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女가 만남을 거절한 이유, 당신의 외모 때문?
[김정훈의 썸-34] 외모를 가꾸는 노력도 상대에 대한 배려이자 사랑이다
썸. 묘한 단어가 등장했다. 짜릿한 흥분과 극도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롤러코스터 마냥, 탈까 말까 망설여지기도 하고. 간질 간질. 정체를 알 수 없는 간지러움에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랑만큼 떨리지만 이별보다 허무한 '썸'. 그리고 편식남 편식녀를 비롯한 그 밖의 다양한 '썸'에 대한 연애칼럼니스트 김정훈의 토킹 릴레이.
영화 '남자사용설명서' 스틸컷/사진=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어떻게 하면 여자와 '썸'이라도 타 볼 수 있을까요?" 한 남자 후배가 묻는다. 올해 서른살이 된 그는 나쁘지 않은 직장에 따뜻한 가정환경, 그리고 성실함까지 갖췄지만 모태솔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지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없다면 외모라도 가꿔보라고. 버섯 모양의 헤어스타일, 넉넉한 통바지와 브랜드가 큼지막하게 프린트 된 티셔츠, 색상이 조잡하게 믹스된 구식 농구화와 늘어진 검정 백팩. 후배는 어느 자리에나 이같은 스타일을 고수했다. 클럽이나 나이트, 힘겹게 마련한 미팅과 소개팅까지도.
후배뿐만 아니다. 여자를 만나지 못해 슬퍼하는 30대 이상 노총각들의 공통적인 문제는 의외로 경제력이 아닌 외모인 경우가 많다. 키가 작고 외소해서, 탈모가 심하고 성인여드름이 많아서, 운동 부족으로 뚱뚱해 보여서 등 이유로 소개팅을 거절당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삼대는 넉넉히 먹고살 정도의 엄청난 재력을 가진 사람은 물론 예외겠지만.
아무리 값진 선물이라도 검정색 비닐봉지에 있으면 그 가치를 곧바로 알아보기 힘들 수밖에 없다. 먹으면 당장 배탈 날 것 같이 생긴 음식을 굳이 찍어 먹어봐야 겠는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면이 아무리 충실하다고 한 들, 일정수준 이상 외적 매력이 충족돼야 내면을 들여다 볼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여자라고 남자와 다르지 않다. 여자들이 남자 외모를 따지지 않는다는 말을 믿으면 안 된다. 외모가 뛰어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지 외적매력이 없어도 상관없다는 말이 아니다.
180cm 이상 키에 깔끔한 피부, 세련된 옷차림…. "첫인상 좋고 센스있는 남자면 된다"는 여성들의 기준에는 일정 수준 이상 외모가 반드시 포함돼 있다. 그 기준이 너무나 디테일해 개인별 편차가 큰 남자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는 이성을 만나는데 작용하는 본능의 차이가 크게 기인한다. 남자의 본능이 '경쟁과 유희'라면, 여자들은 '선택과 생존'이다. 남자들이 원하는 아름다움이란 본인이 가진 역치 이상의 자극을 유발하는데 필요한 것이다. 새로이 즐거운 게임을 발견하고 그 게임의 최종목표를 위해 어떤 고난과 경쟁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즐거움을 위해 미녀를 갈구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 '남자사용설명서' 스틸컷/사진=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여자들은 다르다. 큰 키와 넓은 어깨는 미적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강한 남자의 이미지와 연관 있다. 생존을 위해선 강한 남자가 필요하다. 결국 외모는 암컷의 생존을 책임지는 우수한 수컷을 골라내기 위한 하나의 기준이 된다. 그것은 개인의 유희를 위한 가치가 아니다.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요소일 뿐 이다. 그래서 속해 있는 집단이 변하면 남자의 외모는 전혀 쓸모없는 가치가 되기도 한다. 성인 사회가 그렇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외모보다 경제력이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다. 남성을 선택할 때 외적기준보다 경제적 능력을 더 눈여겨보는 여성들이 더 많아지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어릴 시절엔 달랐다. 이성의 외모에 열광했던 쪽은 오히려 여자들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엔 매달 햄버거와 선물세트를 돌리고 저축상을 받는 부잣집 도련님보다 달리기 경주에서 1등을 하고 싸움까지 잘하는 아이들이 더 인기가 많았다. 물론 그 친구들은 키가 크고 잘생겼었다. 여중고생들이 가슴 떨려 하는 대상 역시 그저 키 크고 잘생긴 남자아이들 이었다. 전통적으로 인기 있는 반장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3학년에 가까워질수록 공부를 잘하는 남자아이들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군계일학이 되려면 키가 크고 잘생겨야 했다.
성인이 되면서 어린시절과는 다른, 외모보다 경제적 조건을 갖춘 수컷이 당연히 우수하게 평가받는 사회에 속해 있다. 때문에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를 그 시절처럼 대단한 우상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쪽'팔리지(?) 않기 위한 외적기준을 여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성들이 많다. 체면이나 명예도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영화 '남자사용설명서' 스틸컷/사진=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은 그녀가 살아가는 사회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그래서 원하는 여성을 얻기 위해선 그 여성이 속해 있는 집단의 분위기와 성격에 신경을 써야 한다. 남성들이야 본인이 가진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자를 평가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성들 사이에선 상대적인 판단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녀 주위 사람들이 패션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인지, 상위 몇 %의 소비를 즐기는 사람들인지에 따라 당신이 가진 외모와 재력 등은 상대적으로 평가를 받는단 걸 알아야 한다.
본인이 그 사회의 최소 기준에 따라갈 수 없다면, '나는 이렇게 널 사랑하는데 왜 그걸 못 받아줘?'라는 낭만적 외침은 공허할 뿐이다. 그녀들과 썸을 타기도 어렵다. 대단한 부를 축적할 수 없는데 외적 매력을 가꾸는 소질까지 없는 남자라면, 마약 같은 화술이라도 익히길 바란다. 생존이라는 단어 자체를 잊을 정도의 환각상태에 빠지게 해줄 수 있는 화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치명적인 매력이니까.
"경제력이나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 내실이 알차면 됐지"라고 생각하는 여성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꼭 연락해 주시길. 필자는 앞서 말한 후배의 소개팅을 수십 번도 더 알아봤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의 사진을 보여주는 순간 '음…'이라는 낮은 탄성만 남긴채 은근슬쩍 회피했다. 남자 외모를 보지 않는 여자 지인이 한 명 있긴 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친구들의 격한 만류에 결국 그 후배와 소개팅을 하지 않았다.
사실 그 후배가 대단히 못 생긴 건 아니다. 다만 멋을 내는 것에 가치를 두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봐주는 여자를 찾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 녀석에게도 문제가 있다. 스스로의 변화를 꾀하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은 상대를 대할 때 꽤나 이기적인 성격이 드러날게 뻔하다. 사랑을 하려는 노력만큼이나 받으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외모를 가꾸는 노력은 상대에 대한 배려이자 사랑을 하고자 하는 또 다른 형태의 노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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