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게 인기 없는 여자, 틈을 보이지 않아서라고?

Style M  |  2015.06.12 03:06  |  조회 1157

[김정훈의 별의별 야식-11] 양념이 잘 배어 있는 갈비 - 연인사이에도 틈이 필요한가


누구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을 것 같은 날, 마음껏 연애상담을 할 수 있는 편안한 술집이 있다면 어떨까? 공허한 마음과 몸을 채워 줄 요리, 만족스런 연애와 사랑을 위해 먹으면 좋은 음식은 뭐지? 남녀가 섹스 전과 후에 먹는 음식은? 이 모든 궁금증이 해결 되는 곳이 있다. 아무에게도 털어 놓지 못했던 은밀한 연애 이야기로 만들어진 맛있는 메뉴가 매주 채워지는 곳. 김정훈 연애칼럼니스트가 이 시대의 편식남·편식녀들에게 추천하는 힐링푸드, 별의별 야(한)식(탁)!


/사진=머니투데이DB


알바생 소이와 함께 가게를 열고 닫은 지도 2주가 지났다. 우린 정말이지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는 걸 느끼던 중 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공통점을 최근에 찾았다. 본방을 사수하는 드라마가 생겼다는 거다.

"꺅! 승찬아!"

승찬이가 누군가 했다. 가게에는 여자 손님들 뿐이었는데, 심지어는 서로 다른 테이블에서 동시에 그 '승찬'이란 사람을 찾은 것이었다. 그들의 시선은 테이블도, 출입문도 아닌 TV에 고정돼 있었다. '프로듀사'라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그제서야 백승찬이란 사람이 배우 김수현이 맡은 극중 캐릭터라는 걸 알았다. 그때부터 소이와 나는 손님들과 함께 TV에 빠져들어 버렸고, 반드시 그 드라마를 틀어놔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던 손님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게 지난 금요일의 일이었다. 우린 한 주간 손님이 없는 틈을 타 그 드라마를 1화부터 다시 시청했고, 겨우 이번주 회차를 따라잡을 수 있게 됐다. 문득 TV를, 아니 백승찬을 바라보던 소이의 옆모습이 생각난다. 이렇게 조용할 때도 있구나 하고 몇 초간을 쳐다봤던 것 같다. 그러다 다시 TV속 신디(아이유 분)에게 시선을 강탈당하긴 했지만.


/사진=KBS2 '프로듀사' 방송화면 캡처


"'프로듀사'에서 말이야. 탁예진(공효진 분)의 동생이 라준모(차태현 분)를 좋아하고 있는 누나한테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누나는 틈이 없어서 남자한테 인기가 없는 거라고. 진짜예요?"


방송 1시간을 남겨두고 양념 갈비를 만들고 있던 중이었다. 반가운 드라마 이름이 들려온 테이블을 쳐다봤다. 20대 후반 쯤 돼 보이는 남녀가 앉아 있었는데 남자가 여자의 회사 선배쯤 되는 것 같았다. 여자 쪽에서 남자에게 좀더 호감이 있는 게 분명했다. 남자가 의자에 편하게 기대 가게를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순간에도 여자는 남자에게 상반신을 기울인 채 계속해서 눈을 마주치려 애쓰고 있었으니까.


"틈? 뭐 반은 맞고 반은 아니겠지. 그럴 만한 여자면 그 틈을 좁히기 위해 남자가 안달이 나긴 할 거야. 근데 전혀 아닌 여자가 틈을 내면 너무 감사하겠지. 그리고 굳이 그렇게 밀당하려는 여잔 난 개인적으론 별로야. 아마 그 틈에 다른 여자를 쳐다보지 않을까? 겨우 생각나서 밥 먹자고 이야기했는데 바로바로 답장이 늦는다면 그 사람 연락기다리기 보다는 다른 사람이랑 약속 잡겠지 뭐."

"난 답장 바로바로 하는 편이잖아요. 그렇죠?"


두툼한 돼지갈비에 양념이 잘 배어들게 하기 위한 칼집을 내면서 간간히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여자는 확실히 남자를 좋아하고 있었지만 고백은 하지 못하고 남자의 의중을 떠보려는 것 같았다. 어디서 참고를 했는지는 몰라도 남자의 속내를 분석하려는 전형적인 질문들만 쏟아내고 있었다. 남자역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금요일에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그 정도의 감정은 있다는 거니까.


'저기요! 그러니까 차라리 그냥 고백을 하는 편이 더 낫다구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칼집을 낸 고기를 건네면 핏물을 빼기 위해 체에 밭쳐 놓는 작업을 하고 있던 소이에게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답답해하는 소이의 표정. 금방이라도 무엇인가를 쏟아 낼 것 같은 입. 나는 소이를 진정시켰다. "곧 승찬이 나올 시간이잖아. 경건하게 기다려야지, 그렇지?"


아직 30분이 남았다. 그들은 여전히 남녀사이 틈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자의 말에선 현재 그를 쟁취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 틈이 없어서 라는 것, 틈이 있는 여자였다면 당신에게서 고백을 받아 냈을 거라는 뉘앙스가 풍겼다. 그건 그녀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가 그녀에게 그나마 호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그 틈이 없다는 이유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지난주에 재워뒀던 양념갈비를 숯불에 구워 부추를 조금 얹어서 그들에게 가져다주는데 남자가 문득 내게 질문을 던졌다. 틈이 있는 여자를 좋아하냐고.


/사진=KBS2 '프로듀사' 방송화면 캡처 


"그런 여자가 어떤지 잘은 모르겠네요. 그런데 확실히 관계에 있어선 그 틈이란 것이 존재해야 할지도 몰라요. 이런 양념갈비도 말이죠. 칼집을 내서 틈을 만들어야 양념이 잘 배어들거든요. 둘의 사랑이 잘 배어들게 하기 위한 그런 틈은 관계에서 중요한 것 아닐까요?"


"그 틈에 둘의 감정이 아닌 다른 이물질이 들어갈 수도 있는데 그걸 내버려 두는 게 옳은 건지 모르겠어요. 전 여태껏 그런 틈을 아무렇지 않게 방치해 놓는 타입이었거든요? 그걸 억지로 메우려는 노력, 그런 소유욕이 넘치는 제 친구와는 다르게 안정적이고 긴 연애를 하긴 했죠. 근데 지금도 그녀들을 만나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결국 제 이별의 원인은 그런 틈으로 조금씩 감정이 새어나갔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최근에 들더라구요"


조금 쓸쓸해진 표정으로 남자는 내게 반문했다. 그의 말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나 역시 그런 식으로 실패한 연애경험이 몇 차례 있으니까. 하지만 굳건한 관계를 위해서 완전히 겹쳐지는 합집합이 반드시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전체집합이라는 틀이 확고히 잡혀 있기만 하다면 여집합이 존재하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으니까. 소이가 끼어들었다.


"전 고급 음식점과 그렇지 않은 음식점의 차이 중 한 가지를 꼽으라면 틈의 존재를 말하고 싶어요. 서빙되는 요리와 요리 사이에 틈 말이에요. 고급 음식점의 셰프가 무작정 손님에게 이거 빨리 다 먹고 나가라고 좁은 테이블위에 요리들을 전부 올려놓진 않잖아요? 손님이 음식의 맛과 영양을 완전히 소화할 때 까지 기다리는 것. 한 요리의 고유한 맛을 완전히 느끼고 다음 요리에 대한 식욕을 자극할 만큼의 틈을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가 셰프의 능력이에요. 그 틈은 당연히 손님과 셰프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겠죠. 틈 너머의 그가 나를 위해 요릴 만들고 그것을 곧 내어 줄 거란 믿음. 틈 너머의 그녀가 내 음식을 먹기 위해 반드시 기다리고 있을 거란 믿음 말이에요"


소이를 쳐다보던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마치자마자 TV앞에 앉은 소이는 승찬이와의 틈은 만들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오프닝을 알리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연인 관계에서도 그런 틈의 존재는 중요하다. 연애를 하게 되면 언젠가 부턴 상대방의 눈을 통해 비춰지는 내 모습만 보게 되기 때문이다. 상대의 눈이 아닌 본인의 눈을 통해서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래야 상대방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지, 제대로 감정을 주고받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을 할 수 있다.


더 단단한 관계를 위한 틈을 겁낼 필요는 없다. 어차피 우리의 삶의 길은 1인용이고, 이상적인 연애란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그 길을 완전히 합치는 게 아니다.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각자의 길을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다만 서로의 행보를 언제든지 관찰할 수 있고 관심을 가질 수 있을 정도의 거리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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