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시간씩 '롱디'도 했는데…" 편식남들 재수 없다?

Style M  |  2014.11.16 10:11  |  조회 753

[김정훈의 썸④]나에게 뜨겁지 않은 편식남과 사랑하는 법


썸. 묘한 단어가 등장했다. 짜릿한 흥분과 극도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롤러코스터 마냥, 탈까 말까 망설여지기도 하고. 간질 간질. 정체를 알 수 없는 간지러움에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랑만큼 떨리지만 이별보다 허무한 '썸'.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썸'에 대한 연애칼럼니스트 김정훈의 토킹 릴레이.


/사진=화앤담픽처스



지난주 '편식남 스토리'에 공감한 사람들이 '편식남 사용설명서'를 궁금해 하고 있다. 본격적인 설명서를 공개하기 전에 익명의 여성이 내게 건낸 대화 내용을 살펴보자.

"편식남 칼럼 읽고 얼마 전에 소개팅 했던 남자가 생각났어요. 키도 180cm 이상에 얼굴도, 집안도 괜찮고 성격도 좋아보였어요. 그런데 자기가 20대 초에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주말마다 왕복 13시간을 운전해서 '롱디(롱디스턴스(long distance)의 준말, 장거리연애를 의미)'를 했는데 이제는 그러기 싫다는 거예요. 대기업 잘나가는 인재 됐다 이거죠. 손해 보는 짓은 절대 안하겠다는 남자. 제가 연락하지 않으면 연락도 별로 안 해요. 편식남들 재수 없지 않아요?"

불만을 해결할 방법은 간단하다. 눈을 낮춰서 '외모 반반하고 집안 괜찮은, 대기업의 잘나가는 인재'라는 조건 중 하나를 포기하든지, '13시간 운전해서 롱디하는 열정'을 본인이 가져야 한다. 이러기도 싫고 저러기도 싫다면 지금 느끼는 불편함을 무작정 참는 수밖에 없다. 물론 마지막 방법은 그리 권하진 않지만.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편식남 설명서를 궁금해 하는 본인 역시 편식녀가 아닌지 의문을 던져 보라는 거다. 까다로운 취향을 가진 남자들을 비판하면서 정작 남자들을 걸러내고 있진 않은지, 적극적이지 않은 남자를 탓하면서 스스로 적극적일 생각은 왜 하지 않는지. 설명서를 통해 관계의 주도권을 잡고 싶다면 이러한 고민들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 설명서엔 편식남에게 '사랑받는 법' 따윈 없기 때문이다. 편식남과 '사랑하는 법'에 대한 힌트가 조금 있을 뿐이다.

CAUTION

1. 당신이 그를 편식남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당신에게 완전히 반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 남자를 만나야겠다면 사랑 받는 달콤함을 당분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만한 각오 없인 사용 설명서를 읽을 필요가 없다. 괜한 정이 들어 버리기 전에 환불하는 편이 나으니까.

2. 사랑은 해야 하는데 백마 탄 왕자님과 하고 싶고, 왕자의 키스를 받기 전에 먼저 하는 건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하는 당신. 삭막한 현실 속에서도 이상적인 사랑을 실현해줄 그런 왕자님을 찾고 있는 당신. 우선 편식남은 백마 탄 왕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가 잠자는 당신의 사랑을 깨워줄 왕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애매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 수 있다.

3. 대부분의 여자들은 연애 초기가 지나야 본격적인 사랑에 빠진다. 상대에 대한 확신이 생기고 나서 제대로 된 감정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편식남들도 마찬가지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사랑의 신화는 20대에 졸업한 지 오래다. 대부분의 30대 남자들은 삭막한 현실 속을 살아간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 만큼 여유롭지 않다. 그래서 희생적인 남자를 영웅시 하는 여자에겐 반감을 가진다. 강조할 것은, 그들이 야생의 본능을 절대로 잃어버린 건 아니란 거다. 당신에게 적극적이지 않은 그에게 불만을 표시할 땐 조심해야한다. '왜 남자답지 못하게 몸을 사리게 된 거야?' 라는 질문에는 '당신이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럴 뿐인데?'라는 비수같은 대답이 돌아올 수 있다.

4. '사람들은 사랑을 받는 문제로 알고 있기 때문에 남자들은 권력과 돈을 모으고 여성들은 치장과 몸을 가꾸는 것에 치우쳐져 있다. 그리고 매력적인 대화술과 처세술을 배우고 익힌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中'

20대엔 사랑을 받기 위한 노력과 하려는 노력을 동일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30대엔 그 차이를 알아야 한다. 사랑을 받기 위한 노력은 '센스'일 뿐이고, 수많은 편식남녀들은 센스를 최소한의 기본조건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을 받으려는 노력이 자신을 가꾸는 데 중점을 둔다면 사랑을 하기 위한 노력은 상대방을 향한 관심과 표현이다. 한 인기가수는 자신의 부인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예쁜 여자는 지겹도록 만나봤다. 모든 여자들은 자기에게 사랑을 주길 바라고, 공주대접을 바랬다. 하지만 이 여자는 색달랐다. 처음부터 만남의 모든 걸 책임졌었다. 연락하는 것, 선물, 레스토랑예약, 표현 등 나한테 바라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나를 사랑했다"

이처럼 '내가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 '이렇게 사랑하면 되는 것'임을 직접 보여주는 여자에겐 편식남의 벽도 허물어지게 돼있다.

5. 여자들의 적은 여자다. 그리고 수다의 장은 그 전쟁터다. 본인이 친구들과 나누는 수다도, 엄마들의 수다도 마찬가지다. 누가 어떤 남자를 만나서 어떻게 사랑을 받고 있느냐에 대한 경쟁이 주를 이루는 수다는 멀리하는 게 좋다. 그렇게 수동적인 여자만 잔뜩 등장하는 대화는 관계의 주도권을 잡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건 사회적 영향도 무시 못 하는 것 같다. 학벌·직장·연봉과 같은, 가시적인 스펙 없인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성인들. 거기에 좋은 가방과 멋진 남자, 그 남자에게 받는 사랑이 포함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6. 그 남자의 편식은 만만한 게 아니다. 예쁜 여자와 못생긴 여자의 경계만 나누던 20대와는 다르다. 이목구비가 예뻐도 피부 톤이 투명하지 않으면 싫고, 머릿결이 푸석해 보이면 건강하지 않을 것 같아서 싫고, 몸매가 좋다한들 손가락이 못생기면 매력이 없고, 가족 이름도 한문으로 쓰지 못하면 대화가 안 통할 것 같다며 연락을 끊는 게 편식남이다. 그가 당신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원인을 굳이 알아내 바꿔 보려는 건 무리다. 재수 없는 그를 사랑하기 싫다면, 사실 과감히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 그건 초조함 때문일 거다. 스스로 시장가치가 떨어진단 생각에 의도치 않은 편식을 하는 여자들도 많다. 내 취향이 아닌데도 억지로 편식남을 만나려는 편식녀만큼 어리석은 모습은 없다. 그가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음을 논하기 전에, 당신이 그에게 진정 반하였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말 그에게 반했다면 망설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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