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했던 현미, 사망 왜?" 5분 사이에 무슨 일…타계 2주기[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이은 기자  |  2025.04.04 06:00  |  조회 27688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가수 고(故) 현미(본명 김명선)의 빈소.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가수 고(故) 현미(본명 김명선)의 빈소. /사진=사진공동취재단
2023년 4월 4일. 원로 가수 현미(본명 김명선)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85세.

이날 오전 9시37분쯤. 현미는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쓰러져 있는 현미를 발견한 팬클럽 회장 김모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이후 현미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건강했던 현미는 김씨가 잠깐 세탁소 심부름을 다녀오는 5분여 사이 부엌에서 쓰러진 후 세상을 떠났다.



북에 남겨둔 두 여동생 향한 그리움… '이산가족' 아픔 절절


현미는 헤어진지 47년 만인 1998년 민간단체의 주선으로 중국 장춘에서 헤어진 여동생 중 한 명인 길자 씨를 만나기도 했다. /사진=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 방송 화면
현미는 헤어진지 47년 만인 1998년 민간단체의 주선으로 중국 장춘에서 헤어진 여동생 중 한 명인 길자 씨를 만나기도 했다. /사진=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 방송 화면
1938년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태어난 현미는 유년 시절을 평양에서 보냈다. 일찍이 노래와 춤에 재능을 보인 현미는 평양보통학교 재학시절 학생 대표로 김일성에게 헌화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8남매 중 셋째였던 현미는 6.25 전쟁 발발 이후 1951년 1·4 후퇴 당시 부모님, 다섯 남매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 바람에 피난 직전 할머니 집에 맡겨졌던 두 여동생과는 헤어지게 됐다.

현미는 헤어진 지 47년 만인 1998년 민간단체의 주선으로 중국 장춘에서 헤어진 여동생 중 한 명인 길자 씨를 만나기도 했다. 동생과의 만남 이후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고.

현미는 2018년 KBS1 '아침마당'에 출연해 동생 길자 씨를 만났던 당시를 떠올리며 "동생이 자기를 버리고 갔다고 울더라. 사실은 버리고 간 것이 아니다. 동생이 북한이 추워서 손톱, 이빨이 다 빠졌더라"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그래도 살아서 만날 수 있는 게 어디냐"라며 위안으로 삼으면서도 "이후 동생들이 살아있는지 모르겠다. 통일은 고사하고 왕래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고 이산가족 상봉을 기원했다.

현미는 2000년 이산가족 특집 방송 촬영차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으나 또 다른 여동생 명자 씨는 끝내 만나지 못했다.



미8군 '칼춤 무용수' 출신…대신 무대 올랐다가 가수 데뷔


2017년 가수 현미가 경북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웅부홀에서 열린 '청춘음악극 그 시절 그 노래' 무대에 올라 자신의 대표곡 '밤안개'를 열창하고 있다. /사진=뉴스1
2017년 가수 현미가 경북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웅부홀에서 열린 '청춘음악극 그 시절 그 노래' 무대에 올라 자신의 대표곡 '밤안개'를 열창하고 있다. /사진=뉴스1
미8군 위문 공연 무대 칼춤 무용수로 활동했던 현미는 우연히 일정에 불참한 가수 대신 무대에 오르며 가수의 길을 걷게 됐다. 당시 현미가 부른 '아 목동아!', '베사메 무초'에 미군이 열광하자 월급을 3배로 받는 조건으로 '현시스터즈'를 결성하게 됐다.

'현미'라는 이름은 예명으로, 솔로 가수로 활동할 당시엔 '벨라'라는 이름을 썼으나 현시스터즈 결성 후 당대 최고 가수였던 '현인'의 '현'을 따 예명을 현미로 바꿨다.

1962년 미국 재즈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와 냇 킹 콜이 부른 '잇츠 어 론섬 올드 타운'(It's A Lonesome Old Town)에 자신이 작사한 가사를 입힌 '밤안개'를 발표하면서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다. 한국 가요계 사상 최초로 앨범 8만 장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톱스타 반열에 오른 현미는 작곡가 이봉조가 쓴 김기덕 감독, 엄앵란·신성일 주연의 영화 '떠날 때는 말 없이'의 주제곡과 이산가족과 실향민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곡으로 알려진 '보고 싶은 얼굴' 등을 연이어 성공시켰고, 재즈풍 보컬로 60년대를 풍미한 디바이자 '국민 가수'로 우뚝 섰다.



노사연·한상진과 가족…작곡가 이봉조와 결혼


가수 고(故) 현미(본명 김명선)의 조카인 배우 한상진이 2023년 4월 11일 오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영결식에서 고인의 영정 사진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가수 고(故) 현미(본명 김명선)의 조카인 배우 한상진이 2023년 4월 11일 오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영결식에서 고인의 영정 사진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현미는 '연예계 로열패밀리'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가수 노사연, 노사봉 자매와 배우 한상진의 이모이자 '사랑은 유리 같은 것'으로 인기를 끈 가수 원준희의 시어머니이기도 하다.

노사연, 노사봉의 어머니는 현미의 언니 김화선 씨로, 한 무용가 최승희의 1기 문하생 출신으로 알려졌다. 현미는 그런 언니 김화선 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가수 고(故) 현미는 작곡가 고(故) 이봉조와 열애 끝에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뒀으나, 이봉조는 이미 결혼해 자녀까지 둔 상태였다. 결국 두 사람은 끝내 결별했다. /사진=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 방송 화면
가수 고(故) 현미는 작곡가 고(故) 이봉조와 열애 끝에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뒀으나, 이봉조는 이미 결혼해 자녀까지 둔 상태였다. 결국 두 사람은 끝내 결별했다. /사진=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 방송 화면
현미를 톱스타 반열에 올려준 작곡가 이봉조는 가수 현미뿐만 아니라 인간 현미의 인생에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두 사람은 1957년 처음 만나 열애를 이어온 끝 대중의 축하 속에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고, 슬하에 두 아들을 뒀으나 이봉조는 이미 결혼해 자녀까지 둔 상태였다.

현미는 2022년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해 이봉조와의 관계에 대해 "내가 처음 몸을 바친 사람이 이봉조"라며 "난 유부남인 줄 모르고 만났다. 알고 보니 딸 둘 있는 유부남이었고, 이미 내 배 속에도 아이가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본처에게 돌려보내는 게 맞다 생각했는데 술을 많이 마시고 야구방망이로 살림을 부쉈다. 추운 겨울날 잠옷에 밍크코트만 입고 나와 헤어졌다"고 털어놨다.

결국 두 사람은 결별했고, 이들 사이에 태어난 두 아들은 현미가 도맡아 키웠다. 이들 사이에 태어난 첫째 아들 이영곤은 '고니'라는 예명으로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가수 노사연이 2023년 4월 11일 오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가수 고(故) 현미(본명 김명선) 영결식에서 슬픔에 잠겨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가수 노사연이 2023년 4월 11일 오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가수 고(故) 현미(본명 김명선) 영결식에서 슬픔에 잠겨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장례는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졌다. 미국에서 귀국한 두 아들과 조카인 배우 한상진, 가수 노사연이 상주를 맡았으며, 대한가수협회장인 가수 이자연이 조사를 맡았다. 조가는 1964년 발매된 현미의 대표곡 '떠날 때는 말없이'로 준비됐다.

현미의 유해는 두 아들이 거주하고 있는 미국에 안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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