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50…신영극장 앞에서 만나요"

Style M  |  2016.02.21 04:02  |  조회 1189

[김은혜의 노닐다-8] 신영극장·객사사거리·봉봉방앗간…강원도 강릉 시내를 노닐다


익숙했던 것들에서 낯선 무언가를 보거나 낯선 곳에서 익숙한 것을 발견하기 위해 여기저기 방방곡곡을 노닐다.


"신영극장 앞에서 만나요 ."


겨울의 끝 무렵, 나는 지인을 만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향했다. 강릉 시내는 이번이 처음이다. 정동진이나 오죽헌, 안목해변, 사천해변 정도가 그동안 내가 알던 강릉의 전부였다. 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잡아타고 기사님께 목적지를 말씀 드렸다. "신영극장이 유명한가요?" 여쭈었더니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신영극장은 과거 만남의 장소로 유명했다며 친절히 답해주셨다.


/사진=신영극장 홈페이지


신영극장은 195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극장이다. 택시 기사님 말씀대로 신영극장은 강릉시민에겐 특별한 장소다. 영화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공간이 바로 신영극장이었다. 몇 해 전 대기업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겨나면서 신영극장은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전화위복으로 현재는 다양성 영화를 상영하는 독립영화관으로 제2의 길을 걷고 있었다. 옛날의 극장을 떠올리게 하는 곳곳의 흔적들은 더욱 추억에 젖게 만들었다.


신영극장이 있는 곳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객사사거리가 있다. 며칠 전 눈이 많이 내렸는지 인도 곳곳에는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사거리의 건너편에는 대도호부 관아와 객사문, 칠사당이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객사는 전북의 전주에서도 한 번 본 적이 있던 터라 조금 낯익었다. 객사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각 고을에 설치했던 관사로, 강릉의 객사는 고려 태조 때 세워졌다. 특히 임영관 객사문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역사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도심에 위치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방문이 많지는 않은 지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수북히 그대로 쌓여 있는 모습이었다.


/사진제공=김은혜 칼럼니스트


궁궐이나 전통 가옥같은 역사적인 장소에 오면 이상하게 발걸음이 느려진다. 나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대도호부 관아 내부를 천천히 혼자 거닐었다. 그러다 칠사당에서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는데, 깨끗하게 복원된 관아의 다른 건물과 달리 칠사당은 옛 흔적이 느껴지는 나무의 결을 그대로 품고 있어서였다. 나는 잠시 동안 칠사당 앞에 서서 그곳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관아의 건너편으로 가니 작은 동네가 보였다. 단오와 관련된 벽화들이 마을 곳곳에 그려져 있어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이 마을의 정확한 명칭이 바로 명주동이다. 명주동은 건너편의 객사와 더불어 고려시대 건축물부터 일제강점기 시절 지어진 일본식 가옥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 많은 곳이다. 골목마다 그려진 벽화와 배려있게 놓인 벤치, 아기자기하게 놓인 꽃 화분은 명주동의 인상을 한껏 더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사진제공=김은혜 칼럼니스트


그러다 나는 봉봉방앗간이라는 특이한 건물 앞을 지나게 되었다. 방앗간이라는 이름과 다르게 이 곳은 카페 겸 문화공간이었다. 실제로 과거에는 문화방앗간이라는 이름의 방앗간이었지만 몇 해 전 이 건물을 사들여 카페와 갤러리 등 강릉시민들이 소통하는 공간으로 변화했다. 건물 구조를 포함해 내부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오래된 흔적 들은 되레 그 멋을 더 살려주고 있었다. 더불어 직원분이 친절하게 핸드드립으로 내려주신 커피는 강릉의 짧은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충분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연히 SNS를 통해서 아까 들렀던 신영극장이 이번 달 말을 기점으로 일시적 휴관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어느 지역보다 자연스럽게 옛것을 보존하고 있는 인상을 받았던 터라 아쉬움이 더욱 크게 밀려왔다. 여전히 그랬었던 것처럼, 오랜 쉼 후에도 오랫동안 강릉 시민들 곁에 머물러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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