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디하지 않은 트렌디, 올 가을 '놈코어 패션'이 뜬다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의 단골 패션, 청바지+흰 티셔츠로 무심한 듯 시크하게

머니투데이 스타일M 김보영 기자  |  2014.08.14 08:51  |  조회 16098
매 시즌마다 현란한 자태로 눈과 마음을 괴롭히던 트렌드에 대한 염증일까. 최근 패션계에서는 안티 트렌드로 정의되는 '놈코어(Normcore)'가 트렌드로 떠올랐다.

'놈코어'는 '노말(normal)'과 '하드코어(hardcore)'의 합성어로 케이홀(K-hole)이라는 뉴욕 기반의 트렌드 예측 전문 회사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비롯됐다. 케이홀은 이 보고서에서 "놈코어는 이전의 트렌드가 다름을 추구하면서 쿨함을 추구했던 것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면서 "진정으로 놈코어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세상에 평범한 것은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놈코어는 특별한 누군가가 되는 자유를 원하지 않는다"며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자유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시작으로 각종 매체에서는 앞다투어 이 '특별한' 트렌드에 대해 다루기 시작했다. 특히 뉴욕 매거진의 피오나 던컨은 놈코어 패션에 대해 '자신이 70억 인구 중에 한 명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을 위한 패션'이라고 소개해 관심을 모았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고, 트렌디하지 않으면서 트렌디한 놈코어 패션에 대해 소개한다.

◇놈코어, "트렌디하지 않은 것이 가장 트렌디"

(왼쪽부터)스텔라 매카트니, 조르지오 아르마니, 라프 시몬스/사진=2013 S/S 컬렉션
(왼쪽부터)스텔라 매카트니, 조르지오 아르마니, 라프 시몬스/사진=2013 S/S 컬렉션
특정한 룩에 대한 정의보다는 패션에 관한 철학적 접근에 더 가까운 이 트렌드는 '놈코어'라는 단어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의 단골 패션이었다. 컬렉션에서 최첨단의 동시대적 패션을 펼쳐내던 많은 디자이너들은 피날레 인사에서 만큼은 극도로 단순하고 평범한 패션으로 등장해 보는 이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스텔라 매카트니, 마크 제이콥스, 알렉산더 왕,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은 검은 티셔츠에 검은 팬츠 또는 흰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나 수줍게 인사를 하곤 사라져 눈길을 끌었다.

이들 디자이너처럼 스포티즘, 네온, 메탈, 시스루 등 끝 없이 쏟아지는 트렌드의 홍수에 지친 몇몇 이들은 "Back to the basic"을 외치기 시작했다. 패션 피플들은 그 어떤 브랜드라도 상관 없는 평범한 흰 티셔츠와 적당한 정도의 워싱이 가미된 청바지 등 지극히 단순한 아이템들에 빠르게 매료됐다.

◇놈코어 패션 아이템은 어떤 것?

/사진=머니투데이DB
/사진=머니투데이DB
놈코어는 디자인보다는 실용성에 기반을 둔,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패션으로 설명할 수 있다. 프리젠테이션의 귀재 스티브 잡스가 청바지에 블랙 터틀넥 스웨터를 입었던 것처럼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스타일을 의미한다. 프린트 티셔츠, 베이직한 흰색 셔츠, 심플한 폴로 셔츠, 삼선 슬리퍼, 무늬 없는 무채색 스웨터 등 1990년대에 대량 생산된 아이템들이 이에 해당한다. 백화점에만 살 수 있는 유명 브랜드의 제품 보다는 마트에서 찾아볼 수 있을 법한 아이템이 놈코어에 가깝다.

또한 특별히 패션에 관심이 없는 중년층의 주말 패션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트렌디하지 않은 사람들이 트렌디해질 수 있다는 것, 이번 주말 문 밖을 나서는 아버지의 패션이 가장 트렌디한 놈코어 스타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트렌디하지 않는 패션으로 트렌디한 놈코어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주말에 그저 아무렇게나 주워 입은 옷이 의도와는 달리 스타일리시한 놈코어 패션이 될 수 있다. 또 의도적으로 놈코어 패션을 연출했더라도 많은 이들을 이를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는 점이 놈코어의 매력이다. 하지만 트렌드를 지나치기 어려운 요즘 트렌드에서 해방(?) 될 수 있다는 점에서(트렌드에 완벽히 갇히는 셈이지만) 놈코어 패션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4 F/W 놈코어 패션은?

/사진=머니투데이DB
/사진=머니투데이DB
놈코어는 2014 F/W 컬렉션에서도 많은 디자이너들의 사랑을 받았다. 더 로우, 에르메스, 질샌더, 휴고보스, 라코스테, 띠어리 등은 놈코어를 재해석한 듯한 미니멀 룩을 선보였다. 특별히 여성성을 강조하지 않은 매니시한 수트와 간결한 디자인의 흰색 스니커즈, 무늬 없는 스웨터 등이 런웨이를 수 놓았다. 이들 패션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으면서도 클래식 특유의 은은한 멋을 자아내 눈길을 끌었다.

또한 샤넬은 스니커즈로 무장한 모델들이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는 형식으로 F/W 컬렉션을 진행해 화제가 됐다. 명품을 마트에서도 입을 수 있는 평범한 옷으로 되돌려 놓은 셈. 특히 장바구니에서 형태를 따온 체인백과 포장용 그물로 만든 듯한 원피스 등은 위트로 가득해 미소를 자아냈다.

올 가을 놈코어 패션을 연출하길 원한다면 브이넥 니트 스웨터에 블랙 팬츠로 간단하게 완성할 수 있다. 여기에 화려하지 않은 흰색 스니커즈 하나만 있다면 충분하다. 옷장에서 오랫동안 꺼내 입지 않았던 아이템들을 뒤져본다면 놈코어에 꼭 어울릴 만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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