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친, 늦은 밤 "잘지내?" 문자에 女 반응은…
[김정훈의 썸⑦] 이별방식과 그 후… '예의'에 대하여
썸. 묘한 단어가 등장했다. 짜릿한 흥분과 극도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롤러코스터 마냥, 탈까 말까 망설여지기도 하고. 간질 간질. 정체를 알 수 없는 간지러움에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랑만큼 떨리지만 이별보다 허무한 '썸'. 그리고 편식남 편식녀를 비롯한 그 밖의 다양한 '썸'에 대한 연애칼럼니스트 김정훈의 토킹 릴레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내 손바닥엔 흉터가 하나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방학이 시작되던 날, 다과회를 하다 생긴 상처다. 평소 손금에 가려 보이지 않던 흉터가 가끔 눈에 띄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상처가 나던 날 풍경이 생생히 떠오른다. 일회용접시에 가득 차 있던 후렌치파이, 빅파이, 새우깡. 교실 한 가운데서 요상한 춤을 추고 있던 짝꿍. 달달한 귤 알갱이가 씹히던 쌕쌕 음료수까지. 바로 그 쌕쌕캔을 따려다가 난 상처였다. 피가 꽤 많이 났었지만 병원에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난 남자니까. 흉터가 생긴다 해도 뭐 어때! 그것도 손바닥인데.
남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상처를 방치해 흉터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 여자는 다르다. 되도록 흉터를 남기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런 태도의 차이는 이별 후 보이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현재 여자 친구가 있으면서도 전 여자친구에게 '잘 지내? 그냥 문득 생각나서'라고 연락하는 남자. 새 연인이 생기면 옛 연인과의 감정이 놀랄 만큼 깨끗이 정리되는 여자.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매정하다 말하고, 여자들은 남자들의 찌질함에 혀를 내두른다.
대수롭지 않게 놔둔 흉터가 눈에 띄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생생한 예전의 기억을 더듬다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뭘 찾고 싶은지도 모른 채 쓰레기통을 마구 헤집다가 더럽고 초라해진 모습을 마주한다든지, 높은 책장 깊숙이 숨겨놓은 앨범을 억지로 꺼내려다 우당탕 넘어지기도 한다. 그런 날엔 참 많이 아프다.
그 애틋함은 안타까울 수는 있지만 사실 그건 무례하고 무책임한 행동이다. 사랑을 할 때도 예의가 중요하듯 이별 과정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사랑을 약속하는 순간의 책임감보다, 이별을 결정할 때의 책임감이 더 무거울지도 모른다. 연인의 일상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는 것이 사랑에 대한 의리라면, 더 이상 관심 갖지 않겠다는 결정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 바로 이별에 대한 의리다.
하지만 세상에는 무례하고 무책임하며, 의리 따윈 당연히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다. 그리고 그들 중엔 애초에 이별방식부터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다. 상대방이 받을 상처와 흉터 따윈 안중에도 없는, 그들의 싸가지 없는 이별 방식을 재미로 나눠봤다.
- 책임전가형
아마도 가장 많은 형태가 아닐까 싶다. 이별의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한다. 헤어지자고 말할 자신이 없다든지,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기 귀찮아서다. 그래서 이별을 결심한다고 해도 상대의 잘못이 드러날 때까지 그 통보의 순간을 유보한다. 이런 남자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여자들이 꽤 많다.
그 과정은 이렇다. 연락이 뜸해지고 만남이 줄어드는 등 서서히 관계에서 발을 빼기 시작한다. 물론 개인적인 스케줄을 핑계 삼는다. 그리고 당신의 실수만을 기다리며 잔뜩 예민한 상태가 된다. 시비를 걸 수 있는 모든 것에 시비를 건다. 싸움은 잦지만 사랑의 확인은 줄게 된다. 그의 심리 상태가 너무 궁금한 당신은 점점 안달이 난다. 결국 그에게 관심을 구걸하고, 그의 태도를 나무라는 일이 발생한다.
드디어 그의 반격이 시작된다. 당신은 남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을 해달라고 졸라대기만 하는 피곤한 여자가 되어 버린다. 구실은 충분해졌다. 결국 당신은 "네가 이러니까 우리는 헤어질 수밖에 없는 거야"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것과 비슷한 이별 과정을 겪었다면 더 이상 죄책감에 괴로워 할 필요 없다. 당신이 아닌 그의 잘못이 확실하기 때문 이다.
-자학형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 강조하며 상대방에게 이별을 권유한다. 책임전가형과 비슷하지만, 상대방이 아닌 스스로의 이미지를 억지로 깎아내려 이별의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SNS형
SNS상에서 맺을 수 있는 관계의 특징이 있다. 친구가 되는 건 동의가 필요하지만 끊는 건 혼자서도 가능하다. 싸이월드 일촌부터 네이버 이웃, 페이스북 친구까지 모든 SNS가 그렇다. 함께 시작한 사랑임에도 이별은 혼자서 하는 사람들의 이별 방식을 SNS형이라 하고 싶다. 자기 혼자 감정정리를 다 끝낸 뒤 상대에겐 일방적으로 통보만 한다. 심지어 그 통보를 메시지 하나로 해결해버리는 사람도 많다. 그보다 더 심한 사람은, 그렇게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일련의 과정을 SNS에 표현하기도 한다.
-디졸브형
책임전가형 이별로 상처받는 여자들이 많다면, 남자들은 디졸브형 이별방식을 선택하는 여자들로 인해 배신감을 느낄 때가 있다. 이미 헤어지기로 마음먹었으면서 다른 괜찮은 남자가 생긴 다음에야 비로소 이별을 통보하는 여자들이 의외로 많다. 아직은 연인이지만 곧 헤어질 거라는 합리화에 소개팅을 하고, 술자리에서의 새로운 만남 역시 거부하지 않는다. 어딘가로 흘려보내는지 모르지만 현재 남자친구가 주는 사랑 또한 일단 받아 둔다. 안정을 추구하려는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지나치게 이기적인 행동이다. 새 신발 사러갈 때 맨발로 가지 않지만 말이다.
-고지서형
여태까지 준 걸 다 회수하려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내가 잘했니, 네가 잘했니 하는 논공행상을 펼치기도 한다. 당신이 아무리 일방적인 사랑을 했다고 해도, 이별을 결정한 뒤에 그것들을 보상받으려는건 최악이다. 당신 역시 사랑을 줄 때 기쁨을 느꼈을 테고, 그 기쁨을 상대방에게 다시 토해낼 순 없으니까.
-자아도취형
이들은 사람과 사랑에 대한 슬픔 대신, 이별의 상황 그 자체에 대한 슬픔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굳이 이별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지금도 사랑하지만 우리는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로 상대방을 괴롭힌다. 비극적인 영화 속 주인공의 눈물과, 그 영화를 보면서 흘리는 관객의 눈물은 분명히 다르다.
이밖에 무작정 잠수해 버리는 '잠수부형', 이별하자 했다가 금방 후회하길 번복하는 '3분요리형' 등 사람들이 이별하는 방식은 참 다양하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심플하게 이별하는 사람들이 제일 무서운 것 같다. 앞서 말한 방식들은 응어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일 뿐, 이별의 중압감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헤어지자' 말 한마디로 단칼에 끝내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정에 흔들림이 없다.
다음 주부터는 꽤 재미있는 기획을 준비했다. 이름 하여 '호남호녀' 특집이다. 좋은 남자 좋은 여자가 아니다. '호구남', '호구녀'들의 사연이다. 자신이 겪은 상스러운 인간에게 복수하고 싶다면, 페이스북 사랑전과 페이지(http://www.facebook.com/heyfireatwill)를 방문해 메시지를 보내시라. 물론 비공개로 재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