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부모 vs 부자 부모, '금수저 금융상품'을 아시나요?
[김정훈의 '없는 남자'-3] 증여 없는 남자 - 부모의 인격과 가풍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오프라인이고 온라인이고 남자들이 문제란다. 오프라인에선 소극적인 남자들을 향한 여성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온라인에선 남성들의 전투적인 악플이 연애와 사랑의 근간을 후벼판다. 왜 이렇게 까다로운지, 왜 그리 불만이 많은지. 결핍 있는 남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들춰주는 'OO 없는' 남자 이야기.
영화 '빅 웨딩' 스틸컷/사진=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가정적이지만 가난한 부모님과 바쁘지만 돈이 많은 부모님 중 누구를 택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네 명의 응답자가 말했다.
A : 난 콧구멍 같은 집에 살기 싫다.
B : (부모님이 돈이 많으면)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다. 가난하면 아무리 가정적이라고 해도 나쁜 추억만 쌓을 거다.
C : 그냥 아이만 키우면서 구걸할 거냐. 돈을 벌면서 살림을 꾸려 나갈 거다.
D : 돈이 많은 부모님은 바빠서 애는 못 보지만 애는 똑똑해질 수 있다.
단호하다. 선택의 이유가 단순하지도 않다. '콧구멍 같은 집' '구걸' 등의 단어를 써가며 구체적인 심리를 보여주고 있다. '바쁘고 돈이 많아도 가정적일 수 있지 않아요?'라는 반론조차 없다. 가정적이란 가치에 대한 갈망보다는 가난에 대한 공포가 확연히 느껴진다. 이들 응답자의 나이를 듣고 나면 아마 까무러칠 거다. A~D는 모두 10세 이하의 어린 아이들이다.
위 상황은 모 케이블TV의 예능프로그램에서 방영된 내용이다. '고작 네 명이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잖아. 방송하는 아이들이라 그런 게 아닐까.'라는 기대도 잠시, 프로그램 리뷰 댓글에 등장하는 일반 아이들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너네 아빠 차 뭐야?", "선생님 차는 외제차예요?", "너희 집 전세야? 거긴 평수 작지?"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단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이 괴물로 자라나는 걸 막을 수 있을까. 교육 역할을 담당해야 할 성인들부터 자포자기 상태다. 고기(물질)를 잡아주기보다 고기 잡는 법(가치관)을 물려줘야 한다는 얘기는 도덕책에서나 가능하다. 더 많은 고기를 잡아 주지 못하는 부모가 현실에서 뒤쳐질 뿐이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결혼이란 더 이상 사랑의 결실이 아니다.
영화 '빅 웨딩' 스틸컷/사진=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미지의 영역이라면 다행이지만, 결혼은 불구덩이가 확실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동수저'들은 결혼을 기피한다. '금수저'들은 끼리끼리 무난한 결혼을 해서 계급을 강화한다. 심화되는 부의 양극화, 악순환을 끊어낼 방법은 성인들도 찾을 수 없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건 역시 결혼적령기의 남녀다. 이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해 봤다. 먼저 남성의 대답이다.
"부끄럽지만, 기왕이면 돈 많은 부모님이 좋겠죠. 솔직히 시작점이 너무 다르거든요. 회사 동기 중에 비슷한 또래인 박대리가 있어요. 집이 잘 살죠. 여직원들이 술자리에서 그러더군요. 박 대리님은 무슨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집은 어느 동네다. 부자인 거 같은데 받은 월급 거의 전부를 저금해서 꽤 많이 모아 놨다더라. 성실하기까지 하니 일등 신랑감이 아닐 수 없다고.
성실한 친구 맞아요. 돈 많아도 저축하긴 힘드니까요. 그래도 씁쓸했죠. 그렇잖아요? 대중교통 이용하는 건 똑같은데, 외제차를 갖고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이미지 차이. 저금도 그래요. 저라고 많이 안하고 싶었겠어요? 월세 및 생활비에, 통장에 묻은 월급 카드로 지우는 형편에 얼마나 할 수 있겠어요. 술 담배 참아가며 7년간 모은 돈이 겨우 7000만원이에요.
적은 돈 아니죠. 악착같이 모았어요. 그렇지만 결혼하는데, 아니 집 마련하는 데는 어림도 없잖아요. 저축하는 원금 차이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시중은행 금리와 박대리 부모님이 주는 이자의 차이가 엄청난 거죠. 제가 100만원 저금할 때 박대리가 200만원 정도 저금 했거든요? 그럼 1억4000만원을 모았어야 하잖아요. 근데 박대리는 지난주에 7억원짜리 집을 턱 하니 사버렸어요. 대출도 없이. 1억4000만원을 7억원으로 돌려주는 상품이 어딨어요. 심지어 첫 계좌유치 기념으로 외제차도 서비스로 주는. 제겐 그런 '금수저 상품'에 가입할 기회가 없는 거죠. 제 자식들도.
정말 속상한 건요. 그런 문제가 절 불효자로 만들더라는 거예요. 부모님께 반항한 적은 많아도 원망해 본 적은 없었거든요. 결혼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별 수 없이 아쉬운 점이 생기더라구요. 못났죠. 죄송하고. 하필 그 박대리랑 결혼 준비기간이 겹쳐가지고. 휴."
영화 '빅 웨딩' 스틸컷/사진=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다음은 여성의 말이다.
"가정적인 것도 물론 중요하죠. 근데 저건 애초에 질문이 잘못되지 않았어요? 돈이 많고 바빠도 얼마든지 가정적인 부모님일 수 있죠. 표현의 진정성이라는 게 굳이 빈도로 정해지는 건 아니잖아요. 가난한 부모가 아이들 정서를 함양할 시간이 많다는 건 옛날 말이죠. 오히려 돈 있으면 아줌마 써서 집안일하고, 남편 돈으로 생활 유지되니 회사 안 가고 아이들이랑 시간 더 많이 보내죠. 당연히 아이를 위해서도 돈 많은 부모가 좋지 않아요? 돈이 없으면 아무리 부지런해도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순 없지만 경제적 사정이 넉넉할 경우에는 그게 가능하잖아요.
그리고 그 '가정적'이라는 걸 내세우는 시부모님을 만난 친구들이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아세요? 물론 너무 돈 많은 집에 시집가서 기 못 펴고 사는 애들도 있지만. 그래도 걔네들은 먹고 사는 걱정은 안하거든요. 가정적이기만 해서 쉴 틈 없이 신혼집 들여다보며 용돈 때문에 서운해 하는 시부모님들 보다는 차라리 돈 많고 무관심한 시부모님이 훨씬 낫죠."
영화 '빅 웨딩' 스틸컷/사진=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연애 및 결혼 시, 주변의 금수저들로 인해 좀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쪽이 남성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전국 결혼 및 출산 동향 조사에 따르면, 배우자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경제력'을 꼽은 응답자가 남성은 9.8%, 여성은 30.3%였다고 한다. 진화심리학에서 얘기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도 있다. 번식전략상 여성은 남성보다 배우자의 경제력에, 남성은 여성의 외모에 민감한 경향이 있단다. 그럼 이 악순환을 끊을 칼자루가 여성에게 있는 걸까?
그건 아니다. 십시일반해서 아름다운(실은 당연한 것임에도 아름답게 포장되는) 결혼을 치러 낸다 해도 금수저가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곧이어 닥칠 아이 양육의 관문은 어쩔 도리가 없다. 이를 위해선 여성들의 임금문제, 주택보급 문제 등 국가 차원의 거시적 노력이 우선해야 한다. 남녀 모두 신경써야 할 미시적 노력도 있다. 쉽게 눈에 띄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생명력까지 속단하진 말아야 한다는 거다. 눈에 띄기 쉬운 동산·부동산은 시장경제에 따라 가치를 달리한다. 반면에 사람의 가풍 및 견고한 가치관은 변하지 않는다.
금수저의 유무 자체보단 그것으로 밥을 먹여주는 부모님의 인격 및 가풍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동수저로 밥을 떠 먹여주는 부모님의 마음이, 그저 밥상에 금수저를 올려놓기만 한 부모의 마음보다 빛날 수도 있다는 것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절대적으로 좋은 건 없다. 금수저든 동수저든, 밥을 먹여주는 게 부모님이든 조부모님이든 혹은 가정부든. 자신과 맞는 환경을 찾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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