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수육 '찍먹' vs '부먹'…사소한 것도 양보하지 않는 연인

Style M  |  2015.07.10 02:07  |  조회 979

[김정훈의 별의별 야식-15] 탕수육 소스 찍어먹나, 부어먹나 - 나를 버리느냐, 그를 버리느냐


누구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을 것 같은 날, 마음껏 연애상담을 할 수 있는 편안한 술집이 있다면 어떨까? 공허한 마음과 몸을 채워 줄 요리, 만족스런 연애와 사랑을 위해 먹으면 좋은 음식은 뭐지? 남녀가 섹스 전과 후에 먹는 음식은? 이 모든 궁금증이 해결 되는 곳이 있다. 아무에게도 털어 놓지 못했던 은밀한 연애 이야기로 만들어진 맛있는 메뉴가 매주 채워지는 곳. 김정훈 연애칼럼니스트가 이 시대의 편식남·편식녀들에게 추천하는 힐링푸드, 별의별 야(한)식(탁)!


/사진=머니투데이 DB


'찍먹'과 '부먹'이란 단어의 존재를 3주 전에야 알게 됐다. 남자친구와 함께 온 한 손님이 탕수육을 주문했고, 난 아무 생각없이 소스를 부어서 내어줬다.

"탕수육은 '찍먹'해야 한다구요!"

찍먹? 아, 사진을 찍고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예쁜 음식 사진을 찍기에 장식이 별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향하는데 마침 그녀 앞에 앉아 있던 남자친구가 테이블에 놓인 DSLR을 만지작거리는 게 아닌가. 역시, 말로만 듣던 파워블로거를 영접하게 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특별히 잘 보이고 싶진 않았지만 그렇게나 원하는 '찍먹'을 방해해선 안 될 것 같았다. 좀더 예쁜 그릇에 옮겨 담아 꽃모양 당근조각 몇 개도 특별히 얹어 줬다. 그런데 아까보다 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그녀. 남자친구는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내려놓으며 태연하게 탕수육 한 점을 먹었다. 그녀는 잔뜩 날이 선 채로 그에게 말했다.


"우리 앞으론 무조건 부먹으로 먹자고 했잖아!"
"맞다. 내가 신경을 못 썼네. 미안."
"매번 미안하다고만 하고. 내 말을 좀 더 신경 써주면 안 돼?"


/사진=tvN '식샤를 합시다 2' 방송화면 캡처


그 때부터 언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 슬그머니 자리를 벗어났다. 소이는 내 행동이 '부먹'족에겐 엄청난 실례라고 말했다. 난 '찍먹'이란 방식의 견고함에 놀랐다. 내 사전에 있어 탕수육이란 바삭한 고기튀김에 소스가 부어진 채로 서빙돼 나오는 요리다. 다만 그것이 배달 요리로 진화됨에 따라 튀김의 눅눅해짐을 방지하기 위해 따로 소스를 갖다 주는 게 상용화됐을 뿐인데, 그게 '찍먹'이라는 방식이 되어 하나의 유파마냥 자리잡고 있다니.


이런 문화적 충격은 처음이 아니었다. 고향인 부산에서는 당연히 된장에 찍어 먹는 순대를 서울에서는 소금에 찍어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심지어 전라도 어딘가 에선 고추장을 찍어 먹는다는 이야기까지 들은 것도 모자라 두 지역 간의 차례 음식 종류까지 다르다는 걸 알았을 때, 늘 먹던 된장 베이스의 꽃게탕이 서울에선 매운탕에 가깝게 조리된다는 걸 알았을 때, 언젠가 서울의 지인들을 부산에 데리고 갔을 때 그들이 가장 놀랐던 음식이 바로 물떡(어묵국물에 들어가 있는 가래떡 꼬치)이라고 얘기했을 때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부먹 찍먹 이거 빼곤 늘 노력하고 있잖아. 정말로 깜빡한 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해야해?"


남자도 화가 난 듯 여자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하, 내가 부은 소스로 인해 이렇게 큰 싸움으로 발전 될 줄이야. 그들도 처음에는 서로의 다른 취향을 존중해주려 했을 거다. 다양한 문화영역에 있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소비를 해 온 두 사람이 공통된 소비를 시작하게 되는 게 바로 연애다. 열띤 언쟁을 벌이고 있는 두 사람 역시 그 차이를 모르는 상태로 시작하진 않았을 거다.


/사진=tvN '식샤를 합시다 2' 방송화면 캡처


하지만 그 누가 24시간 동안 긴장하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마음먹은 대로, 의지대로 행동에 옮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실수(?)는 할 수 있는 게 사람이다. 연인에게 지나치게 위대한 성인의 행동거지를 강요하면 안 된다. 당신의 연인은 보통의 사람이다. 그런데 상대의 노력이 머리로는 받아들여 지는데 가슴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우리를 더 속상하게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두 사람의 대화 같은 케이스다.


"내가 노력을 안 한다고? 자기 만나기 전에 가던 클럽도 절대 안가고 이성친구들이랑도 연락 안해. 널 위해서."
"날 위해서? 그건 당연한 거잖아. 애인이 있는데 클럽을 가고 이성친구들과 수다를 즐기는 게 이상한 거 아냐?"


남자는 답답한 듯 소주를 마셨다. 여자도 답답한 듯 맥주를 마셨다.


"우린 모두 서로 다른 0의 영역을 갖고 있어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 되는 것들이 있는 공간이죠. 누군가는 클럽에 가지 않는 걸 그 영역에 놓아두고 누군가는 1시간에 한 번은 메시지를 보내는 걸 그 영역에 집어 넣어 놔요. 또 다른 누군가는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는 걸 넣기도 하겠죠. 근데 그곳에 위치한 요소들은 개인마다 다 달라요. 남자 분의 노력이 가슴으로 와 닿지 않는 이유는, 그의 노력요소들이 여자 분에겐 0의 영역에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에요. 거기선 뭘 곱해도 0이 될 뿐이거든요. 그러니 여자 분께 가슴으로 와 닿는 노력을 하려면 그 0의 영역 안에 들어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해 노력해야해요.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노력을 더 해야겠죠."


/사진=tvN '식샤를 합시다 2' 방송화면 캡처 


"힘들어서 어떻게 해요. 이 사람의 0의 영역에 대해 완전히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대화가 필요하고, 더 많이 관심을 갖고 관찰을 해야 하는 거예요. 무척 어렵거든요 그건. 여자 분도 그 어려움을 알고 남자분의 노력에 대해 우선은 충분히 고마워해야 하는 거구요. 자신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은 노력이라 해서 그걸 무시하면 안 되겠죠."


소이가 나를 대신해 둘을 중재하려 나섰다. 이럴 때의 소이는 듬직하다. 나도 새로 튀긴 탕수육을 내어주며 소이를 거들었다. 물론 소스는 따로 담아 주며.


"나를 버리느냐, 그를 버리느냐. 결국은 그게 문제예요. 언제까지 그에게 자신을 버려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거든요. 날 모른다는 것에 대해 도무지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을 때, 본인이 해결해야 할 숙제는 그런 거예요. 나를 조금 버려서 그의 노력에 만족을 할 것 인지. 날 버리지 못하고 그를 버릴 것인지. 미래를 생각하는 거죠. 그게 바로 권태기를 극복하는 핵심이에요. 과거에 쌓인 정으로 극복하려하기 보다는 앞으로 더 함께할 사람인지 생각해 보는 것. 그렇다면 나를 버리고 그를 얻는 사랑을 위해 한 번 더 힘을 내 보는 게 행복을 위한 능동적인 사랑이지 않을까요?"


둘은 최근에 다시 가게를 찾았다.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나는 그 날 이후 짬짜면 그릇을 하나 사두었었다. 두 사람은 다시 탕수육을 시켰고 난 그 그릇에 찍먹과 부먹을 반반 나눠 줬다. 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부먹을 좋아하던 남자는 튀김이 눅눅해 지는 게 싫다며 소스에 부어 먹었고, 그렇게나 부먹을 거부하던 여자는 자연스레 소스를 부은 쪽을 먹는 게 아닌가. 역시 남녀의 연애는 종잡을 수가 없다. 사랑 싸움에 애꿎은 짬짜면 그릇값만 나가다니.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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