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는 하는데…" 30대男 고백 안하는 이유?
[김정훈의 썸③]매력 넘치는 그, 초식남 아닌 편식남?
썸. 묘한 단어가 등장했다. 짜릿한 흥분과 극도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롤러코스터 마냥, 탈까 말까 망설여지기도 하고. 간질 간질. 정체를 알 수 없는 간지러움에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랑만큼 떨리지만 이별보다 허무한 '썸'.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썸'에 대한 연애칼럼니스트 김정훈의 토킹 릴레이.
/사진=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스틸컷
나는 당근이 싫다. 그렇다고 김밥 속 작은 당근까지 골라내진 않는다. 카레에 들어 있는 익힌 당근은 또 맛있게 먹는다. 정정하자면, '생'당근을 '많이' 먹는 걸 싫어할 뿐이다. 남들에겐 편식을 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사실은 꽤 까다로운 편식습관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먹으라면 먹을 수 있다. 굳이 먹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다. 이것이 성인의 편식이다. 좋아하는 것만 골라 먹는 게 아이들의 편식이라면, 싫어하는 걸 거부하는 게 성인의 편식이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이 좋아' 보다는 '이런 사람만 아니면 좋겠다'는 요구가 늘어난다. 이런 편식은 이성을 꽤 만나본 30대 초중반의 남녀들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특히, 제법 괜찮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 소개팅 시장에서 인기 있는 남자들이 그렇다. 이렇게 이성을 판단하는 기준들이 지나치게 많은 남자, 그래서 사랑을 시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남자들을 나는 편식남이라고 부른다.
편식남은 초식남과 다르다. '이성'을 위해 돈을 쓰는 것보단 개인적 삶을 영위 하는 편이 낫다는 게 초식남이라면, '당신 정도의 이성'에게 돈과 시간을 쓰기 싫단 것이 편식남의 생각이다. 연애나 사랑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그것에 대한 기준이 상상이상으로 까다롭다. 당근이 싫은 게 아니라 '생'당근을 '많이' 먹는 게 싫을 뿐이라는 것과 같이, 명확하고 구체적인 기준들을 갖고 있다.
"30대 남자들은 왜 20대 남자들과 다르죠?"라고 질문하는 여성들이 많다. 그녀들이 궁금해 하는 남자들, 그러니까 적극적이지 않고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며, 능력 있지만 너무 바빠 만날 시간이 없고, 부지불식간에 이별을 통보하는 등의 행동을 보이는 남자들은 편식남일 확률이 높다. 친한 동생 L도 그렇다. L의 외모는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훈훈하고 평균이상의 연봉을 주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닌다. 다양한 만남, 뜨거운 사랑과 차가운 이별도 겪어봤다. 연락하는 여자들은 있으나 정착할 사람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다. 며칠 전 L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나 오늘 소개팅 취소하고 작업할 거 들고 카페 오는데. 아 진짜 햄버거 같은 길거리 음식이 너무 먹고 싶은 거야. 근데 요즘 살쪄서 게을러 보이기도하고 셔츠발도 무지 안 받더라고. 수많은 정크 푸드의 유혹을 뿌리치고 결국 카페 와서 샐러드 하나만 먹었다니까. 내 옆에 여자들은 샐러드에 빵까지 시켜서 엄청 먹고 있는데! 아, 내가 뭘 위해 이러고 있는 건지"
다음 날 우린 술을 꽤 마셨고, 타코와 햄버거로 해장까지 했다. '샐러드만 먹는다더니 뭐야' 하고 코웃음 칠지 모르겠으나, 이건 편식남들의 대표적 행동 중 하나다. 위의 통화 내용을 보며 이미 편식남의 특징을 읽어낸 사람도 있을 거다. 그래도 여전히 갸우뚱거릴 독자들을 위해 편식남에 대한 상세 설명을 첨부한다.
▶편식남의 특징
1.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스펙을 갖췄다. 어느 하나가 대단히 뛰어나기보단 골고루 평균이상인 경우가 많다. 이런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인기가 많아진다.
2. 자신의 매력 포인트를 분명히 인지하고 활용할 줄 안다. 그래서 여유가 있다. 관계의 우위를 점유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아님 말고'라는 마인드를 늘 갖고 있다.
3. 계획적이고 자기 관리가 뛰어나다. 마찬가지로 자기관리가 철저한 여자를 좋아한다. 수술로 이목구비를 바꾸려는 여자보단 꾸준한 운동으로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는 여자가 낫다고 여긴다. 예쁘기만 하면 좋다는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저 육체적, 감정적 엔조이의 대상으로 여길 확률이 높다.
4. 아는 여자가 많다. 경험도 많다. 숱한 만남과 이별을 통해 기준을 확고히 다져왔다. 기준에 어긋나는 상대와 연락을 끊는 일엔 무척 익숙하다. 그러니 이별이 어려워 만남을 걱정하진 않는다. 귀찮긴 하겠지만.
5. 그저 즐기기 위해서 여자를 만나는 게 아니다. 사랑할 사람, 결혼할만한 사람을 찾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거다. 이러한 편식남들의 불안한 심리상태는 개의치 않고, 안정적인 스펙에만 관심을 가지는 여자들이 꽤 많다. 그래서 여자가 뻔히 보이고 그 판단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래도 신중을 기해야 한단 생각에, 뜨겁거나 차가운 상태보단 쿨한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다.
6. 바쁘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므로 처리해야 할 일과 미뤄도 되는 일, 만나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경계가 명확하다. 합리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7. 이별의 아픔이나 허무함과 같은 깊은 트라우마가 있다. 예전처럼 뜨거운 감정을 불러일으킬 여자를 찾고 있지만, 감정적으로 깊게 빠지게 될 경우를 늘 염려한다. 그래서 '이 여자다!'라는 완벽한 탐색이 이뤄지기 전까진 다가가지 않는다.
8. 어른의 편식이 아이의 편식으로 바뀔 때가 있다. 엄격하고 복잡한 기준 대신, 자극에 이끌려 닥치는 대로 여자를 만난다. 대부분 술이 문제다. '아무리 예뻐도 성형하면 안돼!' 라고 외치던 그가 '예쁘면 일단 좋다!'는 상태가 된다. 감정을 줄 것 같은 여지를 주는 것은 물론 달콤한 스킨십도 서슴없이 한다. 이때의 편식남은 폭식남으로 변한다.
9. 폭식기와 편식기는 시즌제로 반복된다.
10. 외롭고 불안하다. 그래서 연애는 하지 않더라도 스킨십은 한다. 모든 게 불확실하지만 스킨십의 교감과 즐거움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30대 남자들 중엔 이런 편식남 밖에 없는지? 지금 썸남이 편식남이라면? 짜증은 나지만 그를 내 남자로 만들고 싶다면? '편식남 사용설명서'는 다음 주를 기대하시라.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