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당신이 그에게 거절당한 이유…"자기, 나 사랑해?"

Style M  |  2014.11.16 11:11  |  조회 953

[김정훈의 썸⑲]섹스란 '사랑하는 사람과의 즐거운 놀이'다


썸. 묘한 단어가 등장했다. 짜릿한 흥분과 극도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롤러코스터 마냥, 탈까 말까 망설여지기도 하고. 간질 간질. 정체를 알 수 없는 간지러움에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랑만큼 떨리지만 이별보다 허무한 '썸'. 그리고 편식남 편식녀를 비롯한 그 밖의 다양한 '썸'에 대한 연애칼럼니스트 김정훈의 토킹 릴레이.


영화 '나의 PS 파트너'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19화다. 기념 삼아 '19금'에 해당하는 섹스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마침 한 매체로부터 의뢰받은 기사감수 역시 같은 맥락의 주제인 '남성의 성욕이 떨어지는 순간'에 대한 것이었다. 기자가 생각한 몇 가지 케이스(지쳤을 때, 화가 났을 때, 스트레스가 많을 때) 외에 추가할 사항을 묻는 것 이었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남자들만 모인 카톡 채팅방에 도움을 요청했다. "너흰 언제 섹스하기 싫어지냐?"

남자들의 대답을 공개하기 전에 반대의 경우를 먼저 얘기해야겠다. "여자들이 섹스하기 싫은 순간은 그럼 언제일까?"

"말이 많을 때죠. 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되지 쓸데없이 야한 말은 왜 늘어놓는건지", "저도 말 많은 남자 싫어요. 침대 위에선 몸으로 말해야죠", "정말로 컨디션이 안 좋은데 자꾸만 하자고 할 때", "자기 만족만을 위해 섹스하려 할 때요. 혼자서 절정에 도달하면 끝인가", "늘 하기 싫어요", "개콘이나 무한도전을 보며 신나서 히죽거리는 표정을 본 직후요. 조인성이라고해도 섹시하지 않아요"…(진짜?).

여성의 대답을 종합해 보면 키워드는 '배려'다. 아무리 흥분했더라도 자신의 섹스 스타일을 지나치게 강요하면 욕망이 메말라 버린다는 것. 반대로, 굳이 흥분하지 않았더라도 남자의 간절한 배려가 엿보이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여자들이 많았다. 이런 여성들에겐 미안하고 부끄러운 얘기지만 남자들은 다소 직접적이고 적나라하다. 성적 욕구를 느끼는 대상에 대한 취향이 확고하다는 이야기다.

단순히 남녀의 차이로 일반화하긴 어렵다. 여자는 감정, 남자는 자극이라고 양분화하는건 역차별의 일종이다. 경험이 중요하다. 경험이 많을수록 자극의 역치 또한 올라갈 테니까. 어쨌거나 남자는 섹스 할 장소를 찾고 여자는 구실을 찾는 한국에선 그들의 성경험 빈도가 그녀들보다 훨씬 많은 것이 사실이다.

늑대들의 실제 카톡 대화를 그대로 공개하자니 엄청난 비난이 쏟아질 것 같기에, 다소 순화해서 공개한다. 가장 많이 나온 대답 순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1. 몸에서 불쾌한 냄새가 날 때
2. 제모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3. 한창 분위기 좋은데 "사랑하냐"고 물을 때 (또는 "오빠는 내 어떤 부분이 좋아?"라고 물을 때)
4. 노리액션(No reaction). 여자가 전혀 아무 움직임도 없을 때
5. 내가 싫어하는 애무를 할 때 (또는 애무가 대단히 서투를 때)
6. 싫어하는 외형적 특징이 눈에 들어올 때(짧은 손가락, 등 뒤에 나 있는 커다란 점, 발목 뒤 각질, 짙은 인중 등)
7. 기타 : 사정 직후, 어두운 곳과 밝은 곳의 외모가 극명하게 차이가 날 때, 뭐 갖고 싶거나 사고 싶단 이야기를 하기 시작할 때 등

대답을 종합해 보면 '남자는 시각과 후각에 약하다'는 이론이 틀리지 않다. 재밌는 대답은 3번이다. 남성은 섹스시 굳이 사랑을 확인하려는 여성의 태도에 엄청난 부담을 느낀다. 평상시 온순하던 남자가 침대 위에선 짐승남으로 돌변하고, 우락부락한 터프가이가 의외로 귀여운 섹스스타일을 가졌단 걸 확인 한 적이 있는가?

남성들에게 침대라는 몇 평 안 되는 공간은 단순히 옷을 벗어 던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상시 강요받던 다양한 역할의 옷을 벗어던지고 기저의 욕망을 마음껏 펼치고 싶은 곳이다. 그런데 그 순간 "사랑해?"라는 말로 두툼한 패딩 점퍼를 입혀버린다면 그 누가 달가워할까.

이런 형태의 질문을 싫어한다고 해서 남성이 여성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가 당신을 단순한 섹스의 대상으로 여겨서도 더더욱 아니니 서운해 하지 말길. 당신이 섹스로 그와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다면 그는 '사랑하는 당신'과 섹스라는 놀이를 즐기고 싶다. 섹스가 놀이라는 말은 수년전 가수 박진영씨 역시 언급한 적이 있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대단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기억된다.

'놀이'라는 단어에 지나친 혐오감을 받는 사람에겐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개념을 설명하고 싶다. 인간에게 있어 생각하는 것(호모 사피엔스)이나 만드는 것(호모 파베르)만큼 중요한 것은 놀이하는 것이다. 유희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란 얘기다. 감정을 확인하려는 태도엔 진정성의 가치를 부여하고, 감정을 쌓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놀이라는 개념엔 지나친 거부감을 표시하는 것은 지나친 편견이 아닐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남성이 여성보다 섹스에서 자유롭다. 그래서 생각하는 섹스보다 유희적인 섹스에 익숙한 성별이 남자란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다. 그들에게 섹스란 반드시 재미가 있어야 한다. 감정보다 그 외의 제반사항, 즉 시각적이나 후각적인 것들이 여전히 예민하게 작용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여성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면 남성들이 그저 단순하게 1차원적 감정에만 충실할거란 생각이다.

의외로 남성들은 복잡하다. 그들이 흥분하면 여성 만큼이나 상상력의 영역도 커진다. 당신이 야한 속옷이나 특정한 코스프레를 해서 남성을 흥분시켰다면, 그것은 그의 눈을 즐겁게 한 게 아니라 뇌를 즐겁게 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공간지각 능력 등을 십분 발휘해 당신의 비주얼에 맞는 상황을 상상하고 마음껏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더 많이 흥분한다.

야동이 영원한 남성의 파트너인 것도 이러한 지점들을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모니터 속 그녀는 제모에 늘 신경을 쓴다. 불쾌한 냄새 따위도 없다.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알아서 흥분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사랑을 확인하려고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취향에 따라 수많은 선택권이 있다는 것이 야동의 매력이다.

야동 속 여자처럼 노력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를 유혹하고 싶다면 적어도 그가 야동을 찾아헤매는 정도의 노력은 해줘야 한다. 물론 문제는 또 있다. 이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과 놀이를 하고 싶어 하는 건지, 그저 놀이만 하고 싶은 건지 정확히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썸과 엔조이의 경계 말이다. 그 해답은 다음 주에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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