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결혼 '합헌' 된다면, 소아성애자도 인정해 줘야 할까?
[김정훈의 별의별 야식-16]국민음식 자장면-결혼이 뭐길래① 개인의 다양한 욕구 인정과 동성결혼
누구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을 것 같은 날, 마음껏 연애상담을 할 수 있는 편안한 술집이 있다면 어떨까? 공허한 마음과 몸을 채워 줄 요리, 만족스런 연애와 사랑을 위해 먹으면 좋은 음식은 뭐지? 남녀가 섹스 전과 후에 먹는 음식은? 이 모든 궁금증이 해결 되는 곳이 있다. 아무에게도 털어 놓지 못했던 은밀한 연애 이야기로 만들어진 맛있는 메뉴가 매주 채워지는 곳. 김정훈 연애칼럼니스트가 이 시대의 편식남·편식녀들에게 추천하는 힐링푸드, 별의별 야(한)식(탁)!
/사진=머니투데이 DB
사랑은 정의할 수 없다. 그래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정의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사랑이라 해도 그것의 결실에 대한 질문에는 한 가지 단어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결혼이다. 물론 사랑하면서 결혼을 하지 않는 커플들도 있지만.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얘기하면서도 한 가지만큼은 일반적인 규정을 지어왔다. 이성애라는 측면이다. 사랑의 결실이라 여기는 결혼을 하는데 있어 동성끼리의 그것을 부정해온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6월 26일은 역사적인 기념일이었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이 합헌이라는 역사적인 판결을 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회 형태로의 전환을 허락한 거다.
개인적인 취향을 떠나, 우선은 축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의 형태로 사랑을 하며 살아가는 사회에서, 소외받던 하나의 다양성을 인정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우리 가게에서도 무지개롤 케이크를 만들어 손님들께 내놨다.
만들어 뒀던 케이크가 동 나는 동안 동성결혼의 합헌, 차별금지법, 퀴어축제 등 주제로 가게가 시끌벅적했다. 우연히 샌프란시스코 출장 중 축제의 현장에 있었다는 사람, 몇 년 전 배낭여행 때 핀란드에서 퀴어 축제를 구경했다는 학생, 이번에 열린 축제의 기획자, 그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던 기독교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동성애를 주제로 술자리 토론을 벌였다.
/사진=영화 '친구사이?' 스틸컷
게이 커플과 레즈비언 커플이 우연히 가게를 방문한 어떤 날은 가게 문을 닫고 새벽까지 축하파티를 벌인 적도 있었다. 그들 모두 말하고자 하는 바, 원하는 사랑의 형태 등이 전부 달랐기에 나와 소이는 특별한 찬성과 반대의 경계를 짓지 않고 분위기를 따랐다.
그런데 한 가지 측면에서 만큼은 의견을 피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 모두의 대화에선 공통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양성의 확장과 그 마지노선 때문이었다. 동성애를 인정한다면 소아성애자의 다양성도 인정해 달라는 한 집단의 청원은 기사화까지 됐다.
"뭐라구요?"
"이런 거지. 어차피 개인의 욕망을 인정해 주는 게 아니냐. 그럼 우리 같은 소아성애자들의 욕구도 인정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동성애가 뭐가 소수냐. 우리가 소수자라는 거지."
"동성애는 상호 감정의 교류가 이뤄지는 거고. 아동성애는 개인의 섹스 취향을 위한 동의 없는 폭력이잖아! 섹슈얼리티와 섹스의 차이를 모르는 건가? 정글을 만드려는 것도 아니고."
동성애와 동성간 결혼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지만 이런 다양성의 확장문제에 대해선 한결같이 우려를 표했다. 나와 소이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사랑에는 섹스가 포함되고, 동성애를 인정하는데 있어 동성 간의 섹스를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데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 중 하나인 섹스에 대한 것이 동성결혼의 합헌이 내포하는 주된 논점은 분명 아니다.
"일부다처제를 인정해 달라는 것과 스와핑을 하고 싶다는 거랑은 다른 건데 말야."
"좀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을 죽지 않을 만큼 때리는 것 정도는 표현의 자유 내에서 허락하게 해달라고 할지도 모르겠구만. 분노를 폭력으로 실현하는 것도 개인 취향이니."
"아니, 동성 간의 결혼이란 건 가족을 이루는 형태에 대한 논의 인거고. 소아성애자들은 그저 개인의 성적욕구에 대한 측면인거잖아요? 미성년자와 결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해도 의견이 분분할 건데. 소아성애자를 인정해 달라니…미친 거 아니에요 진짜?"
소이가 흥분해서 손님 앞에 놓인 맥주를 한 번에 들이켰다. 그들의 대화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메뉴를 개발하다보면 가끔씩 드는 의문이 있는데, 한 음식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다.
/사진=영화 '친구사이?' 스틸컷
오늘 점심으로 먹은 자장면만 해도 그렇다. 나는 살아오며 수만 그릇의 자장면을 먹어왔지만 그것의 정체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뿐 만이 아닐 거다. 우리는 초등학교 졸업식의 점심부터 이삿날의 저녁까지 너무나 다양한 상황에서 자장면을 찾지만 그저 곱빼기와 일반, 간짜장과 일반 짜장 사이에서 고민 하는 게 전부다.
난 소이와 가게오픈을 준비하면서 배가 고팠고 문득 자장면을 먹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이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그 자장면 이라는 음식의 정체는 과연 뭘까?
감칠맛 나는 자장 소스의 맛, 잘 반죽된 매끈한 면에 검정색 자장 소스를 붓고 그 위에 채썬 오이나 완두콩 몇 개가 올라가 있는 면 요리의 하나, 삶은 것이든 프라이든 계란이 반드시 올라가 있으면 더 좋은 그런 음식, 중국집에서 시킬 수 있는 가장 저렴한 메뉴, 자장면 하면 뭐 이런 것들이 떠오른다. 물론 가게마다 맛이 다르고 비주얼도 다르겠지만 무작위로 100명의 사람들에게 자장면에 대한 정의를 물었을 때 아마도 크게 다를 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방문한 중식당에선 '흰 자장면'을 새로 개발했다고 했다. 옆 테이블 손님이 시켜 먹는 그 자장면을 봤을 때 이런 의문이 든 것이다. 저건 자장면이라고 할 수 있나? 자장면을 모르는 사람에게 아무런 정보 없이 저 음식의 정체에 대해 물어 봤을 때 과연 파스타나 볶음 우동이 아닌 자장면이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그럼 자장면의 변형은 어디까지 허용 가능할까. 우선은 먹을 수 있어야 할 거다. 자장면 모형을 보고 우린 자장면이라고 하지 않으니까. 음식의 본질인 맛에 대한 범위가 아무래도 확고해야 할텐데, 그 맛의 중심은 춘장이다. 정해진 레시피대로 조리를 한다 해도 춘장대신 굴소스만 넣어 소스를 만들어 봤자 그건 자장소스가 될 수 없다. 그런 음식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판다면 그것 역시 중화풍 파스타가 될 뿐이다. 그러니 파는 장소도 중요하다. 물론 요즘은 분식집에서도 자장면을 팔긴 하지만.
/사진=영화 '친구사이?' 스틸컷
음식, 사랑, 가족의 형태 등 우리는 다양한 측면에서 개인의 욕망을 추구한다. 그 욕망을 기반으로 다양성을 확보하기도 한다. 개인들이 집단을 이뤄 살아가기 위해 만든 사회적 합의는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그 형태를 변형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것이다. 술자리의 안주가 아닌, 사회의 수면 위로 부상시키기 위한 논의가 되기 위해선 그것이 단순히 개인적 욕망만을 내포해선 안 된다는 거다.
동성결혼 합헌의 쟁점은 가족의 형태다. 국가와 세계를 구성하는 최소단위의 가족이란 사회를 만드는 구성원에 대한 문제지 섹스 방식에 대한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면 요리를 만들어 놓고는 본인의 취향이니 자장면으로 인정해 달라는 게 말이나 될까. 어느 드라마에 나온 대사 마냥 암세포에도 생명이 있다면 자장면에도 자의식이 있을텐데.
마침 한가득 모인 중국집 쿠폰을 정리하는 소이가 보였다. 사랑의 형태는 뭐가 됐든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람에게 자장면 성애자로서 충고할 게 있다면 이거다. 자장면도 최소한 춘장은 베이스가 돼야 한다고. 뭐든지 너무 가면 그건 애초에 본질을 잃는다고. 쿠폰 정리를 마친 소이가 물었다.
"근데 결혼을 꼭 해야 해요? 감정적으로 나약한 사람이 최소한의 관계를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 하려고 하는 약속 아니에요? 진짜 단단한 사랑이라면 결혼 안하고 둘이 살면 되잖아요."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