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만 속궁합 맞지 않는 남자…계속 만나야 하나요?
[김정훈의 별의별 야식-12] 요리도 사랑도 사람이 하는 것…로봇과의 섹스가 가능할까?
누구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을 것 같은 날, 마음껏 연애상담을 할 수 있는 편안한 술집이 있다면 어떨까? 공허한 마음과 몸을 채워 줄 요리, 만족스런 연애와 사랑을 위해 먹으면 좋은 음식은 뭐지? 남녀가 섹스 전과 후에 먹는 음식은? 이 모든 궁금증이 해결 되는 곳이 있다. 아무에게도 털어 놓지 못했던 은밀한 연애 이야기로 만들어진 맛있는 메뉴가 매주 채워지는 곳. 김정훈 연애칼럼니스트가 이 시대의 편식남·편식녀들에게 추천하는 힐링푸드, 별의별 야(한)식(탁)!
/사진=jaumescar in Flickr
아침부터 벌어진 소이와의 논쟁은 끝이 보이질 않고 있다. 주방에 식기세척기를 들여 놓는 문제 때문이었다. 정작 편해지는 건 본인일 것임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의견을 쏟아내는 소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의견은 이랬다.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꽤 비싼 가격을 들여야 한다는 것, 어중간한 가격대의 세척기를 사봤자 본인이 한 번 더 신경을 써야 할테니 업무가 줄어드는 건 결코 아니라는 것, 심지어 세척기의 청결도 및 제반 관리 업무까지 늘어날 거라는 말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단호한 마지막 이유가 있었다. "전 그냥 그런 기계가 싫어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대신 맡아 하는 기계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 앞으로의 불안한 미래에 대한 일장 연설을 몇 시간 째 쏟아내는 소이였다.
난 예전부터 설거지를 귀찮아했다. 언젠가 지인 중 한 명이 "하루 중 설거지 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해. 그릇의 때와 함께 하루의 묵은 스트레스를 씻겨내는 기분이거든"이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설거지를 하며 묵은 때를 확인하게 되면 하루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재확인하는 기분이라서 난 싫던데"라고 대답했던 게 생각난다. 그러니 설거지를 해줄 수 있는 기계가 있다는 건 나로썬 상당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시간 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에 더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소이는 그런 내 의견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연애 상담해 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해요! 제대로 사랑에 빠지지 못하고 연애를 시작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남녀가 왜 자꾸 늘어나는지 아세요? 바로 사장님이 방금 말한 그런 마인드 때문이에요. 좋고 편한 것만 하려는, 싫은 건 회피하고 타인에게 미루는 태도. 그 '귀차니즘'을 해결하기 위한 기계를 발명하는 데 힘과 돈을 쏟는다니. 그런 발상이 문명을 발전시켰다고는 하지만 반대로 인간미를 상실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거든요"
설거지가 귀찮다는 말이 인류의 인간미 상실과 디스토피아의 영역까지 확장될 줄이야. 그 때였다. 우리의 대화를 의식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은근슬쩍 나와 소이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는 느슨한 정장차림의 남자 두 명이었다. 한 시간 쯤 전부터 섹스 등의 단어가 난무하는 19금 수다를 지나치게 크게 떠들어 대고 있어 신경이 쓰이던 테이블이긴 했다. 하늘색 셔츠 단추를 거칠게 풀어 헤친 남자는 뭐가 그리 답답한지 연신 술을 먹어대며 꽤 취해 있었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남자는 친구가 내뱉는 한숨과 욕을 한데 담아가며 조금씩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나와 소이의 대화에 끼어든 건 취한 남자였다.
영화 '엑스 마키나' 스틸컷/사진제공=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사람이 최고라고! 식기세척기 같은 걸 왜 사는 거지? 아무리 로봇이랑 섹스하는 시대라지만. 하, 참. 어떻게 로봇이랑 나랑 비교를 할 수 가 있냐고오! 로봇이랑. 그것도 섹스를"
"죄송해요. 친구가 오늘 좀 안 좋은 일이 있었거든요. 여자 친구 때문에"
덜 취한 남자가 취한 남자의 입을 막았다. 남자친구보다 로봇과 섹스를 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메시지. 취한 남자는 자신의 여자 친구가 친구들과 나눈 대화를 그녀의 휴드폰에서 엿본 것이었다.
그녀들의 채팅방에서 오갔던 대화의 주제는 속궁합이었다. 남자친구의 크기가 너무 작아 어쩔 수 없이 실망감이 든다는 여자(취한 남자의 여자친구)의 푸념으로 시작된 그날의 대화는, 결국 '정말 사랑하지만 속궁합이 너무 맞지 않는 남자와 계속 만날 수 있을까?'에 대한 주제로 넘어갔다고 한다. 의견은 거의 반반 이었는데, 남자의 여자 친구는 그 가운데서 갈팡질팡 하는 게 보였단다. 남자는 여기까지 말하곤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친구 중 몇 명이 '사랑만 있다면 속궁합은 맞춰갈 수 있을 거야'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 때마다 그녀는 정말로 그럴 수 있을지에 대해 부정적인 쪽으로 기우는 게 확연히 보였다는 거였다. 그러다 갑자기 울음을 그친 남자는, 여자 친구가 자신과의 정신적인 사랑에는 만족하고 있는 듯 보였다며 그건 다행이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그렇다고 대답을 해주려는데 다시 서러운 표정으로 변한 남자가 이야기했다. 로봇과의 섹스에 대한 신문기사에 잔뜩 긍정적인 호기심을 보이는 그녀를 계속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된다며 크기, 강직도, 사정시간, 그 모든 것에 불만인 듯한 여자친구와의 이별을 예방하는 방법은 대체 뭐가 있냐는 거였다.
"솔직히 저라고 여자친구한테 100% 만족했겠어요. 제가 작은 게 아니라 여자 친구 쪽이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전 그냥 참고 잘 맞춰보려 노력하고 싶은데. 정말로 수술이라도해서 과학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을까요? 필러 넣는 남자들 많다던데 요즘"
영화 '엑스 마키나' 스틸컷/사진제공=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비슷한 고민을 토로하는 남자들이 꽤 있다. 그럴 때 난 '여자가 원하는 단단함이란 물건의 단단함이 아니다. 마음의 단단함이다. 수술에 대한 고민 할 시간에 연락이라도 한 통 더 해주고 외롭지 않게 해줘라'는 조언을 해주곤 했다. 그런데 이렇게 객관적인 증거가 드러난 상황 같은 경우가 애매하다. 마냥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기도 애매한 것이었다. 여자친구를 생각해서 그런 수술까지 고려해 보는 것만큼 단단한 사랑이 또 어디 있으랴.
"한 가지 음식에 정확한 맛이 정해져 있다면 기계만큼 잘 하는 사람은 없겠죠. 하지만 음식이나 요리는 그런 게 아니잖아요. 사랑이든 요리든, 정해져 있는 맛은 없어요. 그러니 요리는 '사람'이 하는 거예요. 기계를 이용해 철저히 정량을 지키는 사람이든, 철저하게 감에 의존하는 사람이든 말이죠. 같은 요리를 만들어도 만든 사람마다 다른 맛을 내는 이유가 바로 요리는 사람이 만들기 때문이에요. 만약 맛이 별로라면 그걸 만든 사람과 제대로 이야기를 해야지 그걸 친구들과 농담처럼 이야기 하는 건 누워서 침 뱉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심지어 그 쪽이 줄 수 있는 사랑을 기계와 비교하는 여자라면 정말 별로네요"
소이가 웬일로 차분하게 말했다. 남자의 깊은 슬픔을 이해하는 눈치였다. 나 역시 소이의 말에 동의 했다. 속궁합에 문제를 겪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서로 간의 대화기 때문이다.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레스토랑을 함께 찾는 것처럼, 섹스의 맛 역시 함께 찾아가야 하는 거다. 육체적인 사랑, 속궁합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그것 역시 사랑의 일부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란 걸 명심해야 한다.
사람이 하는 사랑의 행위를 기계가 대신한다든지 그것에 의존한다는 건 나 역시 생각해 본 적 없다. 언제 끝날지 몰라 맘을 졸이는 것, 그래서 그것을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게 사랑이다. 멈추지 않는 엔진을 가진 로봇을 상대할 땐 그런 불안감이 없어서 좋을 것 같다고? 그 불안감 없이 제대로 사랑이란 걸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난 그 불안하고 귀찮은 감정을 해결하지 못한 나는 몇 시간 전 소이 몰래 식기세척기를 결제하긴 했지만. 그 남자에겐 술값을 받지 않았다. 그런 기구한 사정을 듣고도 문제를 완벽히 해결해 줄 수 없는 나의 작은 응원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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