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택에 쓰러져 있던 현미, 오늘 사망 1주기… '밤안개'로 떠난 디바

머니투데이 마아라 기자  |  2024.04.04 08:51  |  조회 2804
원로가수 고(故) 현미(본명 김명선)의 빈소 /사진=공동취재단
원로가수 고(故) 현미(본명 김명선)의 빈소 /사진=공동취재단
원로 가수 현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흘렀다.

현미는 2023년 4월4일 오전 세상을 떠났다. 팬클럽 회장 김씨가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고인을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사망했다. 향년 85세.

1938년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태어난 현미는 유년 시절을 평양에서 보냈다. 6.25 한국전쟁 당시 1·4 후퇴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200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당시 북한의 가족들을 만나는 모습이 공개돼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현미는 미8군 위문 공연 무대 칼춤 무용수였다. 그러던 중 일정에 불참한 여가수 대신 무대에 오르면서 가수의 길을 걷게 됐고 1957년 현시스터즈로 정식 데뷔했다.

1962년에는 미국 재즈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와 냇 킹 콜 등이 부른 '잇츠 어 론섬 올드 타운'에 자신이 작사한 가사를 입혀 '밤안개'를 발표해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후 '떠날 때는 말없이', '보고 싶은 얼굴', '애인' 등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한국을 대표하는 디바로 성장했다. 그는 2007년 데뷔 50주년을 맞아 한국 가수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2017년 가수 현미가 경북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웅부홀에서 열린 '청춘음악극 그 시절 그 노래' 무대에 올라 자신의 대표곡 '밤안개'를 열창하고 있다. /사진=뉴스1
2017년 가수 현미가 경북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웅부홀에서 열린 '청춘음악극 그 시절 그 노래' 무대에 올라 자신의 대표곡 '밤안개'를 열창하고 있다. /사진=뉴스1
현미의 가족은 연예계 로열패밀리로도 잘 알려져 있다. 현미는 가수 노사연, 배우 한상진의 이모로 유명하다. '사랑은 유리 같은 것'으로 인기를 끈 원준희의 시어머니이기도 하다. 큰아들도 고니라는 이름으로 가수 데뷔를 했다.

2023년 4월11일 서울 중앙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현미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영결식 사회는 방송인 이용식이 담당했고, 대한가수협회장인 가수 이자연이 조사를 맡았다. 가수 박상민과 알리가 추도사를 낭독했다. 조가는 1964년 발매된 현미의 대표곡 '떠날 때는 말없이'로 준비됐다.

가수 이자연과 팬클럽 회장 김씨는 유튜브 채널 '연예 뒤통령이진호'를 통해 "넘어져서 그런 것 같다"라고 현미의 사망 원인을 추측하기도 했다.

이자연은 "현미 선배님이 작년에 베란다에서 꽃 화분 만들다가 넘어지셔서 발목이 부러졌다. 한 번 다치면 약하지 않나. 아마 그게 원인이 아닌가 싶다"라며 "싱크대 앞에서 넘어지셨다는데, 누군가 빨리 도와줬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김씨는 "당시 건강하신 상태였다. 세탁소 심부름을 갔다 온 게 딱 5분이었는데, 우유 잔은 탁자에 두고 부엌에 쓰러져 계셨다"며 "119도 금방 왔는데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이미 사망선고가 떨어졌다"고 전했다.

현미의 유해는 두 아들이 거주하고 있는 미국에 안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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