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말이 돼?" 관중 1500명 야구장 난입…각목 휘두르고 방화[뉴스속오늘]

폭행으로 번진 빗나간 팬심, 관중 19명 구속

머니투데이 마아라 기자  |  2024.08.26 05:30  |  조회 185995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사진=오센
/사진=오센
1990년 8월26일. 서울종합운동장에서 관중 1500여명이 야구 경기장에 난입해 집단 패싸움을 벌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날 경기는 해태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대결이었다. 원정 온 해태의 패색이 짙어지자 흥분한 해태 팬들이 그라운드로 난입했고 이에 맞서 LG 팬들까지 달려들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 사건으로 19명의 관중이 구속됐다.



◇흥분한 해태 팬들, 무슨 일?



/사진=오센
/사진=오센
당시 해태는 47승 3무 41패로 4강권에 들어 있었다. 특히 해태는 1989년 한국시리즈 4연패를 일궈낸바, 팬들의 기대가 컸다.

이날 경기는 해태와 LG가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이 걸린 정규리그 2위 확보를 위해 경쟁하는 날이었다. 경기장에는 3만100명의 관중이 운집했다.

53승 42패로 당시 선두였던 LG 측은 해태 마운드의 소모를 노리며 단타 위주로 진행, 3-0으로 경기를 이끌었다. 해태 측은 5회와 6회 연속 3루타를 때렸으나 7회에서 도루 저지를 실패하면서 무너졌다. 한 회에서만 무려 7점을 실점했다.

10-0이라는 큰 점수 차에 해태 팬들은 흥분했고 결국 경기장에 뛰어들었다.



◇최악의 야구장 패싸움…관중들 난동에 경찰 투입



/사진=KBS1 중계 화면
/사진=KBS1 중계 화면
경기장에 난입한 원정 팬들의 수는 대략 500여명. 이들은 LG 응원석에 불을 지르고 쓰레기통을 마운드로 던지는 등 난동을 부렸다. 기물 파손도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에 LG 팬들은 응원석 의자를 뽑아 들었다. 한 LG 팬이 해태 팬의 머리를 가격했고, 이는 결국 패싸움으로 번졌다.

이들은 각목과 철제의자를 휘두르며 선수와 심판을 내쫓고 경기장을 점거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외야 펜스의 광고 부착물에 불을 질러 떼고 각 루의 베이스를 뽑아 버리는 일도 벌어졌다.

/사진=KBS 스포츠 유튜브 영상 갈무리
/사진=KBS 스포츠 유튜브 영상 갈무리
일부 관객들은 혼란을 틈타 술판을 벌이는가 하면, 마운드로 뛰쳐나가서 타자를 경험해 보는 등 경기를 흉내 내기도 했다.

한 시간 넘게 벌어진 난동에 경찰까지 투입됐다. 그러던 중 20명가량의 경찰이 술에 취한 해태 관중을 곤봉으로 구타하는 과잉 진압이 벌어지기도 했다.

재개된 경기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LG의 13-1 대승으로 끝났다.



◇선수·감독도 충격…대통령까지 나설 정도로 파장



/사진=KBS 스포츠 유튜브 영상 갈무리
/사진=KBS 스포츠 유튜브 영상 갈무리
당시 선수들과 감독들도 관중들의 이러한 모습에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 사건은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이 같은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며 엄정한 법 집행을 지시할 정도로 사회적 파장이 컸다.

경기가 끝난 뒤 백인천 감독은 "할 말이 없다. 프로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애정을 아름답게 쏟아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응룡(김응용) 감독은 큰 충격을 받은 탓인지 "해태 감독을 그만둬야 할까 보다"면서 "내 책임이 크다. 해태를 사랑하는 팬들을 위해 이겨줘야 하는데. 해태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다니 부끄럽다"고 이례적으로 길게 말하기도 했다.

경찰은 현장이 아닌 TV 방송 자료를 분석해 싸움을 주도한 19명을 폭력혐의로 구속 및 기소했다. 이중 구장에 불을 지르거나 의자를 휘둘러 폭력을 가한 11명에게 집행유예 선고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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