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시대, 67년 만에 끝…처벌 못하지만 혼란 계속[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이은 기자  |  2025.01.01 06:00  |  조회 3379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21년 1월 1일. 임신 중단을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이른바 '낙태죄'(형법 제269조 자기낙태죄, 제270조 동의낙태죄)가 사라졌다.

'낙태죄'란 약물 등의 방법으로 태아를 인위적으로 모체 안에서 죽이거나 조산시킴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다. 한국은 형법이 제정되던 1953년부터 2020년까지 임신 중단을 범죄로 규정해왔다.

임산부가 약물 등으로 스스로 임신 중단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았으며, 임산부의 동의를 받아 임신 중절 수술을 한 의사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졌다.

1950년 6·25 전쟁 이후 인구가 많아야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국가주의적 사고가 팽배했다. 당시 낙태를 범죄로 간주한 것은 인구 증가를 위한 수단 중 하나였다.

이로부터 20년이 지난 1973년에서야 임신 중단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이 제정됐다. 산모의 건강이 위태롭거나 태아가 모체 밖으로 나와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 유전병이나 전염병, 강간·준강간 등으로 인한 임신, 혈족·인척 간의 임신 등 5가지 예외적인 경우엔 임신 중단을 허용했다.

이를 제외한 모든 임신 중단이 처벌 대상이었다. 이러한 예외적 사유에 해당하더라도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야 했고, 임신 24주 이내에만 임신 중단이 가능했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보다는 인구 증가를 공익으로 보는 인구 정책, 태아의 생명권 존중 등의 논리가 우선 고려됐던 셈이다.

이후 2000년대까지 낙태 허용 사유에 사회·경제적 사유를 추가하는 방안, 비혼 여성의 임신 중단을 합법화하는 방안 등이 지속해서 논의됐지만 단 한 번도 형법과 모자보건법의 해당 부분에 대한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7년 만에 뒤집혔다…'낙태죄' 합헌→헌법불합치 판결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사진=홍봉진 기자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사진=홍봉진 기자
낙태죄를 둘러싼 논쟁은 1953년 법 제정된 이후 66년 동안 이어져 왔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 중 어느 쪽을 우선하느냐의 문제였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조항의 위헌 여부를 처음 판단한 시기는 2012년이다. 그해 8월23일 헌법재판소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보다 태아의 생명권 보호가 중요하다며 낙태죄가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낙태죄 폐지'가 화두로 떠오른 것은 2016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건물 화장실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이후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부터다.

임산부 요청을 받고 임신 중단 시술을 했다가 기소된 한 산부인과 의사가 2017년 2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면서 낙태죄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됐다.

그로부터 2년 2개월여 만인 2019년 4월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낙태 처벌 조항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태아의 생명권보다 여성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임신·출산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더 중요하게 본 것이다. 7년 전 판결을 뒤집는 결과였다.

재판관 9명 중 헌법불합치 4인, 단순 위헌 3인, 합헌 2인 의견이었다. '위헌'의 경우 해당 조항은 즉시 효력을 상실하지만 '헌법불합치'는 일정 기간의 유예기간이 주어지며, 그 기간까지 형법 조항은 유효하다.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국회의원에게 2020년 12월31일까지 법안을 개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국회는 그때까지 법안을 개정해야 했으나 개정 법안이 발의되지 않아 2021년 1월1일 낙태죄는 효력을 상실했다.

지난 21대 국회에는 임신 중단에 있어 임신 주수 기준을 아예 폐지하는 법안부터 24주까지는 임신 중단을 허용하는 안까지 총 7건의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어떤 개정안도 표결되지 못했고, 결국 논의 없이 계류하다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낙태죄가 효력을 상실한 지금은 임신 중단을 선택하더라도 임산부, 의사를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낙태죄 폐지 5년, 대체 법안은 '아직'…혼란 계속


2021년 헌법재판소가 국회에 대체 법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지만 약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낙태죄를 두고 종교계와 여성단체, 의료계 등의 견해차가 커 국회에서도 '눈치 보기'가 계속된 탓이다.

의료계에선 입법 공백으로 인해 낙태 기준이 모호한 상황이 이어지면 영아 살해 수준의 낙태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지난 6월 한 20대 여성 A씨가 유튜브에 36주 태아 낙태 경험담을 담은 영상을 공개하면서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번 논란이 낙태죄 폐지 이후 길어지는 제도 공백과 무관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잘못된 정보를 얻기 쉽고, 병원마다 판단, 해석이 달라 제대로 된 도움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임신 중단을 원하는 여성의 건강도 사각지대에 놓인 상황이다. 낙태죄는 폐지됐지만, 알약 형태의 먹는 유산 유도제는 여전히 국내 판매가 금지돼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제약사가 신청한 시판 허가 절차가 잠정 중지됐기 때문이다.

이에 의사 처방 없이 비공식적인 경로로 '낙태약'을 구입해 복용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 약은 임신 초기가 지난 뒤에 복용할 경우 낙태 실패 확률이 높고 부작용도 우려되지만, 음지에서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다. 가짜 약이 거래될 가능성도 높다.

이때문에 여성의 안전한 임신 중단을 위해 유산 유도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7월 보건의료인과 시민단체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유산 유도제 필수의약품 지정 및 도입과 관련한 세 건의 진정서를 접수했으나 식약처는 "유관부서 간 협의가 필요하며 사회적 합의가 없기 때문에 반려한다"며 세 건 모두 반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세계 최초로 헌법에 '낙태할 자유' 담았다…국민 80% 찬성


지난 3월 4일 프랑스 의회가 국가 헌법에 '임신 중단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 개정안을 승인하자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에는 '내 몸은 내 선택'이라는 문구가 띄워졌다. /AFPBBNews=뉴스1
지난 3월 4일 프랑스 의회가 국가 헌법에 '임신 중단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 개정안을 승인하자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에는 '내 몸은 내 선택'이라는 문구가 띄워졌다. /AFPBBNews=뉴스1
이런 가운데, 프랑스는 지난 3월4일 세계 최초로 임신 중단 자유를 보장하는 조항을 헌법에 담았다. 네덜란드·독일·캐나다 등이 법으로 임신 중단을 허용하고 있지만 헌법에 '낙태할 자유'를 담은 국가는 프랑스가 처음이다.

프랑스 상·하원은 합동 회의를 열고 헌법 34조에 '여성이 자발적으로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조건을 법으로 정한다'는 조항을 추가하는 헌법 개정안을 찬성 780표, 반대 72표로 가결했다. 양원 의원 925명 중 902명이 참석했으며, 개헌에 반대했던 제라르 라셰 상원 의장 등 50명의 기권표를 제외한 852표 가운데 찬성표가 5분의 3 이상인 의결 정족수(512명)를 훌쩍 넘겼다.

이날 표결 직전 교황청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있을 수 없다"는 반대 성명을 내는 등 반대 여론도 있었으나 각종 여론 조사 결과 프랑스 국민 80% 이상이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찬성 여론이 우세했다.

프랑스는 성범죄 피해 여부 등과 관계 없이 임신 14주 이내 임신 중절 수술을 허용하는 등 임신 중단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된다. 그럼에도 헌법을 개정한 이유는 법원 판결이나 의회의 법률 제·개정 등으로 여성의 낙태권을 후퇴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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