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결혼하는 여자들, 페이크푸드같은 '싱글웨딩'의 씁쓸함
[김정훈의 별의별 야식-17] 고기 맛 두부스테이크 - 결혼이 뭐길래②결혼은 게임 자동모드가 아니다
누구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을 것 같은 날, 마음껏 연애상담을 할 수 있는 편안한 술집이 있다면 어떨까? 공허한 마음과 몸을 채워 줄 요리, 만족스런 연애와 사랑을 위해 먹으면 좋은 음식은 뭐지? 남녀가 섹스 전과 후에 먹는 음식은? 이 모든 궁금증이 해결 되는 곳이 있다. 아무에게도 털어 놓지 못했던 은밀한 연애 이야기로 만들어진 맛있는 메뉴가 매주 채워지는 곳. 김정훈 연애칼럼니스트가 이 시대의 편식남·편식녀들에게 추천하는 힐링푸드, 별의별 야(한)식(탁)!
/사진=diettogo1 in Flickr
혼기가 찼다는 말만큼 30대 남녀를 피곤하게 하는 말은 없을 거다. 결혼할 파트너도 없는 사람에게 결혼할 때가 됐다는 압박을 주는 것만큼 아이러니한 일도 없고. '결혼을 내가 하지 니가 하냐!?'라는 윽박으로 무작정 대응하기엔 상대해야할 적이 너무 많다.
"요즘은 퇴근하기가 싫어요. 아빠랑 엄마, 할아버지까지 나서서 매일 결혼 이야기를 꺼낸다니까요. 심지어 사돈에 팔촌! 아 사돈은 없구나. 그래서 이렇게 욕을 먹는구나."
조금 전 방문한 서른셋의 여자 손님 역시 결혼에 대한 한풀이를 하다 완전히 술에 취해버렸다. 나와 소이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화를 달래려 애썼다. 예사롭지 않은 술주정을 보일 조짐이 보였기 때문이다. 서른셋이면 아직 늦지 않았다. 능력도 좋고 외모도 출중하신데 뭐가 문제냐. 그런 이야기들로 열기를 식히려 하는데 괜찮은 안주가 더 없냐며 내게 물어왔다. 자기관리에 많은 투자를 한다던 그녀를 고려해서 특별히 두부스테이크를 만들어 줬다.
"고기를 무척 좋아하시는데 몸매 유지도 신경 쓰신다고 해서요. 고기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고기 맛 나는 스테이크예요. 제가 특별히 개발한건 아니고. 여자 분들이 좋아하더라구요. 고기로 만든 거랑 식감이 거의 비슷할 거예요. 아, 그거 아세요? 신문을 봤는데 베이컨 맛이 나는 해조류까지 개발됐대요. 진짜 베이컨 맛이 나긴 할까요?"
메뉴 본연의 맛과 최대한의 영양을 한 번에 잡기 위해 레시피를 변형시켰지만 맛은 유지하고 있는 음식. 나는 그런류의 음식을 '페이크푸드(fakefood)'라고 부른다. 웰빙 식단에 대한 관심은 그 식단을 구성하는 음식으로, 음식에 대한 관심은 그걸 만드는 레시피에 까지 확장돼 버렸다. 결국 조리에 필요한 재료 자체를 바꾸면서도 음식 본연의 맛은 놓치지 않으려는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그 1세대가 바로 두부스테이크다. 그런데 그녀가 아예 손도 안대고 있다.
/사진=nparekhcards in Flickr
"제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에요. 정말 저는 이런 음식이 너무 싫어요."
깜짝 놀랐다. 두부가 싫고 스테이크가 싫어서는 아니란다. 고기를 먹고 싶은데 고기가 부담되는 사람을 위해 만든 고기 맛이 나지만 고기는 아닌 음식. 이런 페이크푸드가 너무 재수 없다는 거였다. 세상이 전부 실리적으로만 돌아가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좋은 것만 취하려는 풍토가 결국 제대로 된 연애나 사랑은 하지 않고 대충 썸만 타려는 남녀를 양산해내는 거라고 성토했다.
"심지어 그런 기사 보셨어요? 혼자서 결혼하는 여자 말이에요. 그게 말이 돼요? 아니 동성결혼이든 일부다처든, 아니면 일처다부든 그런 건 다 이해해요. 결혼이란 건 한 개인이 타인과 결합을 하는 거니까 그 대상이 동성이나 여러 명이 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쳐요. 그런데 혼자서 하는 결혼이라는 건 진짜로 그냥 그 결혼 자체의 이미지만 취하려는 거 아니에요? 그건 마치 고기를 안 넣었는데 고기 맛이 난다며 좋아하는 이런 음식이랑 똑같은거라구요!"
우선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녀의 말이 맞다. 타인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인 연애, 그리고 그 타인과 영원히 더 알아가기 위한 결합인 결혼을 혼자 한다는 건 어쩐지 갸우뚱해지는 말이다. 타인을 사랑하는 시간에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할 수는 있다. 그렇게 자기애가 강해서 독신을 고집한다면 그걸 나무라지 않겠다. 그런데 그걸 자기 자신과의 '결혼'이라고 포장하는 건 자웅동체가 아닌 인간에게 적용시키기엔 다소 철학적인 문제가 아닐까.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재밌는 현상을 목도했다. 대부분의 휴대폰 게임에는 '자동(Auto)' 기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충전을 맡긴 고객의 휴대폰 화면이 충전 중에도 쉴 새 없이 점멸하는 걸 봤다. 휴대폰 게임을 켜 놓았다는 것이었다. 게임을 켜 놓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 손님에게 물어봤다. 그렇게 내버려두면 캐릭터가 죽지 않느냐는 나를 보며 자동컨트롤모드에 대해 그가 설명해 줬다. 요즘 인기 있는 휴대폰 게임의 필수조건 중 하나가 바로 자동컨트롤모드라는 것이었다. 유저가 직접 컨트롤하지 않아도 자동모드를 통해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해야 게임이 성공한다는 게 의아했다.
/사진=r.nial.bradshaw in Flickr
"게임하는 데 시간 쏟을 여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게임은 해야겠고. 그러니까 자동모드 같은 게 있어야 업무도 보고 게임도 하고 1석2조를 즐길 수 있는 거죠. 특히나 레벨 올려야 게임이 진행되는 그런 롤플레잉이나 육성시뮬레이션 같은 장르에는 필수죠 필수!"
수동모드일 경우엔 늘 캐릭터의 상태를 신경써야하고, 힘들게 길을 찾아 몬스터와 어려운 전투를 반복해야 레벨이 오른다. 그걸 위해 어려운 조작법을 연마하고 그만큼 화면을 터치해야 하는 번거러움이 있다. 자동모드일 땐 그 모든 과정이 생략된다. 전투 후에 받은 보상 및 캐릭터의 레벨 업을 그저 확인할 뿐이다. '확인(Ok)' 버튼과 '취소(Cancle)' 버튼 두 개면 얼마든지 게임을 할 수 있는 거다. 그 손님에게 이렇게 게임을 하면 어떤 재미가 있냐고 물어봤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 내게 말했다. 레벨이 상승하는 걸 확인하는 재미와 사람들과의 랭킹싸움에서 이기는 재미, 이만큼이나 성공적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높은 레벨의 캐릭터를 갖고 있다는 성취감이 재미 아니겠냐고.
/사진=DavyLandman in Flickr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성과를, 일타쌍피를 추구하는 성과주의는 너무나 매혹적이다. 그걸 부정하진 못할 거다. 하지만 자동모드의 만연은 조금 걱정이 된다. 식생활, 취업, 연애 및 결혼 등 모든 사회생활에서 그런 행태가 팽배해 지는 것 같아서다. 캐릭터의 레벨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걸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해도 수동모드로 플레이해서 레벨을 올린 캐릭터만큼의 애정이 생길지는 의문이다. 맛과 영양을 둘 다 잡으려는 노력은 좋지만 고기 맛이 나는 음식을 먹었다고 해서 고기를 먹었다고도 할 수 없다. 무엇인가를 좋아한다고 얘기하는 것, 그것을 진정 즐기고 취하고 싶을 땐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받아들일 자세가 필요하다는 거다.
이건 연애나 결혼에서 더 중요한 얘기다. 상대를 만날 때의 즐거움만 취하려 해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회가 정한 혼기에 맞춰 결혼을 하고 그 결혼이 성숙한 성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요건, 혹은 관문으로 변질되는 걸 강화할 뿐이다. 결혼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아니라 타이밍으로 하는 거란 말이 설득력 있다곤 해도, 타이밍이 곧 겉치레라는 얘긴 아니다. 결혼의 눈부신 면만 취하려 해선 결혼 후에 닥칠 현실의 실망감을 감당하기 힘들 거다. 그러니 자동모드로 결혼을 치뤄내려는 사람들과 비교당하는 수많은 30대 수동모드유저들이 기죽을 필욘 없을 것 같다. 천천히, 애정 가득히 당신을 레벨업 시키고 있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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