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 쓰레기더미 집, 마을의 소통 공간으로 바뀐 사연

Style M  |  2015.12.18 03:12  |  조회 1134

[김은혜의 노닐다-1] 인천 금곡동 '조흥상회' 이야기


익숙했던 것들에서 낯선 무언가를 보거나, 낯선 곳에서 익숙한 것을 발견하기 위해 이곳저곳 방방곡곡을 노닐다.


/사진제공=김은혜 칼럼니스트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그랬다. 젊음, 청춘, 트렌드와 같은 단어는 나와는 거리가 멀다. 새로운 공간보다는 낡고 오래된 공간에 눈길이 가고 넓게 쭉 뻗은 도심의 거리보다는 골목이 좋다. 음식도 새로 생긴 맛집보다는 적어도 20년은 훌쩍 넘어 뵈는 노포에서 먹는 걸 즐긴다. 그런데 이런 오래된 것들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국내의 곳곳으로 훌쩍 떠나곤 한다. 낯선 곳에 있는 익숙한 것들을 찾기 위해.


인천은 이런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완벽한 도시 중 하나다. 특히 동인천이라 불리는 곳은 더욱 그렇다. 인천의 첫 번째 중심이었을 이곳에는 아직까지도 오래된 공간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 중에 눈길 가는 곳이 바로 배다리다.


1호선 동인천역과 도원역 사이에는 전철이 지나는 철교가 하나 있는데 그 오른편에 자리 잡은 지역이 속칭 '배다리'라는 지역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가 경인선인 만큼 그 역사와 맥을 같이 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개항 이후 몰려온 일본인들의 요구로 제물포 해안에 개항장이 조성되면서 그곳에서 밀려난 조선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배다리 일대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커다란 시장이 형성되어 매일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사진제공=김은혜 칼럼니스트


왕년에 잘나갔던 배다리는 화려한 과거를 감춘 채 조용한 삶을 살고 있다. 인천 사람들에게 배다리는 아무래도 헌책방골목으로 많이 기억될 것이다. 나 역시 어릴 적 참고서를 사기 위해 배다리의 헌책방 골목을 엄마와 함께 돌아다녔기도 했으므로. 그러나 현재는 문을 닫은 헌책방이 많다. 휑해진 골목이 아쉽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씩 생기가 느껴진다. 그 중심에 바로 '조흥상회'가 있었다.


배다리의 입구에는 민트색 일본식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곳이 바로 조흥상회다. 내걸린 간판만 해도 다섯 개가 넘는 복잡 미묘한 이 100평짜리 공간에 들어가 보니, 한명의 여인과 다섯 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었다. 이곳은 무엇을 하는 곳이며 왜 여기에 살고 있는 것일까.


조흥상회는 1920~1930년에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 찍은 사진에도 등장할 만큼 오래된 건물이다. 참고로 지금과는 건물양식이 다르며, 6.25때는 폭격을 맞아서 골격만 둔 채 다른 모습의 건물로 변화했고, 그 후로도 몇 차례 건물 모양이 바뀌었다고 한다.


조흥상회는 당시 제수 용품을 파는 곳이었다. 조흥상회의 아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자신이 어렸을 때에는 거실에 상들이 쭉 펼쳐져 있었고, 거기에 음식을 차려놓고 지방에서 납품을 하려고 온 사람들을 대접을 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다고 한다. 이 집이 곧 배다리의 지주가 살던 집이었던 것이다.


그런 곳이 집안의 몰락과 함께 아무도 살지 않는 쓰레기더미 집이 되었다. 현재 이곳의 주인인 청산별곡(본명 권은숙)이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코를 막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온갖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둘러보다보니 쓰레기 대신 일본식 천정이나 가구, 소품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녀는 이 오래되고 낡은 공간과 물건들에 다시 숨을 불어 넣어주기로 결심한다.


/사진제공=김은혜 칼럼니스트


지금 조흥상회 건물에는 다양한 가게들이 열려있다. 책방부터 뜨개공방, 북카페, 게스트하우스, 유기농가게, 그리고 이 집에서 나온 물품들을 모아 만든 생활사전시관까지 모두 청산씨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환경단체의 활동가이기도 한 그녀는 배다리라는 오래된 지역을 활성화시키고 싶어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저는 틀에 갇히는 게 싫어요. 좀 더디지만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보고 싶어요. 혼자 있으면서도 계속 생각을 해요. 이렇게 하면 재밌겠다 저렇게 하면 재밌겠다. 또 혼자 하니까 결단도 빨라요.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탁자위치도 어제 새로 바꾼 거예요. 흘러야 하잖아요. 고이면 안돼요."


/사진제공=김은혜 칼럼니스트


계속 흘러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상회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한다. 사실 여느 지역의 구도심에 가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상회는 주로 오래되고 낡은 느낌이다. 수십 년을 같은 장소를 지켜온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만큼 상회가 가진 역할도 다양했다. 쌀을 파는 곳부터 전파상, 잡화슈퍼까지 그 상품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마을의 접합점, 소통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 역할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적어도 배다리 조흥상회에서는 말이다.


방치된 공간, 오래된 공간을 다시보고 살리는 것. 지속적으로 변화를 주는 것. 느리지만 하고 싶은 것에 계속 도전해보는 것. 약간은 피곤하지만 재미있는 그녀의 삶 속에서 '상회'라는 뒤쳐진 공간에도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이 세상에 남은 오랜 것들이 고이지 않고 계속 흐르는 것이길. 썩지 않고 손 때 묻은 정겨운 것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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