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명품 세대교체…"디자이너는 가도, 브랜드는 남는다"

[창간기획-'K메이드'를 키우자]<3회 ②>세대 초월한 브랜드의 탄생, 100년 역사는 시간문제

도쿄(일본)=송지유 기자  |  2014.06.25 06:00  |  조회 18903
명품에 열광하는 대한민국. 하지만 연간 300조원에 달하는 세계 명품시장에서 한국은 전혀 매출이 없고, 철저히 소비만 하는 국가다. 명품의 본고장인 유럽은 물론 미국과 일본 등이 세계 명품 시장을 놓고 자국 브랜드로 맹활약하고 있지만 한국은 유독 명품 분야만큼은 힘을 쓰지 못한다. 한류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이제 한국형 명품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다. 이에 세계 명품 산업을 주도하는 기업들을 찾아 그들이 명품이 된 노하우와 역사를 분석하고, 한국 패션기업들의 명품을 향한 고민들을 들어본다. 세계 명품시장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는 한국형 명품의 탄생을 위한 필요충분 조건들도 진단해본다.
일본 도쿄 긴자 이세이미야케 엘토브탭 매장 전경//사진=도쿄(일본) 송지유 기자
일본 도쿄 긴자 이세이미야케 엘토브탭 매장 전경//사진=도쿄(일본) 송지유 기자

지난 18일 일본 도쿄 신주쿠 이세탄백화점 '이세이미야케' 매장. 평일 낮인데도 매장안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이세이미야케를 상징하는 대표 제품인 '바오바오백'을 어깨에 걸쳐보는가하면 원피스와 레깅스를 입어보는 여성들이 많았다. 일본어는 물론 한국어와 중국어, 영어까지 섞여 한마디로 매장은 왁자지껄했다. 한 켠에서는 직원이 가방 구매를 예약한 손님을 응대하고 있었다. 이 직원은 "인기 제품은 예약한 뒤 1개월 이상 기다려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는 1980년부터 해외시장에 이름을 알린 뒤 세대를 뛰어넘어 명성을 쌓고 있는 명품들이 즐비하다. 1세대 디자이너인 이세이 미야케의 '이세이미야케'와 레이 가와쿠보의 '꼼데가르송'가 대표적인 브랜드다. 이들 브랜드가 30년 넘는 오랜 기간 사랑받는 이유는 디자이너는 나이를 먹어도 디자인은 늙지 않아서다.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 브랜드를 함께 키울 후배 디자이너 양성. 이는 매 시즌 글로벌 시장을 리드하는 일본 명품이 참신한 디자인을 내놓는 배경이다. 브랜드 출시 직후 인기를 끌다가 10년만 지나도 젊은 고객들에게 외면 받은 한국 패션업계와는 정반대 구조다. 현재 꼼데가르송은 세계 60개국에서 600여개 매장을, 이세이미야케는 8개국에서 124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14 S/S 이세이미야케 여성복 컬렉션(왼쪽), 꼼데가르송 여성복 컬렉션(오른쪽)/사진제공=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2014 S/S 이세이미야케 여성복 컬렉션(왼쪽), 꼼데가르송 여성복 컬렉션(오른쪽)/사진제공=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세대 초월한 브랜드의 탄생, 100년 역사는 시간 문제다=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는 1999년 패션계에서 은퇴했다. 하지만 그의 브랜드 '이세이미야케'는 지금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가 물러난 직후 나오키 타키자와가, 최근에는 다이 후지와라가 수석 디자이너가 브랜드를 이끌고 있다. 최근 이세이미야케의 디자이너 라인업은 더욱 세분화되고 있다. 숙녀복 라인은 2세대 신진 디자이너인 미야마에 요시유키, 신사복 라인은 다카하시 유스케가 맡아서 파리컬렉션 등 해외 무대에 활발히 제품을 내놓고 있다.

꼼데가르송의 수장 레이 가와쿠보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꼼데가르송을 대표하는 후배 디자이너를 키우고 알리는 작업은 이세이 미야케 못지 않다. 준야 와타나베와 타오 구리하라, 후미토 간류 등이 꼼데가르송이 배출한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다. 준야 와타나베의 경우 레이 가와쿠보의 재정 지원을 받아 '준야 와타나베 꼼데가르송'을 론칭, 일본은 물론 해외에서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사랑받고 있다.

1923년 일본 최초 패션전문학교로 설립된 일본문화복장학원의 코수기 사나에 원장은 "이세이 미야케는 은퇴했지만 그의 밑에서 실력을 닦은 디자이너들이 브랜드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며 "유럽 명품들이 가족 경영으로 브랜드를 이어왔다면 일본은 전문교육을 통한 인재육성, 실력 있는 신인디자이너 발굴, 체계적인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나에 원장은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가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 그룹에 회사를 매각하고 은퇴했지만 겐조 브랜드는 여전히 건재하지 않느냐"며 "세대는 물론 국경도 초월할 수 있는 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함께하는 디자인, 브랜드 확장전략 발판됐다=일본이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명품시장에 깃발을 꽂을 수 있었던 것은 독창적인 소재와 디자인으로 해외무대에 꾸준히 도전했기 때문이다. 한국이 해외 브랜드 수입을 제한하던 1970년대말∼1980년대초부터 일본의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은 파리컬렉션에 진출해 인지도를 쌓았다. 스타 디자이너나 가족 경영 등에 연연하지 않고 실력이 검증된 디자이너 군단을 꾸려 세대를 잇는 브랜드 전략을 고민한 것이다.

"디자인은 스타 디자이너 한 사람이 아니라 팀워크에 기반한 작업인 만큼 보다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해 온 이세이 미야케의 철학은 상당수 일본 명품 브랜드 전략에 그대로 녹아 있다. 스타 디자이너 독주 체제가 아니라 협업을 통해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브랜드 확장으로 이어졌다. 다양한 콘셉트의 디자인이 가능해지며 처음 명품 구입에 나서는 사회 초년생부터 중장년층까지 흡수하고 있다.

이세이미야케는 컬렉션 라인 '이세이미야케'와 '이세이미야케 맨', '하트'를 비롯해 , 대중적인 라인 '플리츠 플리즈'와 '미', 핸드백 브랜드 '바오바오' 등을 운영하고 있다. 꼼데가르송의 경우 '옴므 플러스', '옴므 듀', '플레이', '블랙', '준야 와타나베', '타오', '간류' 등 14개 브랜드를 선보인다.

이들 브랜드의 관리를 받다가 개별 브랜드로 독립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츠모리 치사토', 유럽과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카반 드 주카', '스나오 쿠와하라', '파이널 홈' 등은 이세이미야키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별도 브랜드로 독립했다. 최근 한국 디자이너들이 파리나 밀라노 등 세계 무대에 노크를 시작했다면 30년 먼저 출발한 일본은 이미 디자이너 세대교체가 한창인 셈이다.

쯔토무 하기히라 패션산업인재교육기관(IFI) 전무는 "글로벌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일수록 세컨 브랜드 전략이 잘 통한다"며 "이세이 미야케나 레이 가와쿠보 사단이라는 말만 믿고 구매하는 고정 팬들이 워낙 많아 유통망 확보에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왼쪽)일본 도쿄 긴자 꼼데가르송 편집숍인 '도버 스트리트 마켓 긴자' 전경/사진=도쿄(일본) 송지유 기자, (오른쪽 상단)이세이미야케 바오바오백, (하단)꼼데가르송 플레이 티셔츠/사진제공=이세이미야케 홈페이지,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왼쪽)일본 도쿄 긴자 꼼데가르송 편집숍인 '도버 스트리트 마켓 긴자' 전경/사진=도쿄(일본) 송지유 기자, (오른쪽 상단)이세이미야케 바오바오백, (하단)꼼데가르송 플레이 티셔츠/사진제공=이세이미야케 홈페이지,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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