저 재미를 줄 수 있는 부분들이 꽤 등장하지만 전체적으로 어설프게 마무리된다.

예를 들어 젊은 시절의 남진이나 앙드레김의 등장은 신선하지만 조금 억지스럽다. '감동'의 측면은 더 문제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달구와의 우정, 영자와의 사랑, 가족을 위한 덕수의 희생, 파독 광부의 삶, 이산가족 찾기 등 감동을 주려고 하는 부분이 지나치게 많다. 감동을 느끼려고 하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버려서 몰입하기도 어렵다.


영화 '국제시장'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국제시장'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에 몰입하기 힘든 지점은 이 외에도 몇 가지 있다. 강조를 위한 슬로우 효과를 너무 자주 줘서 흐름이 끊기는 느낌을 준다. 또한 주인공 덕수의 과거와 현재가 전환되는 부분을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에 포커스를 맞춘 상태로 배경이 달라지는 식으로 연결시키는데 이 역시 너무 자주 등장함으로써 관객의 집중도를 낮춘다.

여러 인터뷰나 기자회견에서 발언으로 짐작하건데 윤제균 감독은 이 영화에 매우 애착을 가지고 스스로 몰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을 주인공의 이름으로 사용한 것을 봐도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 영화에 너무 욕심을 부리고 힘을 준 것은 아닌가 싶다.

혹자는 이 영화를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라고 말한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한 사람의 인생을 보여주는 영화이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면서 보여주는 형식이 '국제시장'과 같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이 '포레스트 검프'라는 한 사람인 것에 비해 '국제시장'의 주인공은 '덕수'가 아니다. '덕수'는 그저 한국사를 실어나르는 매개체일 뿐, 그 안에 진짜 그의 이야기는 빠져있다. '덕수'는 그저 '그 시절 우리네 아버지'의 상징적 은유일 뿐이다.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아쉬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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