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후 곧장 샤워하러 가는 남자, 섹스 '후희'도 모르니?
[김정훈의 별의별 야식<3>] 촉촉한 티라미수 - 즐거움을 끝까지 책임져주는 매너가 중요
머니투데이 스타일M 김정훈 칼럼니스트 | 2015.04.17 09:24 | 조회
31738
누구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을 것 같은 날, 마음껏 연애상담을 할 수 있는 편안한 술집이 있다면 어떨까? 공허한 마음과 몸을 채워 줄 요리, 만족스런 연애와 사랑을 위해 먹으면 좋은 음식은 뭐지? 남녀가 섹스 전과 후에 먹는 음식은? 이 모든 궁금증이 해결 되는 곳이 있다. 아무에게도 털어 놓지 못했던 은밀한 연애 이야기로 만들어진 맛있는 메뉴가 매주 채워지는 곳. 김정훈 연애칼럼니스트가 이 시대의 편식남·편식녀들에게 추천하는 힐링푸드, 별의별 야(한)식(탁)!
/사진=Alexis Fam Photography in Flickr |
그런데 남성들이 알고 있어야 할 여성들의 배는 4종류나 된다. 고기배와 밥배, 디저트배와 술배가 다 따로 있다는 것이다. 밥배와 디저트배가 따로 있다는 속설을 직접 실험해 본 영상이 기억난다. 충분한 식사로 꽉 차 있던 위가 디저트를 본 순간 신속히 공간을 마련하던 그 움직임이란! 고기와 술배가 추가 된 새로운 버전은 최근에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이상의 고기와 술을 늘 넉넉히 준비해 놓고 있다. 알다시피 우리 가게엔 여자 손님이 더 많으니까. 디저트에 대해선 고민을 많이 했었다. 직접 만들 엄두가 결코 나지 않았다. 인기 있는 디저트 가게에서 몇 종류를 공수 받는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굳이 그럴 필요 까진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한 손님의 거센 반발이 있었다.
"남자들은 왜 디저트의 중요성을 모르는 거죠?"
'전 알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하기엔 디저트 메뉴를 전혀 준비해 놓지 않고 있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남자친구가 디저트에 돈을 쓰는 걸 대단히 아깝게 생각한다며 불만을 토로 했다. 아이스크림과 케이크 같은 기본적인 디저트는 물론이고 그녀가 좋아하는 마카롱과 에끌레어, 크림 브륄레 등과 같은 디저트는 아예 그 정체조차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날 데이트에서 먹을 식사의 종류에는 엄청나게 신경을 쓴단다. 그녀는 그가 메인요리에 쓰는 신경을 조금만 디저트 쪽으로 옮겨주길 바랬다. 그녀에게, 아니 여자들에게 있어 달콤한 디저트란 그날의 식사는 물론이고 데이트 전체를 더욱 달달하고 풍성하게 해주기도 한다는 걸 모르는 남자인 듯 했다.
/사진=CarbonNYC [in SF!], James Theophane in Flickr |
그래서 고민 끝에 준비해 놓은 디저트가 티라미수다. 오븐을 사용하지 않아도 간편히 만들 수 있는 요리로, 커피에 적신 쿠키나 카스텔라를 그릇에 담고 크림치즈로 층을 쌓아 카카오 가루를 뿌려 먹는 전통 이탈리아식 디저트다. 진한커피향과 크림치즈의 맛이 어우러져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는 티라미수는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이름이다. 그 어원은 꽤 야하다. 이탈리아어로 tirare (끌어 올리다) + mi (나를) + su (위로)의 합성어로서 영어로는 pick me up, 즉 '나를 끌어올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실제로 한 입 먹게 되면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이 처음 닿았던 연인의 입술을, 달콤한 첫 키스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야한 식탁에 딱 어울리는 디저트가 아닌가. 마침 하루 동안 숙성시킨 티라미수를 냉장고에서 꺼내는데 남자친구를 대동한 그녀가 등장했다. 생각보다 더 우람한 체형의 그가 조심스럽게 티라미수를 떠먹는 모습이 조금 우스꽝스럽긴 했다.
"'끌어 올리다'라는 말이 설마 그...런 의미는 아니죠?"
"힘이 나게 한다는 뜻이니 뭐 해석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죠?"
그녀가 화장실에 간 사이 티라미수의 뜻을 설명해주자 그는 조금 당황한 듯 했다. 그리곤 왜 여성들이 디저트에 열광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했다. 메인요리가 대단히 맛있다면 디저트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간식이 아니냐고 물었다.
"디저트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에요. 식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거든요. 디저트(dessert)란 단어는 '식탁을 치우다'라는 뜻의 프랑스어인 데제르비르(desservir)에서 유래됐다고 하더군요. 식탁을 정리한 뒤 즐기는 후식인거죠. 충분한 포만감 이후의 행복에 대해서도 신경을 쓴다는 거잖아요? 불필요하게 먹는 간식이 아니라 테이블 매너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거예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티라미수 조각을 입에 넣곤 맥주를 마셨다. 케이크가 술안주로도 괜찮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는 남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사진=ralph and jenny in Flickr |
이야기를 듣고 난 남자는 한숨을 쉬며 남은 맥주를 들이켰다. 난 말 없이 잔을 부딪쳐줬다. 한숨의 무게는 충분히 공감이 됐다. 돌아온 여자는 계속해서 디저트 예찬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디저트를 돌체(dolce)라고 하는데 부드럽고 달콤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 아무리 훌륭해도 지나치게 무거운 건 역시나 별로라는 얘기, 남자의 기분은 아랑곳 않고 본인의 의사를 피력하는 게 보였다. 나는 말했다. 지금 꽤 무거운 디저트 느낌이에요.
어쨌거나 그녀 덕분에 티라미수는 물론이고 과일푸딩이나 아이스크림 정도는 늘 구비해 놓고 있다. 그런데 방금 도착한 여자 손님이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인상을 찌푸리는 표정이 낯익다 했더니 일전의 커플 옆자리에 꽤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여자였다. "왜 에피타이저는 없어요? 후희 만큼이나 전희도 중요한 건데" 음...에피타이저라...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