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여행 떠난 여친에게 영상 통화 요청했더니…

Style M  |  2015.07.03 05:07  |  조회 1364

[김정훈의 별의별 야식-14] 결국은 신뢰…당신도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상책일지도


누구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을 것 같은 날, 마음껏 연애상담을 할 수 있는 편안한 술집이 있다면 어떨까? 공허한 마음과 몸을 채워 줄 요리, 만족스런 연애와 사랑을 위해 먹으면 좋은 음식은 뭐지? 남녀가 섹스 전과 후에 먹는 음식은? 이 모든 궁금증이 해결 되는 곳이 있다. 아무에게도 털어 놓지 못했던 은밀한 연애 이야기로 만들어진 맛있는 메뉴가 매주 채워지는 곳. 김정훈 연애칼럼니스트가 이 시대의 편식남·편식녀들에게 추천하는 힐링푸드, 별의별 야(한)식(탁)!


/사진=Laurel Fan in Flickr


'아...안 돼...키스만은..제발!!!..하지마..안 돼!'


두 사람은 결국 키스를 하고야 말았다. 소이를 비롯한 극장안의 많은 여자들은 무척이나 설레는 표정으로 스크린에 빠져들고 있었다. 영화적으로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감정은 여자주인공에도, 그녀가 여행지에서 만난 남자주인공에도 이입되지 않았다. 오히려 목소리만 등장했을 뿐인 여자주인공의 남자친구에 빙의돼 있었던 것이다.


그가 이 사태를 알아야 하는 건데. 여행지에 떨어져있는 여자 친구와 전화로 다툰 게 미안해서 사과편지라도 쓰고 있다면 신속히 말려야 하지 않을까. 남자친구에게 서운함을 느꼈다는 핑계로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남자에게 연락을 하고 그와 대화를하며 웃고, 심지어 키스까지 나누고 있는 여자친구의 모습을 알아야 할 건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남자친구에게 안기진 않겠지?! 라는 등 별의별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유입되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오던 소이가 나를 보며 물었다.


"사장님. 뭐 저런 식으로 상처받은 적 있으세요? 왜 그렇게 오버에요. 영화는 영화일 뿐인데."
"맞아. 영화는 영화지. 그런데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일들이 현실에서 많이 벌어지거든."


/사진=영화 '비포 선라이즈' 스틸컷


가게 대청소를 위해 휴무일에 소이를 불러 낸 것이 미안해서 평소 보고 싶다던 영화를 보여준 참이었다. 아름다운 영상과 사운드트랙, 자연스런 구성의 삼박자를 갖춘 좋은 영화임엔 분명했지만 하필 그 내용이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이성과의 사랑이야기이라니. 우연하게 스며드는 사랑을 다룬 러브스토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임에는 분명하다. 그런 영화 속 판타지에 도덕적인 잣대를 굳이 들이밀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오늘 본 영화 속 여주인공은 왜 그리도 옛 기억을 들춰내게 해 사람 속을 긁고 있는 걸까. 개인적 감정과는 별개로, 그 배우의 연기에는 깊은 찬사를 보내는 바다.


가게로 돌아오는 길에 가지볶음을 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의 연남동 중국집에서 그 맛에 빠져 버린 난 중국집은 물론이고 양꼬치 가게에서도 늘 가지볶음을 시킨다. 고량주와도 어울리고 맥주와도 어울리는 기가 막힌 맛의 이 음식을 좋아하던 여자 친구가 있었다.


우리가 다투고 화해를 하는 날이면 그녀는 언제나 가지볶음을 먹고 싶어 했다. 점성 가득한 소스에 버무려진 가지와 고기, 그리고 야채들을 한 입에 먹으면 조금 벌어진 우리의 사랑도 다시 한데 뭉쳐지는 느낌이 들어서라나. 실제로 가지는 해열효과를 가지고 있어 열을 내려주고 기운을 북돋아주기도 한다. 주방에 들어서 가지 손질을 하고 있는 내게 소이가 물었다.


"사장님은 그럼 여자 친구가 혼자, 혹은 (동성)친구랑 여행가겠다고 그러면 안 보낼 거예요?"
"혼자하는 여행의 즐거움에 낯선 여행객과의 만남을 포함시키지만 않는다면."
"에이, 그렇게 정해 놓는 사람이 어딨어요. 무조건 보내줘야죠. 여행이 어때서요."


맞다. 여행이 어때서. 커플이라고 굳이 모든 휴가를 함께할 필요는 없다. 때론 혼자서, 때론 친구들과 함께 떠나고 싶은 여행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여름은 수많은 커플들의 이별지수가 높은 계절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각자 떠난 휴가지에서 만난 낯선 이성과의 만남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 오랜만에 느끼는 자유가 만들어내는 일탈에 대한 호기심, 여행지 자체가 주는 묘한 긴장감, 같은 목적을 가지고 여행지에 왔단 유대감, 매너 있는 이성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다가온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어지는 게 바로 휴가지에서의 만남이다.


일상에선 엄격하던 사람이 여행지에선 느슨해질 수도 있다. 여행객이라는 공통의 이유로 낯선 이성과 대화를 나눌 확률도 높다. 여기에 약간의 음주가 가미되면 한 번쯤의 비밀스런 스킨십도 합리화시켜 버리는 게 사람의 이기심이다.


/사진=영화 '비포 선라이즈' 스틸컷


그런 이기심을 여행지에서 완전히 정리하지 못하고 일상에 까지 끌고 들어오는 순간 문제가 커진다. 여행지에서 만난 이성과 특별한 스킨십이 없이 꽤 순도 높은 대화를 나누었을 경우엔 그 인연이 아주 특별하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착한 사람도 세상에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는 경계는 어디서든 풀면 안 된다. 스킨십에 대단한 집착이 없거나,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접근하는 고단수의 선수(?)를 만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자신이 만들어 낸 낭만에 빠져버리는 건 위험하다.


청춘남녀가 낯선 이성에게 호기심을 갖고 그들과 대화를 나눌 때의 즐거움이야 자연스러운 거지만 책임질 사람이 있는데도 그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 자유에는 책임이 필요하고 연애에선 의리가 가장 중요하다.


요즘은 게스트하우스가 애정촌이 돼 버렸다는데, 그곳에 예약할 수 있는 자격을 솔로로 한정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예 여행을 막자니 속 좁은 사람이 돼 버릴 테고, 신뢰가 정답이라지만 그 신뢰 뒤에 닥칠 배신을 전혀 불안해하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끈끈한 가지볶음이라도 먹으며 다음의 레시피를 상기시켜 보자.


/사진=영화 '비포 선라이즈' 스틸컷 


☞연인을 여행 보낸 후 찾아오는 불면증 퇴치 레시피


1. 당신이 걱정해봤자 나아질 건 하나도 없다. 이 게임의 주체는 당신이 아닌 여행을 간 연인에게 있다.


2. 그러니 이왕 보내는 거 쿨하게 보내주자. 어차피 갈 사람은 가기 마련이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봤자 연인의 일탈에 동기부여만 할 뿐이다.


3. 의심은 하느냐 마느냐의 차이다. 3% 의심하는 것과 97% 의심하는 것에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조금이라도 걱정이 된다면 여행 전 연인에게 분명히 전달을 하자. 괜찮다고 생각했던 의심이 여행 후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모습을 확인할지도 모른다.


4. 화상통화 따위는 요구하지도 마라. 안전하게 통화 후 재정비해서 외출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5.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 일일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요구하는 일, 시계를 확인시켜 달라는 일, 여행 파트너의 연락처를 물어보는 일과 같은 집착 스런 모습의 연인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안전을 위해 이동장소 파악정도는 해주는 게 좋겠지만. 관심과 집착의 줄타기를 잘 하란 말이다.


6. 당신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먼저 연락을 해주지 않거나 눈에 보이는 거짓말로 연락이 두절되는 상대와는 이별을 고려해도 좋다. 여행지나 강남의 밤거리나 이성에게 노출돼 있다는 점에선 매한가지다. 여행지에서만 특별히 그럴 거란 건 당신의 희망일 수도 있다.


7. 결국은 신뢰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면 당신도 집 밖으로 나가 노는 게 상책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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