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능력은 당신의 액세서리가 아니다

Style M  |  2014.11.16 11:11  |  조회 823

[김정훈의 썸⑱] 더치페이에 관한 남녀의 입장 차이


썸. 묘한 단어가 등장했다. 짜릿한 흥분과 극도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롤러코스터 마냥, 탈까 말까 망설여지기도 하고. 간질 간질. 정체를 알 수 없는 간지러움에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랑만큼 떨리지만 이별보다 허무한 '썸'. 그리고 편식남 편식녀를 비롯한 그 밖의 다양한 '썸'에 대한 연애칼럼니스트 김정훈의 토킹 릴레이.



영화 '캐치미' 스틸컷/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더치페이를 얘기하기에 앞서 '돈 없이 연애할 수 있을까?'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당연히 돈 없이 연애하긴 어렵다. 연애편지를 쓰는데도 볼펜과 편지지를 사야하고 전화나 채팅을 하려면 통신비가 든다. 검색창에 '맛 집, 오빠랑'이란 단어만 쳐도 무수히 많은 커플들의 데이트 코스가 검색되는데 하루 종일 무료급식소만 찾아다니는 연애를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오해하지는 말자. 돈은 연애의 충분조건일 뿐 필요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먹고 살기 힘든 하루. 가난한 연애는 미담으로도 치부될 수 없는 치열한 현실 속에서 데이트비용 부담에 대한 문제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더치페이 논쟁을 꺼내는 남자들에게는 '찌질하다', '계산적이다' 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남자들이 봉이냐, 대접만 받으려는 여자들이 더 문제다 등 남녀간 갈등의 골도 깊다. 물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데이트 비용은 남성이 지불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는 경쟁의 본능을 가진 남성이 선택의 본능을 가진 여성에게 먼저 데이트를 신청하는 상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여성의 환심을 사려면 돈을 빌려서라도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은 게 남자다.

그런데 문제는 이같은 남자들의 심리, 남성성의 신화를 이용하는 여성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여성이 먼저 데이트를 신청해놓고도 굳이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데이트 비용까지 지출할 경우 관계 형성에 불리해진다는 해괴한 논리가 숨어 있다. 여성을 위한 남성의 무조건적 희생이야 말로 값진 사랑의 결실이며, 그 결실을 대접받는 공주가 되기 위해 여성이 지녀야 할 것은 희생이나 배려심이 아닌 자존심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자존심을 버리려고 할 때 그걸 지켜주는 사람이 당신을 진짜 사랑하는 거다. 그걸 확인 하기 위해서라도 희생은 쓸모없는 게 아니다.

물론 가짜 공주들이 양산되는 것엔 남자들의 책임이 크다. 아름다운 외모에 휘둘려 그녀들의 부름에 충실히 응하는 남자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오빠, 나 배고파. 친구들 만나기 전에 나랑 밥 먹자", "나 친구들이랑 있는데 잠깐 올래요?"라는 여성의 연락을 받고 달려나가 지갑을 여는 난쟁이들이 있기에 공주는 하루하루를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난쟁이는 당신 외에 여섯 명이 더 있을지도 모르며, 그녀가 난쟁이와 키스할 일은 절대 없다.

본론으로 돌아와 더치페이 문제가 중요한 것은 주객의 전도 현상 때문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주체자의 도구로 이용되어야 할 돈이, 그 표현을 받는 객체의 가치를 높여주는 기능을 하는 데 치중되는 것이다.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쓰이는 돈에 더치페이의 기준을 적용하는 건 다소 말리고 싶지만, 그게 아니라면 더치페이를 요구해도 된다. 사랑의 감정이 생겨날지 불투명한 소개팅이나 미팅 자리에서, 감정이 채 생기기도 전에 희생을 바라는 건 이기적이다. 즐거운 시간을 함께 공유했다면 그 부담도 나눠 갖는 것이 옳다. 상대에게만 부담을 강요하면서 그 희생을 진정성과 연관짓는 언행을 해선 안된다.

대우받는 기쁨은 즐겁다.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다. 개개인만 놓고 보면 희생을 즐기는 여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유독 여성들이 더치페이의 논쟁에서 파렴치범으로 치부되는 것은 그녀들이 집단을 이뤘을 때의 문제가 남아있어서다. 여성들의 수다에선 남자의 경제적 능력이 액세서리처럼 작용한다. 어떤 남자를 만나고 그 남자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느냐가 마치 학벌, 토익점수, 직장이나 연봉처럼 경쟁의 도구로 쓰이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수다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남자의 수다]
여자 친구에게 지갑을 선물 받은 민수. 친구들을 만났다. 테이블에 일부러 지갑을 꺼내 놓았지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민수 역시 굳이 먼저 자랑하긴 낯뜨겁다. 그러다 한 녀석이 "어? 지갑 샀냐? 예쁜데?"라고 말을 했다. '드디어 자랑할 순간이 왔구나!'하고 회심의 미소를 띠는 민수. 그런데 친구들의 반응이 그다지 뜨겁진 않다. 심지어 "넌 근데 네 여자친구 생일에 뭐 사줬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꽤 많이 줬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갑보다 비싸진 않은 것 같다. 친구들의 야유가 시작됐다. 뭐 해주지도 않고 비싼 걸 받은 이 양아치 같은 놈아.

[여자의 수다]
남자친구가 사준 귀걸이를 착용하고 친구들을 만난 아영. 자랑을 시작 하려는데 막 도착한 다른 친구가 신상 가방을 들고 들어온다. 친구 4명의 시선은 일제히 가방으로 쏠린다. "그 가방 뭐야?" "오빠가 사준거야?" "예쁘다~부럽다~"라며 질투 반 부러움 반의 시선을 던지는 친구들. 아영은 남친에게 받은 귀걸이가 왠지 초라해지는 기분이다. 그래도 예쁘다며 칭찬해주는 친구들 덕택에 조금 기분이 풀리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물었다. "그런데 너흰 남친 생일 때 뭐 사줬어? 내 남친 담주에 생일인데 뭐 해주지?"

가방을 받은 친구는 정성스레 케잌을 만들어 줬단다. "와, 남자친구 좋아했겠다. 진짜 정성 대박! 오빠도 멋지다. 너 정성 제대로 받았으니까 이렇게 예쁜 가방도 사준거 아냐~ 부럽다~" 대답을 미루던 아영이가 남친에게 준 선물을 이야기 했다. 귀걸이와 거의 같은 가격의 선물이었다. 그 때부터 친구들의 질타가 시작된다. 좀 전까지 예쁘다며 쳐다보던 부러움의 시선도 사라진 지 오래다. 1:1 교환은 절대 하면 안 된다는 강의가 시작된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이야기는 잠시, 남자친구에게 받는 사랑을 경쟁하듯 이야기 하며 행복함을 과시한다.

물론 일정한 신뢰가 형성된 이후에는 여성이 훨씬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자의 표현 없이 스스로 그 신뢰를 형성하는 여자는 드물다. 그 과정에서 더치페이를 운운하는 남자에게서 여성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조건 없는 사랑이 아니라 계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지도 모른다. 남자도 마찬가지 생각을 갖고 있단 걸 알아야 한다. 조건 없이 첫 만남에서부터 배려를 베푸는 여자가 훨씬 매력적이라는 사실, 그런 여자들이 흔치 않는 세상에서 더치페이 혹은 그에 준하는 배려를 보여주는 여자는 엄청난 희소가치가 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사실이 있다. 20대 초반이 아닌 이상 당신의 리액션을 바라지 않고 투자하는 남자는 바보가 아닌 선수일 확률이 높다. 그의 능력이 당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그가 당신을 정신적, 육체적 소비대상으로 여긴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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