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 준 여친 "오빠, 나 핸드백 사줘"

Style M  |  2015.02.12 11:02  |  조회 1609

[김정훈의 썸-36] 상대가 갖고 싶은 선물을 준비할 때 더 특별해 진다


썸. 묘한 단어가 등장했다. 짜릿한 흥분과 극도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롤러코스터 마냥, 탈까 말까 망설여지기도 하고. 간질 간질. 정체를 알 수 없는 간지러움에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랑만큼 떨리지만 이별보다 허무한 '썸'. 그리고 편식남 편식녀를 비롯한 그 밖의 다양한 '썸'에 대한 연애칼럼니스트 김정훈의 토킹 릴레이.


영화 '발렌타인 데이' 스틸컷/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다룬 신문기사가 남자들의 카톡단체방을 또 한번 발칵 뒤집어놨다. 밸런타인데이 선물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동상이몽을 다룬 내용이었다. 백화점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는 20~40대 남녀 고객을 대상으로 밸런타인데이 선물에 대한 설문을 실시한 결과, 남성들이 가장 받고 싶어하는 선물은 '태블릿PC'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런데 여성들은 주고 싶은 선물로 '초콜릿'을 가장 많이 꼽았다. 또 화이트데이에 여자들이 받고 싶어 하는 선물 1위는 모두의 예상대로 '핸드백'이었다.


필자가 책 집필을 위해 찾았던 자료 역시 논란을 뜨겁게 달구기에 충분해 보인다. 서울 경기권 여성 2000명을 대상으로 한 빼빼로데이에 남자친구에게 받고 싶은 브랜드에 관한 설문조사였다. 1위 샤넬(17%), 2위 루이비통(8%), 3위 꼼데가르송(6%), 4위 마크제이콥스(5%), 5위 버버리(2%) 등 순이었다. 하지만 남자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 브랜드는 '1위 폴로 랄프로렌(24%), 2위 유니클로(22%), 3위 자라(9%), 4위 H&M(4%), 5위 아베크롬비(1%)란다. 브랜드 가치를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구매하는 제품군의 가격대 차이만 놓고 봤을 때 극명한 차이가 보이는 결과가 분명하다.


이상 설문조사 결과는 어디까지나 위시리스트일 뿐이다. 그러니 이를 통해 '다수의 여성들이 본인은 샤넬백을 받으면서 남자에겐 SPA브랜드의 옷을 사준다'고 결론을 내렸다간 큰 오류를 범한다. 그래서 남녀가 가진 욕망의 차이를 비꼬고 싶진 않다. 물론 정신적 사랑이 중요하다고 외치면서도 정성만 가득한 선물에 실망을 하는 게 여성들이라는 아이러니는 이미 많은 매체를 통해 풍자되고 있다. 정성도 좋지만 여자들이 모인 수다의 장에서 충분히 자랑할 만한 대외적 효용 가치를 가진 선물을 해야 센스 있는 남자친구로 인정받는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남자들이 실패로 얼룩진 경험을 통해 체득한 진리이기도 하고.


영화 '발렌타인 데이' 스틸컷/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돈다발 카네이션 꽃이 피고 5만원권 종이학이 날개를 활짝 피는 세상에서,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기 보단 지폐로 수를 놓는 쪽이 더 사랑받을 확률이 높다는 씁쓸한 우려는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뻔한 얘기를 굳이 더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오늘은 앞의 설문들에서 조금 다른 포인트를 짚어보고 싶다. 다수의 여성들이 '남자들은 늘 본인이 주고 싶은 선물을 주려하지 여자가 원하는 선물을 해줄 줄 모른다'고 말하곤 하는데, 정작 그녀들은 남자들이 받고 싶어 하는 선물을 하는 것에 서투르단 사실이다.


태블릿PC든 고가의 옷이든, 남자라고 실용적이고 비싼 선물을 마다할 리 없다. 물론 십자수 류의 선물을 통해 '얼마나 내 생각을 하며 만들었을까?' 라며 감동받는 낭만주의자들은 남자들에게서 더 보이긴 한다. 메인요리와 디저트를 먹는 배가 따로 있다는 여성들과 달리 그 선물만으로도 배가 부르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한 아쉬움이 약간 남아 있을 뿐. '이게 끝이야?'라는 배고픔이 크지는 않다.


원하는 선물을 받지 못했을 때 실망감을 여성들에 비해 억지로 외면하려는 경향도 있을 거다. 그래야 남자답다는 압박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슬픈 영화를 보며 여자친구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들켰을 때 얼굴이 화끈 거리는 것처럼, 여자에게 받는 선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어색하기만 하다. 고가의 선물을 받는 상황은 물론이고 필요한 선물이 있냐고 물었을 때 쉽게 대답을 할 수 없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발렌타인 데이' 스틸컷/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후배 한 명이 그런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생일 선물로 지갑을 사주겠다며 명품관을 데려가는 여자 친구를 따라가는 동안 어떻게 이 상황을 모면해야 할지 고민을 했단다. 사고 싶은 지갑이야 당연히 있었지만, 거기서 좋다고 고를 순 없는 노릇이니까. 결국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후배를 향해 '참 까다로운 사람'이라며 퍼부어대는 신경질과 야단을 견뎌내느라 괜한 힘만 뺐다고 했다.


결국 성격차로 이별을 맞이한 후배에겐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겼다. 같은 상황에서, 남자들의 그런 특징을 이미 파악하고 있던 그녀는 후배의 지인에게 온라인으로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남자친구에게 필요한 게 뭐냐는 질문을 통해 엄청나게 비싸진 않았지만 그 후배에게 필요한 선물을 해줬다고 한다. 그녀는 그리 예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선물 일화 하나만으로 그녀는 남자들의 수다에서 여신이 돼버렸다. 그녀의 선물은 가격을 떠나 가치가 우선시 된 선물임에 분명했다.


그런 배려의 아이콘과는 달리, "남자친구가 사준 가방보다 제가 직접 만들어 준 초콜릿이 훨씬 가치 있는 거 아니에요?"라는 말을 정말로 진지하게 한 여성도 있다. 실제로 그 남자친구가 그녀가 만든 초콜릿을 너무나 원했을지도 모르니 마냥 그녀를 나무랄 순 없다 해도, 저렇게 주관적인 가치판단이 이기적으로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제3자가 그들의 사정을 알 수 없으므로 선물을 평가할 땐 어쩔 수 없이 그 가치와 함께 가격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포함된 선물에 가격을 매길 수는 없다. 그런데 이는 상대가 받고 싶어하는 선물을 정확히 전달했을 경우다. 그렇지 않은 선물엔 가치보다 가격이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연인의 선물을 고르는데 실패해 본 사람들은 다음의 팁을 기억해두자. 정성은 상대가 갖고 싶은 선물을 준비할 때 더 특별해 진다는 것, 뭘 사야할지 모르겠다면 비싸고 자랑할 수 있는 선물이 좋다는 것, 이건 남자들도 마찬가지지만 그들에겐 '몰래' 사줘야 한다는 것. 당신이 주고 싶은 선물은 특별하지 않은 날 이벤트용으로, 기념일엔 상대방이 원하는 실용적인 선물을 사줘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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