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말하는 '개념女'와 '김치女'는?

Style M  |  2014.12.18 02:12  |  조회 1406

[김정훈의 썸㉘]진심을 안 주는 남자 여자들의 '남성 의존적 성향'과 '만나고 싶은 남자'


썸. 묘한 단어가 등장했다. 짜릿한 흥분과 극도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롤러코스터 마냥, 탈까 말까 망설여지기도 하고. 간질 간질. 정체를 알 수 없는 간지러움에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랑만큼 떨리지만 이별보다 허무한 '썸'. 그리고 편식남 편식녀를 비롯한 그 밖의 다양한 '썸'에 대한 연애칼럼니스트 김정훈의 토킹 릴레이.


드라마 '썸남썸녀' 스틸컷/사진=도레미엔터테인먼트


언젠가의 술자리에서 '방송인 사유리의 명언들'을 정리해 놓은 포스팅을 본 적이 있다. 공감 가는 멋진 글귀들을 보며 감탄하고 있는데, 그 포스팅을 보고 있던 남자후배와 여자후배가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논쟁의 발단은 '밥을 사주는 것이 싫은 게 아니라 당연히 내가 사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싫다'라는 문장이었다.

남자후배가 "사유리는 정말 개념 있다니까. 요즘 여자들이랑 다르게"라고 말하자 여자후배는 "요즘 여자들이 왜? 오히려 내 주위엔 여자들이 더 내는데?"라고 반문했다. 남자후배는 "소개팅의 경우 남자가 별로일 땐 여자들이 먼저 돈을 내려 하기도 하지만, 맘에 들 경우엔 남자가 내길 바라는 게 대부분 여자들"임을 재차 강조했다. 여자 후배는 "네가 그런 여자들만 만나니까 그렇지"라며 조소를 보냈다. 남자후배는 말을 말자며 내게 속삭였다. "쟤는 자기도 남자한테 그러면서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죠?"

여기서 중요한 건 당신과 당신 주변의 여자들이 실제로 남자에게 의존적이냐 아니냐의 진위여부가 아니다. '김치녀'를 운운하는 공격성 글을 웹상에 게시 하진 않더라도 상당히 많은 남성들이 여성들의 남성 의존적 성향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단 사실은 분명하다.

물론 굳이 문제 삼지 않는 남성들도 많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그런 이슈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굳이 문제를 제기해 스스로의 체면을 깎아내리기 보다는 당연하고 해결하기 힘든 문제이기 때문에 되려 잘 활용하는 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이런 종류의 남자는 당신에게 상처를 줄 확률이 훨씬 높다.


문제를 제기하는 남자와 그렇지 않는 남자. 당신은 어떤 남자를 선택하고 싶은가? 전자를 택했다면 당신이 조금 피곤할 뿐 상처받을 일은 없을 거다. 이들은 요령이 부족할 뿐 사랑에 대한 의욕은 충만할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여성이라는 집단을 비판 하려던 게 아니라 사랑을 받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게 속상해서 불만을 토로하려던 게 원인일 수 있다.

후자는 조금 다르다. 이러한 남성은 여성에게 뭘 받는 것에 굳이 의미를 두지 않고 자신이 주는 것에도 진심을 담지 않는다. 여유로운 행동으로 여자를 즐겁게 하는 요령은 갖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허무하다. 남성의존적인 여성을 만난다고 해도 그걸 고쳐서 괜찮은 관계로 나아가야겠단 의욕이 없다. 보기 싫을 정도가 되면 헤어지면 그만이니까. 당신은 그가 아는 수많은 여자들 중 한 사람으로 단정지어질 뿐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없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대체 왜 그는 나를 그렇게도 남성의존적인 여자로 생각해 버리는 걸까? 나도 아니고 내 친구들도 전혀 아닌데, 왜 남자들은 요즘 여자들이 다 그런줄 아는걸까.

드라마 '썸남썸녀' 스틸컷/사진=도레미엔터테인먼트

다음의 여자들을 살펴보자.
A. "아빠가 벤츠를 타지 못 하는데 내가 어떻게 타? 그럼 벤츠타는 오빠라도 만나야지"
B. "결혼 할 때 집은 남자가 해야지. 나도 뭐 대단한 집을 꼭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그런 개념 없는 여자는 아냐. 그냥 변두리 아닌 도심에 24평정도 전세 정도만 구하면 되잖아?"
C. "미팅할 때 남자가 돈 내는 거 당연하지 않아? 우리가 놀아 줬잖아. 근데 돈까지 내야해?"
D. "더치페이를 의식하면 머리 쓰는 거 같아서 싫어. 좋아하면 남자가 더 낼 수도 있잖아"

위 대화들은 허구가 아닌 실제다. 필자에게 고민을 토로한 여성들이 했던 말이다. A는 누가 봐도 과하게 남성의존적인, 다분히 비판받을 수 있는 말을 했다. B가 한 말은 A보다 덜하긴 하지만 요즘 특히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주제로, 여전히 남자의 경제적 능력을 과하게 요구하고 있긴 하다. C와 D 역시 여전히 남자의 희생을 요구하곤 있지만 A와 B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대다수의 남성들은 특별한 불만 없이, 혹은 불만이 있더라도 속내를 숨긴 채 C와 D정도의 행동은 무난히 받아들여주는 편이다. 특히 D까지 부정할 경우엔 찌질한 남자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니까.

A, B, C, D는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그것을 관통하는 줄기가 있단 건 남자든 여자든 동의를 할 거다. "요즘 여자들 다 그래"라는 남자들의 말에 여자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나친 부정을 하는 이유는, 마치 본인을 A, B와 같은 말을 하는 여자로 취급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빠서다. 남성들이라고 해서 D와 A의 차이를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성들이 특별히 희생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경우, 대다수의 남자들은 직·간접적 경험을 바탕으로 B~D를 함께 연계시켜 버린다. 이때 A와 B의 간극은 크지 않으므로 A까지 함께 떠올리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은 개인의 경험치가 영향을 미친다. "그런 여자들을 만났으니까 그러는 거지"라는 여성들의 말처럼, A와 B를 만나 본 적이 없는 남자는 C와 D의 언행을 확장시키지 않는다. "여자를 잘 아는 사람과 여자를 모르는 사람 중 누굴 소개받고 싶어?"라고 물었을 때 여자를 모르는 서툰 남자를 만나려는 여자는 드물다. 당신도 그렇다면, 지금 만나고 있거나 만나고 싶은 사람은 A부터 D까지의 여성들을 골고루 만난 남자일 확률이 높다.

여자를 많이 만나 여자를 잘 아는 남자일수록 당신의 매력이 특별하게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말도 A와 같은 여자와 비슷하게 보일 수 있는 위험까지 있다. 그런데도 여자를 잘 아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 조금 불편함을 감수해서라도 여자를 모르는 남자를 만나 당신이 여자에 대해 가르쳐 주는 편이 가장 안정적이고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지만.

그가 쉽게 하는 표현을 당신이 쉽게 받아 버리는 것도 문제다. 맛있는 밥을 사고 당신이 원하는 선물을 해주는 게 어렵지 않은 그 남자. 마음 열긴 어렵지만 지갑 열긴 쉬운 그의 호의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 주는 게 당신의 진심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다. 오히려 쉬운 여자로 보일 뿐이다. 그의 마음을 열고 싶다면 그의 지갑이 열리는 걸 쉽게 즐겨선 안 된다. 다음주에 이어진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