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사이에도 존재하는 갑과 을,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김정훈의 '없는 남자'-9] 연애온도 없는 남자 - 쿨과 핫의 관계, 갑을의 관계는 언제든 바뀐다
오프라인이고 온라인이고 남자들이 문제란다. 오프라인에선 소극적인 남자들을 향한 여성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온라인에선 남성들의 전투적인 악플이 연애와 사랑의 근간을 후벼판다. 왜 이렇게 까다로운지, 왜 그리 불만이 많은지. 결핍 있는 남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들춰주는 'OO 없는' 남자 이야기.
영화 '극적인 하룻밤' 스틸컷/사진=CGV 아트하우스
개봉을 앞둔 한 영화의 시사회 진행을 맡게 됐다. 꽤 재밌게 봤던 연극을 각색한 작품이라 반갑게 응했다. 심지어 남자주인공의 이름도 정훈. 나와 똑같은 이름을 한 그 주인공은 연애를 하는데 있어 을의 입장에 놓이는데 익숙한 인물이다. 그 외모를 갖고 어떻게 을이 될 수 있는지 아이러니 하지만, 사실 갑과 을의 입장에 놓이게 되는 건 외모나 능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긴 하다. 이유는 명백하다. 을의 입장을 즐길 수 있냐 없냐의 가치관 차이다.
"진정한 사랑의 개념을 완성하기위해 애쓰지 말고 연애의 즐거움부터 찾으세요."
필자가 강의에서 가끔 하는 말이다. 연애와 사랑의 차이는 정의내릴 수 없다. 하지만 연애를 즐기려는 사람과 사랑이란 개념에 닿으려 애쓰는 사람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보통 전자는 갑이 되고 후자는 을이 된다.
전자는 을이 되는 기분을 불편해 한다. 희생보단 즐거움을 택한다. 다소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을 뿐 이기적이란 평가는 섣부르다. 안정적인 연애란 두 사람이 하나의 길을 걷는 게 아니라는 것. 그래서 상대와의 적정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이 거리가 지나치게 좁혀져서, 상대가 내 행보의 즐거움을 방해 한다면 언제든지 내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러니 냉랭한 면모가 보일 수밖에 없다.
'진짜 사랑'을 쫓는 사람들은 다르다. 쿨(Cool)한 사람들이 '아님 말고'라는 가치를 우선시 여긴다면 이쪽은 '아닌 걸 되게 하려는' 열정으로 가득한 핫(Hot)한 사람들이다. 그 뜨거움으로 속을 태우는 연애를 감당하려 애쓴다. 고통 역시 사랑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래서 을이 되는 억울한 기분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기기도 한다. 진짜 사랑을 하고 있단 약물에 중독된 것처럼.
영화 '극적인 하룻밤' 스틸컷/사진=CGV 아트하우스
다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도 희생의 즐거움을 잃지 않으려 한다. 에너지가 부족하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모든 걸 연소시킬 수 있다. 고통에서 쾌락을 느끼는 일종의 마조히스트다. 혹은 새디스트일지도 모른다. 즐거운 연애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은 원래 아픈 거라는 가치관을 과도하게 주입시키고는 하니까. 당하는 쪽은 꽤 피곤하고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전자에 비해 후자들은 인기가 없다. 쿨한 온도는 어느 정도 맞추기 쉽지만 핫한 건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맞추기가 어렵다. 연애에 쏟는 에너지가 사람마다 다른 이상, 특히나 먹고살기도 바쁜 요즘엔 쿨한 사람들이 인기가 좋다. 강의를 듣기 위해 모인다거나, 골치 아픈 연애로 상담을 의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중에는 을의 연애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뜨거움을 유지하는 힘듦을 극복하는 게 진짜 사랑이 아니냐며 호소하는 그들에겐, 그래서 연애의 온도를 조금 낮추라고 조언 한다.
'진짜 사랑'과 '가짜 사랑'의 여부를 떠나서, 을의 연애를 즐기는 이들에겐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다. 본인이 을의 입장이 되어 느끼는 불안함을 극복하는 방법의 문제다. 상대의 노력에 대한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본인의 온도를 낮추는 대신 오히려 더 뜨거운 노력을 한다는 점이다. 그럴수록 갑과 을의 양극화는 더 심해진다. 본인은 견딜 수 있는 온도라 해도 상대방은 그걸 견딜 수 없어 이별을 겪기도 한다.
영화 '극적인 하룻밤' 스틸컷/사진=CGV 아트하우스
그럼 쿨한 사람은 쿨한 사람끼리, 핫한 사람은 핫한 사람끼리 만나야 행복한 걸까?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갑을의 저울은 애초에 평행을 이루기가 힘들다. 갑과 갑, 을과 을이 만나면 그 안에서 새로운 갑과 을이 생겨난다. 욕망을 가진 사람 두 명이 함께 하며 그 욕망들이 충돌하는 이상 갑을이 나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심지어 쿨과 쿨이 만나면 단순한 '엔조이(enjoy)' 관계, 혹은 지나치게 계산적인 연인이 될 확률이 있다. 어느 정도의 희생은 분명한 사랑의 조건인 법이다. 핫과 핫이 만나도 좋을 건 없다. 순식간에 경쟁하듯 뜨거움을 폭발시키다가, 더 연소시킬 것이 없을 땐 결국 그동안 쌓아온 감정까지 태워 버린다. 사랑을 위해 사랑을 연소시키는 다소 우스꽝스런 싸움이 잦아지다가 결국 짧고 굵은 만남으로 마무리 되고는 한다.
그러니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과 온도의 차이가 있다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뜨거움과 냉정함이 섞여야 상온을 맞출 수 있지 않나. 그리고 자신이 가진 쿨함과 핫함의 장단점이 드러날 수 있는 건 상대의 온도가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갑은 을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을은 조금만 여유를 갖자. 본인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미래의 틀에 상대를 맞추려는 노력 대신, 상대와 함께 현재를 즐기며 감정을 차근히 쌓는 노력을 하자. 그래야 갑을의 관계가 엎치락뒤치락 거리는 연애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영화 '극적인 하룻밤' 스틸컷/사진=CGV 아트하우스
어차피 인간은 변온동물이다. 쿨핫의 관계, 갑을의 관계는 언제든 바뀐다. 첫 만남에서 갑을이 나뉘어 버렸다고 해도 스킨십 이후에 갑을의 권력이 바뀌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혼을 앞두고, 혹은 결혼 후에 비로소 권력관계의 재정비가 이뤄지기도 한다. 그럼 현재의 당신은 갑일까 을일까. 여기 연애 갑을관계를 판단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공개할테니 재미삼아 해 보길.
☞ 연애 '갑을관계' 체크리스트
□ 전 애인의 결혼 or 연애 소식에 눈물 쏟은 적 있다.
□ 연인이 보고 싶어 한다면 할 일이 많더라도 만나는 게 옳다.
□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용기 내어 고백 못한 적 있다.
□ 썸 탈 때는 편한데, 상대방이 고백하면 부담스럽다.
□ 문자를 보낸 뒤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이 때론 초조하다.
□ 상처받을까 두려워 사랑을 포기한 적 있다.
□ 연인에게 이것 좀 해달라는 부탁을 잘 하지 못한다.
□ 연인이 갖고 싶은 건 무리를 해서라도 사주고 싶다.
1개 이하: 사랑도 리드하는 진정한 승자. 당신은 연애 '갑'
2~3개: 밀당도 필요해요. 연애 '을' 초기 증상 의심
4~5개: 주의하세요! 연애 '을' 적색 경보 발령
6~8개: 울지 말아요. 처절한 노예인 당신은 슈퍼 연애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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