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만원으로 만든 패션 브랜드, 4년만에 뉴욕 진출한 사연
[스타일M 인터뷰] '오디너리 피플' 장형철 디자이너
머니투데이 스타일M 배영윤 기자 | 2015.09.17 10:03 | 조회
14076
장형철 디자이너/사진=김창현 기자 |
성공에 관한 이 주옥같은 어록은 재미있게도 어린이 만화 영화 캐릭터 '푸(pooh)'의 대사다. '뉴욕 패션 위크에 진출한 최연소 국내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따낸 장형철 디자이너. 그가 걸어온 패션의 길과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지난 7월, 뉴욕 컬렉션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남성복을 따로 분리한 '2016 S/S 남성복 컬렉션'이 열렸다. 뉴욕 컬렉션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 콘텐츠진흥원의 글로벌 프로젝트인 '컨셉코리아'를 통해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젊은 남자 디자이너가 대선배들도 하기 어렵다는 뉴욕에 진출했다. 학력도 좋고 내로라 하는 집안의 소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귀한 집 아들일 거라 생각했다. 오히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고 열악한 환경이었다.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달고 싶어 할 수식어를 장 디자이너는 그 어떠한 어드밴티지 없이 오직 패션에 대한 '열정'과 '노력'만으로 얻어냈다. 지금의 성공이 더욱 값지게 여겨지는 이유다.
"해외 컬렉션은 10년차 정도에 지원하려고 했었어요. (이번 컨셉코리아에) 지원한 분들도 전부 10년차 이상 선배들이었고 저만 4년차였습니다."
장형철 디자이너/사진=김창현 기자 |
하지만 해외 평가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뉴욕에 가려면 블랙을 써라'는 암묵적인 공식을 깨고 역발상을 적용한 것이 제대로 먹혔다. 블랙 컬러 대신 '오디너리 피플'만의 개성이 담긴 다양한 컬러를 자유자재로 활용했다. 소재도 동양적 느낌이 묻어나는 실크와 같은 소재를 사용했다. 틀을 깨는 청개구리 면모가 해외 평가자들의 마음을 흔든 것이다.
해외 평가에서 전체 1등을 하며 국내 평가 결과를 뒤집으며 컨셉코리아 4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됐다. 예상치 않은 합격 소식에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잠도 제대로 못자고 200개에 달하는 아이템을 준비했다.
"뉴욕 컬렉션에 점수를 준다면 70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는데 한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죠. 피날레복도 따로 만들려고 계획했는데 못했어요. 모델 박성진이 스케줄 상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된 것도 아쉬웠죠. 쇼 시작 20분 전에 갑자기 착장을 바꿔야 했으니까요."
본인은 아쉬운 게 많다지만 '오디너리 피플'의 첫번째 뉴욕 컬렉션은 합격점이다. 현장에 모인 세계 유수의 패션 관계자들로부터 '스포티즘 속에서 클래식 하이엔드 패션을 제대로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4년차 디자이너에게 더할 나위 없는 극찬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입는 특별한 옷을 만들겠다는 브랜드 철학이 글로벌 시장에서 환영받은 셈이다.
장형철 디자이너/사진=김창현 기자 |
'오디너리 피플'의 옷에는 장 디자이너의 스토리가 담겨 있다. 일상 생활에서 얻은 팁들을 기억했다가 디자인에 반영한다. 여행에서 벨트를 잃어버렸던 경험이 벨트 장식이 달린 바지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도 그 중 하나. 두터운 친분을 자랑하는 손흥민, 이용 등 축구 선수들의 대표팀 유니폼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며 컬렉션 테마를 '스포티즘'으로 잡기도 했다.
하루종일 옷만 생각하는 그는 본래 요리사 지망생이었다. 고등학교 때 요리사를 꿈꿨고 대학도 관련학과로 진학해 한식·양식·제과제빵까지 배웠다. 하지만 입대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군대 간 남자들이라면 다들 한다는 '잡지 보기'와 '축구'가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매달 패션지가 나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고참들에게 스타일링 조언을 해주면서 '나만의 옷'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키웠다. 전역 후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패션전문학교에 들어가 1년 동안 옷 만드는 법을 처음 배웠다.
장형철 디자이너/사진=김창현 기자 |
학교에서 옷 만드는 법을 배웠다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였다. 원단 시장, 샘플 공장 등을 쫓아 다니며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창피함도 잊은 채 물어보며 그렇게 하나씩 배워갔다. 아무것도 몰랐던 그때 쉴 새 없이 질문하고 고민했던 게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오디너리 피플'은 비욘드 클로젯에서 진행했던 컬렉션 테마였어요. 가장 힘들었고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컬렉션이죠. 브랜드 이름을 지을 때 망설임 없이 선택했습니다."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단돈 3000만원을 가지고 무작정 홀로서기를 했다. 작업실로 사용할 보증금 1000만원짜리 집을 구하고 나머지 2000만원으로 옷을 만들었다. 4개월 동안 직원 없이 혼자 일했다. 그렇게 처음 세상에 내놓은 옷이 입소문을 타고 불티나게 팔렸다. 첫 매출은 1300만원. 듣도 보도 못한 브랜드의 첫 성과로는 놀라운 액수다. 될성부른 잎은 떡잎부터 달랐다.
브랜드 론칭 1년반 만에 서울 컬렉션 무대에 올랐다. 세번째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SBS '패션왕 코리아 시즌1'에도 출연했다. 처음 해외 여행을 떠났던 이탈리아에서 '피티 워모(피렌체에서 1년에 두 번 열리는 세계 쵀대 규모 남성복 박람회)'를 참관하며 '언젠가는 입성해야지'했던 것이 이듬해 현실이 됐다.
"언제나 기회가 찾아왔던 것 같아요. 그것이 작든 크든 놓치지 않으려고 했고 고맙게도 운이 잘 따라줬죠. 늘 고생스러웠고 힘들었지만 그 시간 자체를 즐기려고 했기에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장형철 디자이너/사진=김창현 기자 |
"제 스스로 노력파라고 자부합니다. 남들보다 가진 게 없었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노력 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할 일을 다 못하면 끝마칠 때까지 집에 가지 않아요. 아직까지 하고 싶은 걸 다 하지 못하고 삽니다. 컬렉션 기간에는 잠을 줄여야 해서 먹는 것도 조절하고 사람도 잘 만나지 않을 정도예요. 그렇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 왔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사람들이 입었을 때 행복해지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옷, 또 자신이 입었을 때 부끄럽지 않을 옷을 만들고 싶다는 장 디자이너. "해외 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하면 '장형철'이 떠오를 수 있도록 앞으로 더 노력할 겁니다"라는 포부도 잊지 않았다.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기회는 성공으로 가는 열쇠다. 단순히 운이 좋아서라기에 장형철 디자이너는 모든 기회에 최적화된 디자이너였고 앞으로도 다가오는 기회를 온몸으로 받아낼 준비된 디자이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