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 작년 입은 옷 주고 내년 입을 옷 골라요

[청년기업가대회 수상기업 탐방] <1> 아동의류 교환사이트 '키플'

머니투데이 이현수 기자  |  2011.12.01 05:30  |  조회 245898
지난 10월에 열린 기업가정신재단 주최 청년기업가대회 본선 진출 10개팀이 권도균 이니시스 창업자, 이택경 다음 공동창업자, 고영하 고벤처포럼 회장 등으로부터 멘토링을 받으며 본격적인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10개팀의 비즈니스 모델과 사업계획 등을 소개한다.
청년기업가대회 본선 진출팀인 키플이 아동의류 교환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이와 유사한 사이트를 통해 교환되는 아이들 옷 거래건수가 연 100만건에 달한다. 한봉식 인턴사원(왼쪽부터), 주만석 이사, 이성영 대표, 이서윤 이사 등이 옷 꾸러미 등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최준필 인턴기자 choijp85@
청년기업가대회 본선 진출팀인 키플이 아동의류 교환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이와 유사한 사이트를 통해 교환되는 아이들 옷 거래건수가 연 100만건에 달한다. 한봉식 인턴사원(왼쪽부터), 주만석 이사, 이성영 대표, 이서윤 이사 등이 옷 꾸러미 등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최준필 인턴기자 choijp85@
여아, 7살, 스키복 상하의입니다. 이랜드 주니어에서 산 옷이에요. 우리 아이가 처음 스키를 배울 때 입었어요. 올 한해 더 입히려고 했는데 작아져서 내놓습니다. 다른 아이가 더 예쁘게 입었으면 좋겠네요.

아동의류 교환사이트 ‘키플(www.kiple.net)’에 올라온 글이다. 댓글이 달렸다. "좋은 아이템인데요. 우리 아이도 내년에 7살이 되는데. 예쁘네요."

청년기업가대회 본선 진출팀인 키플이 지난달 초순 사이트를 열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자녀가 입던 옷을 내놓아 다른 부모가 선택하면, 자신도 아이의 옷을 고를 수 있는 ‘협력적 소비(Collaborative Consumption)’ 비즈니스이다.

◇ 기부를 넘어선 나눔경제 모델
키플 게시판 캡처화면
키플 게시판 캡처화면
자녀를 둔 부모라면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 옷 때문에 고민될 때가 많다. 이웃이나 친척을 주기도 애매하고,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될 지 모를 의류수거함에 넣자니 아깝다. 키플은 아이들 옷을 효율적으로 교환할 수 있는 창구이다. 사진과 설명을 사이트에 올리면, 다른 부모가 선택해 가져갈 수 있다. 자신이 내놓은 옷 꾸러미가 선택이 되면 자신도 다른 사람이 내놓은 옷 꾸러미를 선택할 권리가 생긴다. 경제적 부담을 줄이면서 친환경, 나눔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셈이다.

경제활동이라는 점에서 기부단체를 통한 옷 교환과는 다르다. 기부단체의 경우 조건 없이 기부한 뒤 돈을 주고 물건을 사야 하지만, 키플은 주면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는 면에서 기부가 아닌 경제활동인 것이다. 자신도 선택이 돼야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목이 늘어지거나, 무릎이 나온 옷, 낡은 옷 등을 내놓는 일이 거의 없다. 이성영 대표(41)는 "단순히 착한 일이라는 차원을 넘어 반대급부가 있으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것이라는 데 착안했다"고 말했다. 또한 단체를 통해 기부를 하거나 물품을 사려면 찾아가야 하지만 키플은 택배로 건네주고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키플은 많게는 10벌 정도가 들어있는 꾸러미 당 8000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꾸러미를 받아가는 쪽이 내면 된다. 여기에다 택배비 4000원을 포함하면 소비자들이 꾸러미를 한번 받을 때 1만2000원이 들게 되는데, 인터넷 중고 쇼핑몰에 올라오는 옷 한 벌 가격과 비교하면 상당한 저렴한 것이다.

◇ 미국에서 보편화된 ‘협력적 소비’
미국에서는 이미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는 소비를 뜻하는, ‘협력적 소비’가 사회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자동차나 숙소를 공유하는 업체, 기타 중고물품을 교환하는 모델이 실리콘밸리 초기기업들의 비즈니스로 자리잡고 있다. 이 대표 등은 실리콘밸리의 협력적 소비 비즈니스를 연구하면서 한국형 모델로 아동의류 교환을 선택했다. 아이들 옷은 손상도 적고, 내놓기도 쉬운 아이템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는 친척이나 이웃간에 옷을 나눠 입는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대표적인 아동의류 교환사이트인 스레드업(www.thredup.com )은 지난해 총 100만 건이 거래됐으며, 사이트에 올라와있는 꾸러미가 일평균 5000개에 달한다.

◇ 엄마들 커뮤니티 활성화 계획
중고물품을 주고받는 특성상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품질이다. 키플은 옷의 품질보증을 위해 포인트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옷에 대해 가상의 가치를 매기는 방식이다. 이 대표는 "여러 사람들이 특정 꾸러미에 대해 가격을 매기고, 평균치에 가장 근접하게 평가한 사람이 포인트를 받아간다"며 "가격이 정해지면 해당 꾸러미를 내놓은 사람은 그 가격대 꾸러미들만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치를 매겨 좋은 옷을 내놓도록 유도하자는 것.

이 서비스의 주요 타깃은 역시 엄마들. 그래서 키플은 사이트 홍보를 위해 엄마들의 모임을 직접 찾아 다닐 계획이다. 이 대표는 "지역별로 퍼진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자를 이틀에 한 번 꼴로 만나고 있다"며 "키플내에도 엄마들이 각종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키플 사이트에 올라온 꾸러미는 40여 개로 키플은 총 500개 꾸러미가 모이면 본격적인 교환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우리아이 작년 입은 옷 주고 내년 입을 옷 골라요

[창업 스토리] "직장동료 3명 '실패' 밑천 의기투합"

기자가 키플을 찾아간 지난 24일, 이성영 대표와 주만석(38), 이서윤(34) 이사 등 3명의 팀원은 서울 구로구의 한 인터넷검색 솔루션회사 사무실 귀퉁이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무실 구할 자금이 없는 키플을 위해 이 대표 등이 예전에 일했던 회사 측에서 배려해 준 것. 이 대표 등은 원래 이 회사 사내벤처의 팀원들이었다. 2009년 이 회사는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벤처팀을 만들었고, 각자 다른 부서에 있던 사람들의 지원을 받은 것.

회사는 2년 동안 20억원 이상 투자해 패션관련 인터넷 광고비즈니스 모델 기술을 개발했지만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 지난해 말 20명이 있던 사내벤처팀이 해체되는 등 회사 차원의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회사를 그만두게 된 3명의 키플 팀원들은 새로운 창업 아이디어를 고민하다 ‘협력적 소비’ 서비스 모델을 알게 됐다. 아동의류 교환 서비스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을 공부하던 중 얻은 아이디어였다.

이 대표는 "이전 회사에서 좋은 아이템과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시장에 대한 이해와 서비스에 대한 철학이 부족해 실패했다"며 "하지만 한 번 실패해본 경험이 창업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새로운 창업 아이디어도 예전에 했던 온라인 광고비즈니스가 아니라, 거래에 대한 수수료를 발생시킬 수 있는 플랫폼 분야로 잡았다. 거대 포털 정도의 트래픽이 없으면 광고비즈니스가 쉽지 않은 모델이라는 것을 해보고 나서 알게 된 셈이다.

이 대표는 "스타트업은 어떤 측면에서는 버티기 싸움"이라며 "청년기업가대회 도전을 통해 버티기에 필요한 자부심과 멘토를 얻게 돼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적어도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나쁘지는 않다, 열심히 하면 될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키플은 청년기업가대회 본상 수상 10개 팀 가운데 연령이 가장 높다. 이 대표는 "팀원 모두가 아이가 있기 때문에 아동의류 교환을 통한 협력적 소비 비즈니스 자체에 사명감과 재미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며 "사회에 기여하면서 창업에 대한 꿈도 펼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현수기자 hyde@


[멘토 코멘트] 양석원 코업 대표
"'재분배시장' 사업영역 확실, 빠른 시장선점 여부가 관건"


양석원 코업 대표
양석원 코업 대표
물건을 돈 주고 사는 대신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협력적 소비는 해외에서 점점 주목을 받고 있는 대안적 소비 형태이다. 특히 키플이 서비스를 시작한 아동의류 교환서비스는 미국의 사이트에서 연 100만 건의 거래가 이루어질 정도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해외의 서비스 트렌드를 관찰하면서 과연 한국에서도 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고, 이를 풀어나가는 게 창업가의 도전과제라고 생각해 키플의 멘토가 됐다.

키플의 최대 강점은 재분배시장이라고 하는 확실한 사업영역을 정했다는 것. 개인과 개인간의 거래를 통해 서비스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모델이기 때문에 일단 한 번 사용자의 충성도가 생기면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본다.

물론 걱정되는 점도 있다. 서비스가 어느 정도 성장한다면 당연히 벤치마킹하는 사례들이 나올 텐데, 기존에 콘텐츠나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조직에서 시도할 경우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이다. 때문에 빠른 시일 안에 거래에 충분한 꾸러미를 모아 활발한 거래가 이뤄지도록 해서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과제다.

아이 옷을 교환해 입히는 게 주류 문화로 자리잡기 어려울 것이라 보는 일부의 시각도 극복해야 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정보통신기술에 익숙하고 새로운 문화에 거부감이 덜했던 사람들이 협력적 소비 모델의 성장을 뒷받침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키플도 기술적으로 물건교환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사용자가 물건의 질을 신뢰할만한 장치를 마련한다면 이 모델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용자들이 점점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키플은 불특정한 대중을 상태로 서비스를 알리기보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더라도 육아와 관련한 온라인 카페를 중심으로 홍보활동을 해야 한다. 소비자들에게서 답을 구하는 서비스 모델이기 때문이다. 커뮤니티를 발굴하고 직접 대면으로 서비스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와 실소비자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승산이 있다. 소비자들과의 대화를 정기적으로 정해서 시작하고, 그 내용들도 사이트를 통해 지속적으로 공유하려는 노력이 뒷받침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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