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왜 영웅들은 싸워야 했을까

[이현지의 컬티즘<92>] 147분이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은 영화…심각함 속의 유머 '압권'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6.05.13 09:41  |  조회 13675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포스터/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포스터/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영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 건물이 무너지고, 몇 백 명의 사람들이 죽고, 도시 전체가 사라질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건물 하나에 얽혀있는 수많은 이해관계들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저 싸움의 현장을 지나가다 죽은 사람에 대한 보상은 누가 해줬을까,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살아갈까.

비현실적인 영웅들의 이야기를 굳이 현실적으로 바라보자면 그랬다. 그리고 바로 그 이야기가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그려진다.

정의와 평화를 위해 자발적으로 힘을 합쳐 싸워오던 '어벤져스'에게 정부는 불편한 제안을 한다. 세계를 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으므로 앞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UN에 의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 정부의 뜻에 찬성하는 아이언 맨과 정부의 간섭 없이 자신들의 판단으로 세계를 구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캡틴 아메리카가 팽팽히 맞선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스틸컷/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스틸컷/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사실 정부의 규제를 누군가 찬성하고 누군가 반대한다면 찬성하는 쪽이 캡틴 아메리카, 반대하는 쪽이 자유영혼 아이언 맨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대라는 것이 놀라웠다. 어쨌든 그렇게 제목 그대로 영웅들의 내전(Civil war)이 시작된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마블의 기존 팬들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마블스러움'을 일단 전면에 부각시킨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빠르고 거대한 스케일의 액션이 관객들의 정신을 쏙 빼놓고,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하면서 각자의 개성과 무기를 뽐내는 와중에서도 흐트러짐이 없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유머와 재치를 잃지 않는 모습들 역시 압권이다.

스파이더맨의 등장은 이번 에피소드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신선한 촉매제다. 그동안 판권을 소니 픽쳐스가 대여하고 있어서 '어벤져스' 시리즈와 같은 콜라보 형식의 영화에 등장할 수 없었던 스파이더맨이 지난 2월 마블과 소니의 극적 합의로 드디어 어벤져스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아직 어린 스파이더맨의 순수함과 엉뚱함은 관객들에게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사진='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예고편 캡처
/사진='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예고편 캡처
무엇보다 영화는 "아이언 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와 같은 원초적 궁금증을 넘어 마블의 영화들이 단순히 만화를 기반으로 한 화려한 액션 히어로물 만이 아님을 증명한다.

'영웅vs악당' 아닌 '영웅vs영웅'의 대립각으로 맞선 두 집단 사이에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각자의 입장을 보여주며 관객들과 철학적 사유를 나눈다. 그 여정에서 얽혀지는 영웅들 간의 관계 역시 깊이 있는 심리학적 의미를 내포한다.

그리고 이것은 과연 누구 말이 옳은 것인가를 넘어서 "과연 이 시대에 영웅이 필요한가"라는 포괄적인 사유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마블의 CEO 케빈 파이기는 "'시빌 워'는 지금까지 우리가 만든 영화들, 특히 '어벤져스' 시리즈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얘기했다. 147분으로 기존 마블 히어로 무비 중 가장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도 지루한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이번 에피소드가 그만큼 재미와 흥미에 더해 깊이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마블'이라는 팬들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이번 에피소드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두 개의 쿠키 영상 속에 살짝 예고된 다음 편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왜 영웅들은 싸워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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