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민 "내 이름으로 화장품 론칭하면 대박날 줄 알았다"

[피플]국내 메이크업계의 전설 1세대 아티스트 이경민 '이경민포레' 원장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  2014.01.29 07:17  |  조회 28914
/사진=홍봉진 기자
/사진=홍봉진 기자
'이영애의 투명 메이크업', '김남주의 얼버닉 메이크업', '김민희의 걸리쉬 메이크업', '최지우의 페미닌 메이크업'…. 1990∼2000년대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메이크업 트렌드다. 이를 만들어낸 주인공은 국내 메이크업계 전설로 통하는 1세대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이경민 '이경민포레' 원장(50)이다.

이 원장은 황신혜, 김민희, 신애라 등 인기 연예인들이 믿고 찾는 '절친'으로, 각종 뷰티 프로그램 방송 출연자로 대중들에게 친숙하다. 1985년 성신여대 서양학과 재학 시절 아르바이트 삼아 광고계에 발을 들여놨다가 29년째 메이크업 외길을 걸었다.

"어린 시절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 전 화장대 앞에 앉아 메이크업을 하는 어머니가 보였어요. 어찌나 재미있던지 매일같이 정신없이 빠져서 보곤 했죠." 어머니가 출근한 뒤 화장대는 어린 이경민의 놀이터였다. 대학교때는 물감 살 돈으로 몽땅 화장품을 샀다. 친구들이 미팅 나가기 전 이 원장을 찾아와 메이크업을 수정받고 갔을 정도로 학교에서 유명인사로 통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이 원장을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길로 이끈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올림픽 전후로 광고시장이 열리면서 곳곳에서 이 원장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삼성전자, SS패션, 반도패션, 에스콰이어, 에벤에셀 등 1980∼1990년대 내로라하는 기업 브랜드 광고 촬영장에는 늘 이 원장이 있었다. 대학생으로서는 꿈도 꾸기 어려운 해외 출장도 많이 다녔다. 일하는 게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1994년에는 13.2㎡(4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을 열었다. 광고 촬영이 아니라도 이 원장에게 메이크업을 받고 싶다는 모델과 연예인의 요청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유명 미용실 체인인 '이경민 포레'의 전신인 '이경민 헤어&메이크업 살롱'은 1996년부터 운영했다.

남편이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숫자 감각이 떨어지는 이 원장을 대신해 모든 일을 해결해줬다. 광고·방송 현장과 연계된 업무 특성상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안을 비웠는데 단 한번도 싫은 내색을 한 적이 없다고. 2005년 이 원장의 역작인 화장품 브랜드 '비디비치'를 론칭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남편이 있다. 제품 개발에 큰 자금이 들어가는 터라 사업을 망설이는 이 원장에게 결혼 이후 차곡차곡 모았던 통장을 내 준 것이다.

/사진=홍봉진 기자
/사진=홍봉진 기자
제품 개발에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론칭 직후 '비디비치'는 큰 빛을 보지 못했다. 인기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만든 상품이라는 타이틀에, 홍콩 최대 유통회사 직원이 직접 찾아와 제품을 달라고 할 정도로 탄탄한 품질을 갖췄지만 유통망을 늘리는데 한계가 있었다. 2012년 신세계인터내셔날에 비디비치를 매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원장은 "브랜드를 론칭하면 서로 매장을 내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콧대높은 백화점 문턱을 넘는게 쉽지 않았다"며 "대기업에 유통과 투자를 맡기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제품 개발에 몰두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비디비치 매각 후에도 신세계인터내셔날 상품개발 담당임원(CD)으로 여전히 제품 개발과 기획 업무를 맡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홈쇼핑 브랜드인 '터치 바이 이경민'을 론칭해 판매중이다. 이 제품은 첫 방송에는 6억원 이상 판매고를 올릴 정도로 큰 인기다.

이 원장은 "미국, 유럽에서도 인정하는 대한민국 대표 화장품 브랜드가 나와야 하지 않겠냐"며 "한국 뷰티산업 경쟁력이라면 머지않은 미래에 글로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 원장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당장 어렵고 힘들어도 끈기있게 준비하고 실력을 쌓아야 한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있다는 옛말이 정답이야.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 페이스북
  • 트위터
  •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