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과 성욕, 그리고 썰욕, 인간의 욕망 '3S'를 아시나요?
[김정훈의 별의별 야식-19] 우설구이-인간 제6의 욕구 '썰욕'…대화의 기술이 중요한 이유
누구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을 것 같은 날, 마음껏 연애상담을 할 수 있는 편안한 술집이 있다면 어떨까? 공허한 마음과 몸을 채워 줄 요리, 만족스런 연애와 사랑을 위해 먹으면 좋은 음식은 뭐지? 남녀가 섹스 전과 후에 먹는 음식은? 이 모든 궁금증이 해결 되는 곳이 있다. 아무에게도 털어 놓지 못했던 은밀한 연애 이야기로 만들어진 맛있는 메뉴가 매주 채워지는 곳. 김정훈 연애칼럼니스트가 이 시대의 편식남·편식녀들에게 추천하는 힐링푸드, 별의별 야(한)식(탁)!
/사진=joo0ey in Flickr
"식욕과 성욕 그리고 썰욕까지! 3S를 만족시켜주는 음식점이 바로 이 곳? 이거 기자가 쓴 거죠? 설마 사장님이 직접 말한 건 아니죠?"
내가 생각한 멘트긴 하다. 2주전에 했던 'RFP(Restaurant For People)'란 온라인 잡지와의 인터뷰에서였다. 마침 소이가 휴가를 떠난 기간 동안 인터뷰가 진행됐고, 난 소이에게 인터뷰 사실을 숨겼었다. 가게를 지나치게 홍보하는 주인이란 인상을 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터뷰를 응한 이유 역시 홍보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달에 가게를 찾은 한 무리의 손님들 중에 RFP의 편집장이 있었다. 그는 나와 동갑이었고 술을 몇 잔 나누며 꽤 친해져버렸다. RFP는 그가 최근에 창간한 음식점 전문 매거진이었다. 음식이 아닌 음식점 자체의 생명력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잡지를 만들었다는 그의 말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인터뷰를 응해버린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인터뷰를 즐겼던 것도 결국 그 썰욕 때문이 아닐까 싶어. 말하고 싶은 욕구."
"아뇨, 그 말의 의미가 이상하단 게 아니라요. 좀 더 센스 있는 단어를 생각해내시지 참."
가게를 소개하는 한 줄 멘트를 요구하는 에디터에게 문득 떠오른 생각을 전해준 게 화근이었다. 인터뷰 마무리를 하던 에디터는 '야식과 야한 농담이 오가는 식탁'의 연결고리가 재밌다며 임팩트 있는 문장을 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간단히 가진 술자리에서 그녀(에디터는 미모의 여자분이셨다)가 계속 그 이야길 이어나간 것이다.
영화 '관능의 법칙' 스틸컷/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이 가게는 결국 식욕이랑 색욕을 만족시켜 주잖아요? 식욕과 색욕의 'ㅅ'을 합치면 2S니까. 뭔가 시옷으로 시작하는 단어 하나가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한참을 고민하는 에디터에게 우설(소의 혀)구이를 내줬다.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며 징그러워하는 그녀에게 숯불에 잘 구워진 우설 한 점을 채썬 파를 조금 곁들여 권했다.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등심 중에서도 가장 마블링이 좋은 살치살 수준의 고소한 맛에, 탄력 있는 식감은 돼지고기 항정살의 그것과 비슷하다며 순식간에 한 접시를 비워냈다. 그녀 입에 들어가는 마지막 우설 한 조각을 보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런 건 어떨까요? 썰욕. 인간에겐 오욕칠정 외에 제6의 욕망, 썰욕이 있으니까."
"썰욕이요?"
"기자님도 말 잘하는 사람이 연애 잘 하는 거 아시죠."
"그렇죠. 아무래도 여자들은 재밌는 남자를 좋아하니까."
"네. 남자든 여자든 대화를 잘 하는 사람은 매력적인 법이죠. 근데 그런 사람이 그저 재밌어서 인기가 많다는 건 1차적인 이유예요. 거기엔 하나의 비밀이 또 있죠."
"뭔데요?"
"듣고 있는 상대의 썰욕을 자극시킨다는 거예요. 썰 풀고 싶은, 그러니까 말하고 싶어 하는 욕구 말이에요. 성욕을 자극시키는 사람을 섹시하다고 하잖아요? 섹시하게 대화를 하는 사람과 함께 얘기하다보면 썰욕이 자극되는 법이거든요."
"그럼 사장님이 바로 그 섹시한 대화의 기술을 가진 사람?"
"하하. 그건 아니구요. 그냥 이 가게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이니까. 아무래도 사람들의 썰욕이 해소가 되지 않을까 해서요. 썰을 S라고 해서 3S를 완성하면 너무 억지일까요?"
그렇게 기사가 만들어진 거다. 이성에게 매력 있는 사람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재력도, 뛰어난 외모도 아니다. 말을 잘한다는 거다. 초면의 어색함을 없애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언어의 연금술사들은, 말을 원활하게 하지 못했던 사람에게까지 이런 즐거움을 만들어준다. '아! 대화하는 기쁨이 이런 것이구나!'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마음껏 떠들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욕망은 식욕과 색욕만큼이나 근원적인 욕망이다.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겐, 아무 걱정 없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주 큰 행운일지도 모른다. 이런 대화의 기술은 기본적으로는 남자에게 요구되는 게 보통이지만, 말 잘하는 여자 역시 매력이 있다. 이런 손님이 있었다.
영화 '관능의 법칙' 스틸컷/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어느 날 술자리를 갔는데, 정말 외모가 별로인 여자 옆에 앉게 됐어요. 맞은 편엔 꽤 예쁜 여자가 있었거든요. 자리를 당장 바꿀 수 없었으니 제 옆의 여자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30분쯤 지나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니까요. 엄청난 외모지상주의자였던 제가 옆에 있는 여자의 대화에 푹 빠져버렸어요. 영화, 드라마, 음악, 패션, 키덜트 취미까지 온갖 주제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하는데... 새침하게 술만 먹고 있고 있던 맞은 편 여자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더라구요. 결국 그녀와 데이트를 몇 번하고 사귀게 됐죠."
거짓말 같겠지만 진짜다. 물론 그 이후에 얼마나 오랜 기간을 연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 엊그제 온 손님중에는 말 잘하는 남자에 대해 극찬을 하던 여자 손님이 있었다.
"오랜만에 라운지 바에 갔어요. 물이 별로라서 다른 곳을 갈까 했는데, 한 잔 하자며 젠틀하게 말을 걸어오는 남자분이 있었어요. 일행이 올 예정이라니까 정중히 물러가더군요. 뭐랄까. 좀 아쉬운 기분이 들어서 대화를 좀 나눠봤죠. 와우! 다시 그를 붙잡은 건 제 인생에 최고의 선택이었다니까요. 그와 대화를 하는데 전율이 쫙 끼치는 기분? 전 제가 그렇게 말을 잘하는 줄 몰랐어요. 지금껏 내가 확인할 수 없던 내 모습을 이 남자를 통해 보는 그 기분이 정말 짜릿했어요. 그런 오르가즘도 있더라니까요. 결국에는 그와 침대까지 가게 됐죠."
이렇게 이성에게 사랑 받는 사람이 되는 방법에 대해 묻는 사람이 많다. 난 상대방에 대한 관찰력을 기르라고 얘기하는 편이다. 내가 꺼낸 이야기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특히 더 관심 있어 하는 주제는 뭔지에 대해 눈치를 채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상대가 듣고 싶은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상대방도 자연스레 말문이 트이는 법이다. 상대가 원하는 다양한 주제를 확보하기 위해 세상과 사람을 평소에 잘 관찰하려는 호기심도 중요할거고.
'그래서 우리 가게와 같은 3S를 만족하는 공간으로 상대방을 이끌어야 한다.'는 건 기사에도 나와 있는 가게 홍보 멘트다. 사실 이 가게는 사실 내 썰욕을 풀기 위해 만든 공간이지만, 홍보란 그런 것이니 어쩔 수 없다. 말을 잘하는 것도 홍보 방법의 일환인 것이니까.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