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첫 만남…사귀기 전에 섹스한 남자와 이별한 이유
[김정훈의 별의별 야식<5>] 맛있는 연애를 위한 타이밍-바삭바삭 촉촉한 멘보샤
머니투데이 스타일M 김정훈 칼럼니스트 | 2015.05.01 11:14 |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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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을 것 같은 날, 마음껏 연애상담을 할 수 있는 편안한 술집이 있다면 어떨까? 공허한 마음과 몸을 채워 줄 요리, 만족스런 연애와 사랑을 위해 먹으면 좋은 음식은 뭐지? 남녀가 섹스 전과 후에 먹는 음식은? 이 모든 궁금증이 해결 되는 곳이 있다. 아무에게도 털어 놓지 못했던 은밀한 연애 이야기로 만들어진 맛있는 메뉴가 매주 채워지는 곳. 김정훈 연애칼럼니스트가 이 시대의 편식남·편식녀들에게 추천하는 힐링푸드, 별의별 야(한)식(탁)!
/사진=진진 |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뉴에 올려놓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튀김은 제대로 만들기 어려운 음식이기 때문이다. 바삭한 튀김옷의 식감을 잘 살리면서도 주재료의 맛을 잃지 않고 적당히 익혀내는 건 제대로 된 연애를 하는 것만큼이나 난해하다고나 할까. 전문가들은 맛있는 튀김을 만들어 내기 위한 방법으로 깨끗한 기름과 기름의 정확한 온도를 강조한다.
조금 전 가게로 들어온 여자, 문을 열자마자 식식거리며 자리에 앉더니 맞은 편 단발머리 여자에게 폭풍우처럼 연애조언을 쏟아내기 시작한 긴 웨이브 머리의 여자는 연애 뿐 아니라 튀김요리의 정수에도 한 발짝 다가간 전문가 같았다.
"너 진짜로 그러면 큰일나. 다 타이밍이 있거든. 고백도 마찬가지지만 스킨십은 더더욱!"
"그런 걸 사람에 따라 달리 해야지 절대적인 기준을 정해 놓으면 오히려 실패하지 않을까?"
"얘가 뭘 몰라요. 너 튀김 좋아하지. 그거 만들 때 뭐가 제일 중요한 지 알아? 정확히 160도에서 180도 사이의 기름에 재료를 넣어야 한다는 거야. 온도가 낮을 때 넣으면 수분이 빠져나오기도 전에 기름이 흡수돼서 눅눅하고 느끼해지거든. 지나치게 뜨거워졌을 때 넣으면 속이 익기도 전에 겉만 다 타버려서 못 먹고. 스킨십도 마찬가지야. 해야 하는 적절한 온도가 있는 거지. 그걸 제대로 정해놓지 않으면 남자한테 휘둘린다니까. 여기 시원한 맥주 좀 줘요 빨리!"
/사진=김정훈 |
튀김은 불가능하다고 얘길 하면 그녀들이 남자들을 향해 뿜어내던 분노의 화살들이 모조리 우리 가게를 향해 포격해 올 것 같았다. 주방으로 돌아와 재료를 찾아봤다. 튀길 재료로는 해산물이 조금 있었다. 튀김용 기름과 팬도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튀김가루와 밀가루가 애매한 양 밖에 남아 있질 않았다. 슈퍼에 사러 나가려는데 샌드위치용 식빵이 보였다. 아! 튀김옷을 만들지 않아도 만들 수 있는 요리가 생각났다. '멘보샤'다.
멘보샤는 꽤 고급음식에 속하는 중국요리다. 곱게 다진 새우에 소금과 후추, 생강과 미림을 넣어 잘 버무린다. 그리고는 가장자리를 잘라내 4등분을 한 식빵에 버무린 새우살을 넣어 샌드위치처럼 만들어 튀겨내야 한다. 새우 다지는 소리를 헤집고 간간히 들려오는 그녀들의 대화를 요약해 보면 대충 이랬다.
단발녀는 최근에 두 사람과 만남을 했는데 모두 씁쓸하게 끝이 났단다. 첫 번째 남자와는 사귀기도 전에 첫 만남에서 섹스를 해 버렸고 그녀는 그와의 이별원인이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 번째 남자와는 연애를 시작한 후에도 일부러 더 철저하게 스킨십 시도를 거부했단다. 웨이브녀는 그런 어중간한 자세가 단발녀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3번 정도 만나면 손을 잡고 한 달 후에 키스를 하고 그로부터 다시 한 달 후에 섹스를 하는 등 철저하게 자신만의 타이밍을 정해 놓는 것 이야말로 연애를 잘 하는 비법이라는 게 웨이브녀의 조언이었다.
/사진=영화 '비포선셋' 스틸컷 |
"저것 봐. 남자들의 요구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네가 정한 타이밍이 제일 중요하다고."
"그래도 그게 모든 사람에게 매번 똑같이 적용될까? 아...난 모르겠어."
안주 없이 맥주 2잔씩을 다 비워낸 그녀들에게 완성된 멘보샤를 가져다 줬다. 잘 튀겨져서 다행이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제대로 성공한 건 거의 처음이었다.
"여자친구가 중국음식점에서 이걸 되게 맛있게 먹더라구요. 그래서 한 번 만들어봤죠. 말씀하신 것처럼 튀길 땐 기름의 온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해서 온도계까지 샀었구요. 근데 결과가 어땠는 줄 알아요? 대실패. 그렇게나 철저하게 타이밍을 정해놓고 확인했었는데 말이죠"
"이유가 뭐였는데요?" 웨이브녀가 물었다. "여러 가지가 있었어요. 기름의 온도만 해도 그랬죠. 절대적인 온도도 인지하고 있어야 하지만 상대적인 변수를 생각하지 못했던 거죠. 기름의 양이라던가 한 번에 떨어뜨리는 튀김의 개수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죠. 온도만 확인하고선 안심하고 있었으니 실패는 당연했어요. 예를 들어 기름 1리터의 적정온도에 닭다리를 튀긴다면 한 번에 닭다리 3개 정도가 알맞아요. 근데 5개를 넣게 되면 불의 세기를 더 올려서 온도가 안 떨어지게 해야 하거든요"
/사진=영화 '비포선셋' 스틸컷 |
맥주를 마시는 그녀들을 보며 이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웨이브녀가 나를 홱 하고 돌아봤다. 그리고는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근원지는 기름을 부어놓은 팬 이었다. 미처 꺼내지 못한 멘보샤 한 조각이 새까맣게 타버린 것이었다. 역시 요리든 연애든 그 맛을 위해선 제대로 된 관심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는 단발녀의 말에 뜨끔했다. 웨이브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단발녀를 보더니 연애에선 관심보다 밀당이 더 중요하다는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시원한 맥주를 들이킨 뒤 차가움이 남아 있는 입으로 따뜻한 튀김을 베어 물어야 바삭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거든. 튀김반죽을 할 때도 얼음을 넣어야 더 바삭해지고" 역시 웨이브녀는 전문가였다.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이 곳에서 알바 할 생각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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