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팅에 나간 男 4명, 최악의 '호구'는 누구일까?
[김정훈의 썸⑧]호구남녀 vol.1 - 건강한 미팅문화 정착에 대하여
썸. 묘한 단어가 등장했다. 짜릿한 흥분과 극도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롤러코스터 마냥, 탈까 말까 망설여지기도 하고. 간질 간질. 정체를 알 수 없는 간지러움에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랑만큼 떨리지만 이별보다 허무한 '썸'. 그리고 편식남 편식녀를 비롯한 그 밖의 다양한 '썸'에 대한 연애칼럼니스트 김정훈의 토킹 릴레이.
영화 '행오버2' 스틸컷/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앵커 : 이번주 호구주의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미팅 현장 연결해주세요.
"저흰 소주는 못 먹어요. 사케 먹으면 안돼요?"
이 때 그들은 짐작했어야 했다. 미팅의 비극적인 결말을. 오늘 같은 날엔 '아빠 힘내요!(간바레 오또상)'가 딱 이라는 여자2의 해맑은 웃음을 남자들은 외면할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여자2는 몸매가 예술 그 자체였다. 사케 먹으면 딱 놀기 좋게 취한다는 그녀의 말에 남자들의 망설임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 사케 한 두 팩 먹고 재밌게 놀 수 있다면야!
그때였다. "그냥 소주 먹자. 사케는 머리 아프잖아"라는 여자1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들은 동시에, '오, 개념 있는데?'라는 반가움의 시선을 던졌다. 눈에 띄는 외모는 아니지만 그녀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 하는 순간이었다. 토닉워터를 섞으면 소주도 얼마든지 마실 수 있다는 여자1의 말에 물개박수를 치는 남자들. '난 소주 잘 마시는 여자가 좋더라', '그래 소주도 마실 줄 알아야지'라는 말들로 그녀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고 있을 때쯤 여자3이 말했다.
"그럼 우리 일본소주 먹어요. 원래 토닉워터엔 비잔클리어가 짱이잖아요!"
'블라인드 테스트 해볼래? 토닉 섞었을 때 소주랑 구분할 수 있어?'라고 물어볼 남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오랜만의 미팅을 망치기 싫어서다. 리액션이 좋은 여자1과 나이스 한 몸매의 여자2, 일본으로 보내버리고 싶지만 웃는 모습이 귀여운 여자3 정도면 성공적인 미팅이라는 사실에 남자들 모두 동의를 하고 있었다. 남자2·3은 외국 술을 즐겨 드신다는 여자2·3의 장단을 맞춰가며 일찌감치 파트너십을 맺었다. 여자1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한 남자1은, 미팅인지 소개팅인지 모르는 분위기를 형성해 버렸다.
문제는 여자4였다. 사진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짐작케 하는 외모의 여자4를 남자4가 감당하기 싫어한 것이다. 남자4는 이쪽저쪽 대화에 끼어들며 여자4를 외롭게 만들었다. 결국 남자1과의 대화를 멈춘 여자1이 여자4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자1·4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남자2·3을 보며 쓴 소주잔을 주고받아야만 했다.
그때 남자1은 깨달았다. 이 밤의 끝을 잡고 여자1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여자4를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 밸런스를 맞추는 것에 능숙치 못한 남자1. 여자4와 파트너가 될 위기에 처해버렸다. 자연스레 가까워진 남자4와 여자1을 보며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 생각한 남자1이 말했다. "이제 2차 갑시다!"
여자들 중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싶다 말했다. 남자들은 술을 더 마시고 싶었다.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지자 여자4가 제안했다. "그럼 가라오케 가면 되겠다!" 남자들은 잠시 망설였지만, "가라오케 가면 게임도 하고 놀기 좋잖아요"라는 여자2·3의 부가설명에 콜을 외쳤다. 그 후 가라오케에서 벌어진 상황은 이랬다. 여자1은 게임을 주도하여 남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얻었고, 소주가 쓰다며 못 먹던 여자2·3은 샷!샷!샷!을 외치며 보드카를 연거푸 마셔댔다.
여자4는 화끈한 왕게임을 기대한 남자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처음 본 남자랑 어떻게 뽀뽀를 하냐며 게임을 거부했고, 분위기는 싸늘해져갔다. 남자1은 그런 분위기는 아랑곳 않고 어떻게든 여자1과 가까워지려 애썼다. 하지만 미팅을 즐기고 싶은 여자1과 진정성을 어필하고 싶은 남자1의 마음은 상충됐다. 그는 일단 그녀의 번호를 받는 걸로 만족했다.
재미있는 건 언젠가부터 여자4와 남자4가 손을 꼭 잡고 있었단 사실이다. 종잡을 수 없는 그들의 행동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해장국을 먹으러 가자는 의견이 나왔고, 일행은 자리를 정리했다.
2차의 계산은, 아주 당연한 듯 남자 몫이 됐다. 그녀들은 해장국을 쏘겠다는 말과 함께, 마치 '우리 때문에 이렇게 재밌게 놀고 있잖아요?'라는 표정으로 계산대를 스쳐 지나갔다. 1차보다 훨씬 많은 2차 술값을 여자들에게 내라고 하기도 애매했고, 돈을 보태라는 말은 찌질해 보일 게 분명했으므로 별 수 없이 계산하는 남자들이었다.
3차 해장국집. 소주는 못 먹는다던 여자2·3은 자리에 앉자마자 소주를 시켰다. 남자4와 여자4가 어느 순간 사라졌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여자2·3은 남자들에게 "우리 애프터 클럽 갈래요?"하고 물었다. 남자 2·3은, 그녀들의 말이 '클럽에 가서 좋은 자리를 잡어! 그럼 거기 있는 샴페인 일체를 증발시켜줄게!'라는 의도를 내포할거라 짐작하면서도 함께 자리를 빠져나갔다. 남자1은 여자1과 둘이 남게 된 상황이 마냥 즐거웠다.
다음 날, 남자들은 어제 같은 최악의 미팅은 없었다며 서로의 엔딩을 궁금해 했다. 미팅녀들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다 해도 어제 쓴 60여만 원의 금액이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씁쓸한 15만원의 회비 공지만 남았다. 아, 마지막으로 펼쳐진 논쟁은 '4명 중 누가 가장 호구였을까?'였다.
클럽에 간 남자2·3은 예상대로 술을 쐈다. 그런데 거기서 아는 오빠들을 만난 여자들은 다음에 또 놀자는 말과 함께 사라져 버렸단다. 결국 둘은 김밥에 라면을 먹고 집에 귀가. 남자4는 여자4와 키스를 했단다. 하지만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서울에서 경기도 일산까지 왕복택시비를 들인 결과라고 하니 더욱 안타까워보였다.
드디어 궁금했던 남자1의 차례. 둘이서 소주를 먹는데 여자1의 전화가 계속 울리더란다. '부모님인가?' 생각했었는데 전화를 받고 온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관이었다. "남자친구 때문에 이제 가 봐야할 것 같아요. 결혼 전에 더 놀고 싶은데! 오늘 즐거웠어요" 해장국집 계산을 마치고 쓸쓸하게 버스를 기다리던 남자1은 여자1의 번호를 지워 버렸다.
앵커 : 네, 이상과 같은 상황에 대한 남자들의 공통적인 제보가 빗발쳤는데요. 이거 진짠가요?
해설자 : 물론 누군가에겐 저런 만남 자체가 생소할 수 있겠지만, 분명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무슨 술을 마시고 어떻게 놀았다는 게 아닙니다. 형태가 다양하다해도 미팅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거든요. 대다수의 여자들이 말하는 최악의 미팅은, '재미도 없는데 더치까지 해야 했던 미팅'이라고 합니다.
재밌는 걸 공유한다면 재미없는 것까지 공유해야 하는 게 인지상정임에도 말이죠. 남자들도 문제입니다. 체면상이 됐든, 한 가지 욕망에 이끌려서든, 더치 하자는 이야기를 절대 하지 못하거든요.
미팅은 감정을 쌓기 위한 연애나 소개팅과는 다릅니다. 더치 이야길 꺼내는 게 결코 치사하거나 찌질하지 않단 걸 남녀 모두 깨달아야죠. 자, 건강한 미팅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주선자가 책임지고 말하는 걸로 정합시다. 2차 술자리로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1차 술자리, 혹은 양심상 지나치게 많이 나온 술자리 계산은 남녀 모두 회비를 거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