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내려놓지 못했나?" 신경숙 표절 논란이 씁쓸한 이유

[이현지의 컬티즘<53>] 불필요한 문단 권력에 대한 자성의 계기가 되었길 바란다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머니투데이 칼럼니스트,   |  2015.06.25 09:40  |  조회 4985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신경숙 작가(왼쪽)와 표절 논란이 된 '전설'이 수록된 소설집 '오래전 집을 떠날 때'(오른쪽)/사진=삼성 제공, 네이버 북스
신경숙 작가(왼쪽)와 표절 논란이 된 '전설'이 수록된 소설집 '오래전 집을 떠날 때'(오른쪽)/사진=삼성 제공, 네이버 북스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어릴 때는 작가들의 표현력이 부러워서 문장을 통째로 외워버리곤 했다. 그리고 혼자 습작을 할 때나 일기를 쓸 때, 그 문장들을 흉내 내 써보기도 했다. 작가 지망생들이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필사하면서 연습하듯이 내게 그 경험들은 짧은 시간에 글을 구성하고 써 내려가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문제는 어느 순간 내가 어떤 멋들어진 문장이 떠올랐을 때, 그것이 내가 만들어낸 문장인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문장인지가 헷갈린다는 것이다. 한번은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을 쓰기 전에 혹시나 하여 네이버에 검색해 보기까지 했다. 내가 쓴 글에 책임을 져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글을 표절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더 커졌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표절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문화 비평가 겸 작가인 수잔 손탁은 글을 쓰기 시작하면 사유에 도움을 주는 얇은 책 두 세권만을 들고 아무것도 없는 방에 들어가 글을 글쓰기에만 전념한다고 한다.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혹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의 글이나 생각을 모방하게 될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표절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든 것은 최근 문단을 떠들썩하게 하는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 때문이다. 사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은 예전부터 있어왔기 때문에 그다지 새롭지는 않았으나, 이번에는 꽤 크게 터졌다. 신경숙 작가가 문단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커지고, SNS를 통해 이러한 논란이 급속도로 퍼져나가면서 문단 내부에서 유야무야 사라졌던 이전과는 달리 파장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출판사 창비가 신경숙의 단편 '전설'이 수록된 작품집 '감자 먹는 사람들('오래전 집을 떠날 때'의 개정판)'의 출고 정지를 결정했다./사진=뉴스1
출판사 창비가 신경숙의 단편 '전설'이 수록된 작품집 '감자 먹는 사람들('오래전 집을 떠날 때'의 개정판)'의 출고 정지를 결정했다./사진=뉴스1
이번 표절 논란은 더욱 씁쓸하다. 인기 작가의 작품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무엇보다 의혹이 제기되더라도 출판사에서 나서 이를 막아왔던 그간의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신생 작가들에게는 유리 천장으로, 대형 작가들에게는 도덕적 해이로 작용하는 이른바 '문단 권력'이다. 이번에 이 문제를 제기한 소설가 겸 시인 이응준 역시 '문단에서 사라질 각오'까지 하고 이 문제를 거론할 만큼 문단 권력의 상위층에 있는 작가의 영향력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간의 표절 논란을 덮어버린 '문단 권력'에 대한 씁쓸함만큼이나 이번 사태에 대한 몇몇 사람들의 과격한 대응 역시 비정상적으로 느껴진다. 문단 내 자정 능력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 인정은 하지만 이번 사건은 절필을 요구하고 법적으로 시비를 가릴 성격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문학작품의 표절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이러한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비평과 해석을 할 수 있는 정기적인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제 더 이상 하늘아래 새로운 콘텐츠는 없다고. 기존의 것을 어떻게 새롭게 보이도록 구성하고 포장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물론 그렇다. 새로움에 집착할수록 스토리는 막장이 되고, 문장은 해석이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범한 내용과 글귀 속에서도 감동을 주는 비범함이 분명히 대작을 쓰는 작가들의 글에는 있다. 그것이 필력이다.

신경숙 작가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유려한 표현들로 가득 찬 입장표명의 말에서도 진심이 느껴지기 보다는 '아직 내려놓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하지만 절필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응원한다. 앞으로 신경숙 작가 스스로 표절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문단 내부에서도 불필요한 문단 권력이 형성되는 것에 대한 자성의 계기가 되었길 바랄 뿐이다.

"아직 내려놓지 못했나?" 신경숙 표절 논란이 씁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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