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서 만난 고집男, 나에겐 묻지도 않고 주문한 음식이…

Style M  |  2015.05.15 04:05  |  조회 635

[김정훈의 별의별 야식-7] 호불호가 갈리는 향신료 '고수' - 정해진 틀을 강요하는 건 폭력이다


누구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을 것 같은 날, 마음껏 연애상담을 할 수 있는 편안한 술집이 있다면 어떨까? 공허한 마음과 몸을 채워 줄 요리, 만족스런 연애와 사랑을 위해 먹으면 좋은 음식은 뭐지? 남녀가 섹스 전과 후에 먹는 음식은? 이 모든 궁금증이 해결 되는 곳이 있다. 아무에게도 털어 놓지 못했던 은밀한 연애 이야기로 만들어진 맛있는 메뉴가 매주 채워지는 곳. 김정훈 연애칼럼니스트가 이 시대의 편식남·편식녀들에게 추천하는 힐링푸드, 별의별 야(한)식(탁)!


/사진=adactio in Flickr


가게 마감 시간은 평균 새벽 3시쯤이다. 손님이 없을 땐 더 일찍 정리를 하기도 한다. 오늘은 특별히 오전 6시까지 가게를 열어두기로 했다. 바이에른뮌헨과 FC바르셀로나의 UEFA 준결승 2차전 경기가 새벽에 있어서다. 결승전 진출이라는 사활이 걸린 짜릿한 빅매치를 굳이 떠들썩하게 보고 싶지는 않았다. 집 소파에 누워 맥주 한 캔 마시며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즐기고 싶었는데 단골손님 한 명의 부탁 때문에 가게에서 보게 됐다.


2주 전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방문했다며 다짜고짜 태국 음식 몇 가지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던 남자가 있었다. 고집스런 성격이 드러나는 각진 턱과 매부리코의 그 남자는 모 제약회사의 신입 영업사원이었다. 대화를 통해 그 '고집남(이름은 밝힐 수 없다)'이 3년째 솔로라는 것까지 알게 됐다. 본인은 자의적 솔로라고 말했지만 아마도 타의적인 솔로에 가까운 듯 했다. 멀쩡한 허우대와 달리 공감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게 그 이유랄까. 그는 2주간 무려 5번이나 방문을 하며 단골손님으로 등극했다. 아, 그의 잦은 방문이 제약 영업의 일환은 아니었다. 매번 다른 여자와 함께였으니까.


그는 바람둥이가 아니다. 최근 5번의 소개팅을 우리 가게에서 했을 뿐이다. 그 소개팅 현장들을 목격해보니 타의적 솔로일거란 내 짐작은 점점 확신이 되어 갔다. 어쨌거나 그런 그가 업무상 술자리를 이곳에서 하겠다고 부탁한 것이다. 본인은 바르셀로나의 팬이고 거래처 대리가 뮌헨의 팬이니 함께 축구를 봐도 되겠냐는 그의 말을 듣고 망설여진 건 사실이다. 어차피 나도 그 경기를 보려고 했으므로 새벽 3시 예약이 문제가 되진 않았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그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 했을 때, 서로 다른 팀을 응원하는 두 사람이 함께 축구를 보는 것이 그의 영업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다.


/사진=t-mizo in Flickr


손님의 사연이나 부탁은 들어주는 게 우선이었으므로 고집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요리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아 거래처 사람은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는 고수를 팍팍 넣은 태국음식이면 된다고 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건 고집남의 취향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게에서 파는 모든 메뉴에 고수를 추가해달라는 요청을 할 만큼 그는 고수를 좋아했다. 하지만 고수는 특히나 호불호가 갈리는 향신료다. 다행히 박대리라고 불리는 거래처 직원은 큰 불만 없이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방금 전까지는.


"역시 메시!!! 박대리님. 진짜 최고 아니에요? 1차전에서도 그렇고."
"그렇지 대단해 진짜. 그래도 개인적으론 호날두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펠레가 한 말 몰라요? '메시는 전설과 비교되지만 호날두는 오직 메시랑 비교될 뿐이다!'"


순간 박대리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한 걸 고집남은 간파하지 못하는 듯 했다. 하, 이 사람.


"그래도 호날두지. 신체적 능력, 슈팅 능력 뭐든지 다 앞서거든."
"메시가 왜 뛰어난 줄 아세요? 호날두는 팀 전체 컨디션이 좋은 경기에서만 성과를 거두지만 메시는 팀 전체의 컨디션을 업 시킨단 말이죠. 본인을 부각시키려는 느낌보단 팀의 분위기를 파악해서 함께 승리를 이끄는?"


"바로 그거예요 고집남 씨! 연애도 그렇게 해야 하거든요.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점점 더 굳어지는 박대리의 표정에도 아랑곳 않고 일장연설을 펼치려는 고집남을 저지해야 했다. 그는 내 단골손님이니까. 박대리는 그제서야 재밌는 걸 찾았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고집남씨의 연애가 왜요? 말론 자기가 여자한테 인기 많다던데"


"인기는 많으신 것 같아요. 늘 다른 여자와 함께 여기 오시더라구요. 근데 그 여자 분들이랑 다 잘되진 않죠?"
"뭐, 다들 나랑 안 맞아서 좀 답답하더라구요. 그래도 세상에 여자는 많으니까요."


"고집남씨 같은 훈남은 자기 스타일을 좀 갈무리 하는 법을 알면 더 좋을 거예요. 항상 시키시는 캐슈넛 새우볶음 있죠? 그거 3일 전에 만나셨던 여자 분이 전혀 안 먹은 거 모르셨죠?"
"어? 아니에요. 분명 처음에 몇 조각 먹는 거 봤는데"


"그랬죠. 근데 그 분이 한 조각 먹자마자 곧장 (고집남씨가) 고수를 추가해달라고 했잖아요. 그 여자분 그 이후부턴 안 먹었거든요. 심지어 제가 서비스로 드린 그 잔치국수 말이죠. 제가 일부러 그 여자 분께는 고수를 넣지 않았었는데 직접 넣어주시기까지. 그때 그 여자분 표정을 봤어야 했는데. 근데 이 상황이 그 여자분 뿐만 아니라 지난주 그 단발머리 여자분 때도 똑같았거든요"


영화 '플랜맨' 스틸컷/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박대리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 챈 듯 본인도 고수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집남은 그제서야 깜짝 놀라며 박대리에게 사과를 했다. 박대리는 괜찮다며 고집남에게 술을 따라 주곤 내게도 술을 권했다. 잔을 부딪히며 내가 말을 이었다.


"예전에는 저도 그랬어요. 아마 모든 남자들이 그럴걸요? 연인에게 본인의 음식이나 취미, 연애하는 스타일을 강조해서 거기에 맞추도록 하는 거 말이죠. 뭐 여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런 게 정말 안 좋아요. 연애란 본인이 그려온 사랑에 대한 청사진을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니까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스타일을 적용시키려다간 본인도 금방 지치거나 질리고 말걸요? 살아온 환경도, 외모도, 성격도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의 정해진 틀을 강요하는 건 일종의 폭력이기도 하구요.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둘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들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아무리 고수를 좋아한다고 모든 음식에 고수향이 나게 하면 그 음식 고유의 맛이 사라져버리잖아요. 연애도 똑같아요. 본인의 원래 스타일이란걸 지나치게 강요하게 되면 지금 하고 있는 연애의 맛이 사라지죠. 다른 사람과 하는 다른 형태의 사랑을 통해 보다 다양한 본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니 허무함도 더 빨리 오는 거예요. 단순히 내가 바라는 대로 안 된다는 아쉬움 때문에. 특히 솔로분들이 그걸 잘 모르죠.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선 너무 딱딱하고 굳은 본인의 자세부터 바꿔야 한다는 걸"


결국 고수남, 아니 고집남은 박대리와의 계약에 성공했다고 한다. 추어탕을 전혀 먹지 못했지만 박대리의 기호에 맞춰 추어탕 집에서 해장을 해봤다는 고집남. 그런데 이번에는 박대리가 본인의 추어탕에 넣던 초피가루를 고집남의 콩나물국에도 듬뿍 넣어줬다나 뭐래나. 그분도 참.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