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레스토랑에 호텔 스위트룸까지…기념일이 두려운 남자들

Style M  |  2015.12.18 11:12  |  조회 820

[김정훈의 '없는 남자'-8]기념일 없는 남자 - 타인 시선 의식 않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법

오프라인이고 온라인이고 남자들이 문제란다. 오프라인에선 소극적인 남자들을 향한 여성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온라인에선 남성들의 전투적인 악플이 연애와 사랑의 근간을 후벼판다. 왜 이렇게 까다로운지, 왜 그리 불만이 많은지. 결핍 있는 남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들춰주는 'OO 없는' 남자 이야기.


/사진=영화 '발렌타인데이' 스틸컷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떨고 있는 남자들의 모습도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혹한기 훈련까지 꿋꿋하게 버텨낸 남성들이 사시나무 떨 듯 긴장하는 이유. 바로 기념일 릴레이가 목전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당장 다음 주 빼빼로 데이(11월11일)를 시작으로 12월 크리스마스, 2월 밸런타인데이, 3월 화이트데이까지. 챙겨야 할 기념일이 매달 포진돼 있다. 여성들 역시 기념일을 준비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남성들의 부담이 큰 게 기정사실이다. 그런 기념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예 기념일을 회피하려는 남성들이 꽤 있다.


통상적으로 남성들이 초콜릿을 받는 날이라고 알려진 밸런타인데이도 편하게 즐길 수만은 없다. 그녀가 정성껏 마련한 선물을 받고나면 그보다 더 만족스런 식사코스 정도는 준비해 놔야 멋진 남자가 된다는 게 엄연한 불문율이다. 심지어 누군가, '밸런타인데이는 사랑하는 연인들이 마음을 확인하는 날이지 여자가 남자에게 반드시 초콜릿을 줘야 하는 날이 아닙니다. 외국에선 남자가 여자에게 주기도 하거든요'라는 말까지 했다고 하니. 2월 만 이라도 맘 편히 지내보려 한 남성들의 아우성은 장난이 아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준비하는 게 그렇게 불편해?'라며 실망하는 여성들도 있겠지만, 기념일을 챙겨야 하는 남성들은 정말로 많은 걱정을 한다. 센스. 바로 그 센스 있는 남자가 돼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더욱 그렇다. 식사는 어디서 해야 하고 숙소는 어디를 잡아야 하며 선물은 뭘 해야 여자친구의 좀 더 만족스런 웃음을 볼 수 있을지 지금도 그들은 고민하고 있다. 가격폭리를 취하려는 상인들에게 맞설 여유 따위는 당연히 없다. 그런 것에 지나치게 반응했다가는 '찌질이'란 수식어가 붙을 게 뻔할 것 같아서다.


/사진=영화 '러브액추얼리' 스틸컷


"빼빼로데이? 상술이지. 크리스마스? 나 불교잖아. 석가탄신일에 맛난 것 먹자. 그 땐 가격 프리미엄도 없어. 밸런타인데이? 오글거리게 연인의 날 이 뭐야. 국경일엔 태극기 한 번 안다는 사람들이 서양 기념일은 참 많이 챙긴다니까. 핼러윈데이도 그렇고. 참 글로벌하네."


이렇게 쿨하게 비판할 수 있는 남성들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기념일을 챙기지 않아도 좋다며 남성들의 부담감을 덜어주는 여성들도 많다. 하지만 그녀들 역시 100일이나 200일 따위의 비공식적 기념일을 굳이 챙기지 않는 것일 뿐,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데이 등 공식화 된 연인들의 명절은 쉽게 지나칠 수 없을거다. 완전히 기념일을 무시하는 남자보다는 적당히(지나치게 요란하지 않고 센.스.있게) 챙기는 남자가 '좋아요'를 받을 확률이 높다는 것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좋아요'를 받기 위해 과연 다음의 노력들을 감수할 필요가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평상시 1만원에서 2만원 대의 다양한 메뉴 선택권이 있던 레스토랑에서 부실하기만 한 1인당 5만원 이상의 코스요리를 먹어야 하는 일. 그 레스토랑의 예약 또한 잡을 수가 없어 몇 주 전부터 전화를 붙잡고 애써야 하는 일.


/사진=영화 '발렌타인데이' 스틸컷


숙소는 또 어떠한가. 10만원이면 특실의 호사까지 누릴 수 있던 모텔의 빈 방을 찾아 하염없이 헤매는 일, 결국 20만원 이상의 스위트룸에서 묵어야 하는 일. 기념일만큼은 모텔이 싫다는 연인을 위해 호텔까지 염두해야 하는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 소주보다는 와인을, 맥주보다는 샴페인을 준비해서 조금이라도 더 화려하고 있어 보이는 상황을 연출하는 것. 정말로 필요한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좋아요'를 받을 만한 선물을 준비하는 것만이 기념일을 준비하는 자세일까?


아니다. 만인이 챙기는 기념일이라고 해도 결국 둘 만의 기념일일 뿐이다. 타인의 시선 따위는 의식 않고 행복한 시간을 가지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그 방법이 뭐냐고? 그동안 여유가 없어 하지 못했던 취미 생활을 함께 시작하는 날로 정한다든지, 기념일만큼은 서로가 가장 좋아했던 요리를 직접 만들어 먹는 다든지, 첫 만남의 기억과 그 날의 상황을 더듬어 재연해 본다든지. 다양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있을 거다. 하지만 가장 확실하고 특별하게 그녀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은 그녀를 만나고 있는 당신만이 알고 있다.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 평소엔 시도해 보지 못했지만 늘 하고 싶어 하던 어떤 경험, 혹은 시도. 그런 것들은 그 어떤 연애의 고수도 해결할 수 없다. 그 고수들은 당신의 여자친구를 만난 적이 없을 테니까. 그 방법을 찾아내는 건 그녀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자세히 지켜 본 당신의 몫이다.


/사진=영화 '발렌타인데이' 스틸컷


그러니 기념일을 챙겨야 한다는 부담스러움만 떠올리며 여자친구를 서운하게 하지 않는 게 좋다. 여성들이 원한다고 한 적도 없는 화려한 코스들을 지레 짐작해서 괜한 부담감에 시달리는 어리석은 남성이 될 필요는 없단 얘기다. 사실 타인들에게서 '좋아요'를 받는 쪽이 편하긴 하다. 충분한 돈만 있으면 되는 문제니까.


당신의 연인에게서 진짜 '좋아요'를 받는 방법을 찾는 게 훨씬 어렵다. 사치 속에서 검소를 행한다고 해서 그게 무조건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는 건 아니다. 그녀의 진짜 '좋아요'를 받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그녀에 대한 완벽한 관찰과 관심이 기본이 돼야 한다. 부지런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려운 방법이니 만큼 그 과제를 해내면 둘의 사랑은 더 단단해질 수 있다. 페이스북 타임라인 속에선 묻혀버릴지 몰라도, 두 사람의 타임라인에선 그럴 수가 없을 거다.


일상에서 해 보지 못했던 일이 사치였으므로, 그래서 비합리적이라곤 해도 기념일을 위시해 사치를 경험해 보고 싶다면 굳이 말리진 않겠다. 상대가 원하는 게 뭔지 확실히 몰라서, 그냥 남들이 좋다고 할 만한 곳에 가고 그런 선물을 하는 남성들의 노력 역시 사랑스럽기도 하다. 이런 남성들의 공통적인 소원이 있다. '말 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걸 알아차려봐. 그게 센스야.'라는 마음을 가지기 보다는 확실하게 원하는 걸 말해주는 여성이 되어달라는 거다.


아무튼 남성들의 긴장은 계속 될 듯하다. 이제 곧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기념일을 챙겨 준 오빠들에 대한 칭송, 오빠들이 선사한 멋진 선물과 고급 레스토랑의 맛난 음식 사진들이 비교하듯 업로드 될 거니까. 질투가 남에도 불구하고 굳이 '좋아요'를 눌러 남자친구의 눈에 들게 하는 장난(?)은 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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