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만원에 산 '에트로' 홈쇼핑 대박, 그후…

[인터뷰] '에트로' 수입하는 듀오 이충희 사장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  2012.04.02 07:30  |  조회 69782
지난 2006년 4월 국내 홈쇼핑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현대홈쇼핑이 특집 편성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에트로(ETRO)' 가방 판매 방송 때문이었다. 이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가 홈쇼핑 채널을 통해 제품을 판매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명품이 홈쇼핑에 팔릴까"라는 우려는 그야말로 기우였다. 에트로 가방은 방송 때마다 '완판(완전판매' 행진을 이어갔다. 특히 에트로 '1-729 보스톤백'은 홈쇼핑에서만 1만개 넘게 팔렸다.

명품과 홈쇼핑을 접목한 획기적인 공식을 찾아낸 주인공은 20년째 에트로를 수입·판매하고 있는 유통회사 '듀오'의 이충희(57·사진) 사장이다. 지난 1993년 고작 800만원을 자본금을 움켜쥐고 사업을 시작해 20년만에 매출 1100억원 회사로 키워냈다.

↑이충희 듀오 사장 ⓒ임성균 기자
↑이충희 듀오 사장 ⓒ임성균 기자
◇"절실하니까 通했다" 800만원에 에트로 판권 얻다

이 사장은 호텔신라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호텔신라가 면세점 사업에 뛰어들었고 이 사장은 면세점 영업점장으로 일했다. 매사에 성실한 그였지만 늘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제품 구입이나 마케팅 담당이 아닌 관리직책은 이 사장의 사업가 기질을 펼치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장은 입사 12년만에 호텔리어 생활을 접고 해외명품 수입업체인 유로통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명품 수입업에 눈을 뜬 그는 1993년 창업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부터 에트로를 팔 생각은 아니었다. 당시 이 사장은 에트로 외에 프라다, MCM 등에도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프라다와 MCM은 이미 한국사업 파트너가 정해진 상태였다. 이 사장은 800만원을 싸들고 한국 총판 선정권을 갖고 있던 에트로의 일본 총판회사를 찾아갔다.

자본금 800만원은 사업제안을 한 사람들 중 가장 적은 금액이었지만 일본 총판회사는 이 사장을 선택했다. 이 사장은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업자금이라고 하기에는 황당할 정도로 적은 금액을 가지고 뛰어간 내 모습이 가장 절실해보였던 것 같다"며 "일본인으로부터 추천서 2장을 받고 한국인 재정보증인을 세우라는 일본 총판회사의 요구를 겨우 겨우 맞춰 에트로의 한국 판권을 따냈다"고 말했다.

◇비상금으로 버텼던 환란

1990년대 초반만해도 국내 명품 시장은 활성화되지 않았다. 이 사장이 백화점, 면세점 등 영업망을 넓히느라 동분서주했지만 에트로의 초기 매출은 형편없었다. 그러다 덜컥 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이탈리아 에트로 본사가 공급가격을 깎아주고 기존 주문을 취소해주는 등 배려했지만 사정이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듀오는 IMF 외환위기를 꿋꿋히 버텼다. 이 사장의 '비상금' 경영 철학 때문이다. 이 사장은 "당시 원/달러 환율이 2000원 수준으로 뛰면서 중소 수입업체들이 줄줄이 무너졌지만 우리는 매출의 20∼30%를 늘 비축해뒀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며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동원할 수 있는 비상금을 유지하는 것이 20년간 지켜온 철칙"이라고 설명했다.

◇홈쇼핑으로 돌파구, 작년 매출 1100억원

외환위기에서 벗어나던 2000년대 초반부터 듀오는 가파른 성장을 시작했다. 에트로 가죽 제품들이 인기를 끌면서 매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듀오의 매출은 지난해 1100억원을 기록했다. 백화점·홈쇼핑 등을 합한 국내 매출이 550억원, 면세점 매출이 550억원 수준이다. 직원은 150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매출목표는 1300억원이다.

당시 직원들은 홈쇼핑 진출을 반대했다. 홈쇼핑이 대중적인 제품을 파는 곳인 만큼 제품을 내놓으면 명품으로서 이미지가 떨어질 것이란 우려였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백화점 매출도 줄지 않았다. 오히려 브랜드가 입소문을 타면서 백화점 매출이 10∼20% 늘었다.

이 사장은 "에트로는 서울에서 인기 브랜드지만 수도권 외곽만 나가도 생소한 브랜드"라며 "인지도가 낮아 서서히 무너지느니 1시간 내내 우리 브랜드를 알리고 제품도 판매할 수 있는 홈쇼핑은 승산이 있는 게임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국 론칭 20년만에 에트로의 매장수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현재 에트로 매장은 백화점 26개, 면세점 13개 등 전국 39곳에 있다. 전 세계에 200여개에 불과한 에트로 매장의 20%가 한국에 몰려 있는 셈이다.

↑이충희 듀오 사장 ⓒ임성균 기자
↑이충희 듀오 사장 ⓒ임성균 기자
◇연내 에트로 남성복 전용매장 오픈 계획

이 사장은 연내에 에트로 남성 전용매장을 오픈할 계획이다. 남성 명품시장이 무르익은 만큼 에트로 남성 제품 전용 판매공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양복과 구두, 피케셔츠 등 남성복 라인을 대거 들여왔다.

에트로 수입·판매 외에 화장품 사업에도 박차를 가한다. 올초부터 선보이고 있는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올랑'에 이어 올 연말이나 내년초에는 미국 화장품 브랜드 '쓰리랩'를 수입해 판매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자체 화장품 브랜드 사업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사장은 "이탈리아 본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매출 실적도 좋아 이변이 없는 한 에트로 수입·판매는 계속할 것"이라며 "하지만 내 브랜드가 아닌 총판 계약은 상황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만큼 사업이 종료되는 시점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산 80%는 사회환원…함께해야 더 좋은 세상"

이 사장은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다. 지난 2010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비리가 불거지면서 성금이 줄어 복지시설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선뜻 1억원을 기부한 것.

지난 2002년 백운장학재단을 설립한 이후 지금까지 650여명의 학생에게 약 14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 사장이 개인적으로 공동모금회, 고아원 등에 기부하는 것까지 합하면 기부금 총액은 40억원이 넘는다. 미술, 음악 등 메세나(문화·예술·스포츠 등에 대한 기업의 후원) 활동도 활발하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본사 5층을 갤러리로 꾸며 전시공간을 구하지 못하는 신진 미술가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2명의 자녀에게 각각 재산의 10%를 나눠주고 나머지 80%는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다. 이 사장은 "나눠줄 돈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지만 내 자식들은 8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한 나보다 훨씬 좋은 조건 아니냐"며 "혼자인 세상보다 함께 사는 세상이 훨씬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눔은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게 중요하다"며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하겠다고 미루지 말고 단돈 5000원이라도 지금 당장 기부를 시작하면 사회의 단단한 뿌리가 돼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충희 듀오 사장은 =

여덟 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윤리교사였던 아버지의 월급만으로 열 식구가 생활했으니 집안 형편은 한번도 넉넉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수집에 조예가 깊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골동품과 그림을 많이 접했다.

초등학교 시절인 1960년대 중반부터 아버지 손을 잡고 서울 인사동 골동품 가게와 화랑을 드나들며 미술 보는 눈을 떴고 사업의 기본인 흥정의 기술을 익혔다. 이 사장이 지난 2010년 청담동 본사에 문을 연 '백운갤러리'도 미술을 사랑했던 아버지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이 사장은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낮아 생활이 어려운 화가들에게 백운갤러리를 빌려준다. 대관료는 100만원으로 책정했지만 돈을 받은 적은 한번도 없다. 전시회 작품 한 점을 대신 받는다. 임대료가 비싼 금싸래기 강남 빌딩의 공간을 무료나 다름없이 내 준 것은 젊은 작가들에게 힘이 돼주고 싶어서다. 해외출장때 시간을 쪼개 벼룩시장에서 그림을 산다.

이 사장은 장학재단, 공동모금회 등에 큰 돈을 기부하지만 적은 금액도 중시한다. 직원들에게도 한 푼, 두 푼 모은 것이 밑천이 되고 거름이 된다고 강조한다. 듀오 전 직원들이 매달 5000원을 월급에서 공제해 기부하는 것도 이 사장이 밀어 붙였다.

이같은 사회환원 활동을 인정받아 큰 상도 여러 번 받았다. 지난 2008년에는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코멘다토레(Commendatore)' 문화훈장을 받았다. 주한 이탈리아 대사가 듀오의 활발한 나눔 실천이 이탈리아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줬다고 추천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나눔실천 유공자로 선정돼 국민포장을 받았다.

여러 형제와 부대끼며 자라서인지 이 사장은 인간관계를 끔찍히도 중요하게 챙긴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끝까지 함께 한다는 게 그의 철칙이다. ROTC 군대생활을 했던 사람들과 3개월에 1번씩꼭 만나고 동문.지인 등 각종 모임에서 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그다. 직원들과 등산한 뒤 함께 목욕탕에 갈 정도로 소탈하다는 평가다.

◇약력
△1955년 서울 출생 △1973년 서울 휘문고 졸업 △1977년 경기대 관광경영학과 졸업 △1986년 경기대 관광경영학 대학원 졸업 △1979년 호텔신라 입사 △1991년 유로통상 입사 △1993년∼현재 듀오 대표 △2002년∼현재 백운장학재단 이사장 △2010년∼현재 백운갤러리 이사장
  • 페이스북
  • 트위터
  •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