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남자들의 고민, "난 왜 한 번밖에 안될까?"

Style M  |  2014.11.16 10:11  |  조회 696

[김정훈의 썸②]사랑에 관한 발칙한 고백


썸. 묘한 단어가 등장했다. 짜릿한 흥분과 극도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롤러코스터 마냥, 탈까 말까 망설여지기도 하고. 간질간질. 정체를 알 수 없는 간지러움에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랑만큼 떨리지만 이별보다 허무한 '썸'.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썸'에 대한 연애칼럼니스트 김정훈의 토킹 릴레이.


/사진=HBO


생각해 보면 '1'이라는 숫자는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혀 왔던 것 같다. '한' 문제라도 더 맞추기 위해 많은 문제집을 풀어야 했던 학창시절을 보내고 나니 '일'에 치여 살아가는 직장인이 됐다. 메시지를 보낸 지 반나절이 지나도록 없어지지 않는, 카톡창 숫자 1은 왜 그리도 거슬리는지. 참, 언젠가 30대 초반의 남자 여섯이 모인 술자리의 주제는 이거였다. 왜 우리는 '한 번' 밖에 할 수 없게 됐을까?

"한 번이라도 하면 좋은 거지. 난 여자 친구랑 안한 지 6개월이 넘었는데?"
"너 사귄 지 4년 넘지 않았어? 가족이랑 하면 근친상간이야."
"야동은 업데이트하고 있는데 여친이랑은 못하겠다."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던 한 녀석이 꺼낸 건 발기부전치료제. 그 조그마한 알약의 등장만으로도 남자들의 아드레날린이 분비됐다. 곧이어 누가 그걸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설전이 벌어졌다. 최근 여자 친구의 사랑이 식은 것 같다며 만회해야 한다는 후보1, 며칠 전 크게 싸웠는데 화해가 덜 된 것 같다는 후보2, 조만간 있을지도 모를 '썸녀'와의 첫날밤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고 싶다는 후보3. 그 때 구석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던 나머지 녀석이 말을 꺼냈다.

"여자 친구랑 자는데 굳이 그게 필요하냐? 난 아직 팔팔한데."

그 자신감의 원천이 굳건한 사랑인지 뛰어난 체력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속궁합이 대단히 잘 맞는다는 말로 일축하겠다. 어쨌든 그와 같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30대 남자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걱정거리 중 하나가 바로 섹스의 횟수다. 걱정이라기보단 한탄이 맞겠다. 아~ 여자 향수냄새만 맡아도 몇 번이고 불끈거리던 20대가 있었는데!

'한 번 더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여자들의 대화에서도 많이 등장 한다. 하지만 그녀들이 한 번 더 하고 싶은 건 섹스가 아닌 사랑이다(아닌 경우도 있지만). 물론 남자들이라고 사랑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자극에 무뎌진 남자들에게 있어 섹스의 횟수는 대단히 중요한 화두다. '섹스를 사랑으로 하는 거지 자극으로 하는 거야?'라는 말은 접어두자. 침대까지 올라가기 위한 과정에선 감정이 중요하다고 해도, 침대 위 절정의 순간에 그 감정이 얼마나 개입되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의미에서 섹스를 만들어 내는 요소는 두 가지로 일축된다. 지금껏 쌓아온 사랑의 감정(A), 그리고 즐기고 싶은 현재의 자극(B)이다. 때와 장소, 개인에 따라 두 기능은 적절히 배합된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A의 비중을 높게 두려 하고 남자들은 B의 비중을 높게 둔다. B의 비중을 높게 두는 여자도 많다. 사실 이러한 구분의 기준을 굳이 남녀차이로 단정 짓는 건 말이 안 된다. 자극의 역치는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달라질 뿐 성별차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이같은 일반화는 오히려 여성들의 욕망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원인이 된다. 이건 마치, 여성들이 몸매관리나 다이어트에 더 신경을 쓴다 해서 남성보다 식탐이 덜 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과 같다. 이처럼 멍청한 생각이 어디 있을까? 성(性-본능)스럽고, 성(聲-음성)스럽고, 성(誠-정성)스러운 섹스에 대한 욕망은 터부시 하고, 신성한 섹스만이 전부라고 강조하는 성녀(聖女-holy woman)들을 양산해낸다. 남자들은 섹스를 할 장소를 찾지만 여자는 구실을 찾는다는 농담은 그래서 마냥 웃을 수 없는 난제다.

그럼 본론으로 돌아와서, 남자들이 한 알의 약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뭘까? TV에 출연했던 어느 박사의 말처럼, 어린 남자는 그 힘이 아랫도리에 모여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입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인걸까? 물론 노쇠에 따라 생물학적으로 성기능이 약화되는 건 당연하다. 요지는 남성들이라고 단순히 한 번의 사정을 더 하기 위해 알약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란 거다. 그들의 목표 역시 그녀들과 마찬가지다. 한 번의 사랑을 더 하고 싶은 것뿐이다. 그들이 확인하려는 건 자신의 쾌감이 아니다. 함께하는 사람의 만족이다. 그래서 오래된 연인일수록 잠자리에 대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감정적 요소를 평소 충분히 채웠다고 해서 침대에서까지 그것의 힘만 맹신해선 안 된다. 자극을 위한 노력은 전혀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것 또한 사랑이니까.

'자신의 남성다움을 어필하려는 것이 어떻게 여자를 위한 거야?'라고 되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그건 누군가를 도와줬을 때의 마음이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를 묻는 것과 같다. 단, 남자들이 분명히 명심할 건 있다. 한 알의 알약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한다는 한마디의 말이나 진심어린 포옹이라는 것을.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있다 해도, 요령이나 스킬이 아닌 진심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어쨌거나 그날 술자리에 등장했던 알약은 결국 누구의 입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자기가 아직 팔팔하다던 그 녀석의 말이 끝나자, 갑자기 돌변한 수컷들의 능력(?) 자랑 릴레이가 시작했다. 늘어나기 시작한 술병 근처 어딘가에 놓여 있던 알약은 결국 행방이 묘연해졌다. 굳이 그걸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약을 꺼낼 때부터 우리를 주시하고 있던 주인아저씨가 요긴하게 썼을 거란 생각이 든다. 다음 방문에 번데기탕을 서비스로 준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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