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게장형' 결혼 vs '양념게장형' 결혼…당신의 결혼은?

Style M  |  2015.05.22 10:05  |  조회 961

[김정훈의 별의별 야식-8] 꽃게장과 간장게장 - 당장 먹거나, 숙성해서 먹거나


누구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을 것 같은 날, 마음껏 연애상담을 할 수 있는 편안한 술집이 있다면 어떨까? 공허한 마음과 몸을 채워 줄 요리, 만족스런 연애와 사랑을 위해 먹으면 좋은 음식은 뭐지? 남녀가 섹스 전과 후에 먹는 음식은? 이 모든 궁금증이 해결 되는 곳이 있다. 아무에게도 털어 놓지 못했던 은밀한 연애 이야기로 만들어진 맛있는 메뉴가 매주 채워지는 곳. 김정훈 연애칼럼니스트가 이 시대의 편식남·편식녀들에게 추천하는 힐링푸드, 별의별 야(한)식(탁)!


/사진=다이어리알


4~5월은 확실히 결혼시즌인 것 같다. 이번 주말 새신랑이 되는 대학동기까지 포함하면 5월에만 벌써 6번째 부부가 탄생했다. 결혼. 손님들이 내게도 종종 묻는다. 결혼생각은 없냐고. 긴 서사는 생략하고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나는 결혼 대신 이 가게 오픈을 택했다.


결혼을 결심한다는 건 평생 하나의 레스토랑에만 가겠다고 약속하는 것과 비슷하다. 만족스런 음식이 나온다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발길을 끊지 않는 것. 가끔은 화를 내며 뛰쳐나간다고 해도 평생 머무를 레스토랑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는 것. 다시 돌아와 맛있게 식사를 하고 만족스런 음식이 서빙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는 것. 그 일련의 과정이 상당히 귀찮아서 다른 레스토랑에 눈이 가더라도 처음의 약속을 생각하며 의리를 다하는 것. 뭐 그런 것들이 결혼에 앞서 가져야 할 마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난 그런 다짐이 들만한 가게를 도무지 찾지 못했던 거다. 적당한 곳을 선택해 억지로 의리를 만들어 내긴 싫었다. 그런 선언에는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르겠고.


문득 '그렇다면 그런 가게를 내가 직접 만들어야지'라고 마음 먹었다. 내가 원하는 사랑을 완벽하게 주는 사람을 찾는 것보다 내가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편이 더 낫겠다고. 마침 연애상담을 해줘야겠다는 표면적인 구실도 존재했으므로 서둘러 가게 오픈 준비를 해버리게 된 거다.


이런 내 선택의 과정을 손님들에게 몇 번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 박수를 치며 응원하기보다는 이해하지 못하는 손님들이 더 많았다. 결혼적령기의 남자가 결혼 자금을 쏟아 부어 가게를 오픈했다는 건 평범한 일은 아니라고 말하며, 본인이 그렇게 갈구하는 맛에 대한 확신은 있냐고 물어오는 손님이 있었다. 완벽하게 맛있는 걸 만들어 내려하기 보다는 적당히 만족스러운 걸 찾아 그것에 안주하는 편이 더 낫다는 교훈(?)을 던져주는 사람도 있다. 하나의 가게를 향한 100% 온전한 감정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거라 단언하는 사람도 제법 있고. 드라마 미생의 대사를 읊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봤자 결혼, 그래도 결혼이라며.


처음부터 100% 만족감 대신 적당한 안정감이 더 낫다는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다. 믿었던 사랑이 예상과는 다른 결말로 이어지는 것을 수차례 겪으면서 타협한게 아닐까. 또 괴리감이 허무함으로 바뀔 때 즈음(저마다 타이밍은 다르지만 보통 30대가 되면) '조바심'이란 녀석이 나타나 버린다. 다들 본인의 단골 레스토랑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나만 없다는 것에 상실감을 느끼는 것이다.


/사진=Instant Vantage in Flickr


함께 다양한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는 걸 즐겼던 친구들조차 그 재미를 져버리는 걸 보게 되며, 심지어 그 재미를 져버리고 택한 가게가 '겨우 그런 곳에?!'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되면 정체모를 속상함과 억울함마저 엄습한다. 어느 순간 그들과는 대화가 섞이지 않게 되면서부터 '나도 그래야 하나?'라는 조바심이 앞서는 사람들. 적당히 화려하고, 어느 정도 맛은 있고, 그렇게 꾸준히 내 품위를 지켜줄 것 같으면서도 괜찮은 인증샷까지 보너스로 가능한 레스토랑을 찾아내면 '이곳으로 그냥 당첨!'이라 외치게 된다. 그래봤자 레스토랑, 그래도 레스토랑.


그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런 길을 택하는 사람이 있고 나 같은 길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지금 난 결혼에 골인한 그들(아, 오해는 마시길. 이번 주말 대학동기를 포함한 내 주위 사람들은 분명 100%에 가까운 만족감으로 결혼을 했다고 믿는다)과는 다르게 꽃피는 5월에 무얼 하고 있느냐 하면, 꽃게를 손질하고 있다!


5월은 꽃게 철이다. 알이 꽉꽉 차 있고 살이 오른 암꽃게의 철이다. 인간들이 결실을 맺는 계절에 인간이라는 이유로 꽃게의 결실을 탐하는 건 안도현님의 시처럼 무척 슬프고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맛있는 걸 어떡하리. 5월이 지난 꽃게는 가격이 비싸지고, 산란 후엔 살이 빠져 버리므로 이맘때에 꼭 만들어 먹어야 할 음식이 있다. 싱싱한 꽃게를 빠득빠득 잘 손질한 다음 갖은 양념에 재워 먹는 국민 밥도둑, 바로 게장이다. 간장게장을 만들 때 쓰이는 간장으로 양념게장 소스를 만들면 더욱 맛이 좋다. 그래서 새벽부터 수산시장에 가서 꽃게 5kg을 사와서 칫솔로 손질하는 중 이다. 카운터 옆에 놓인 지인들의 청첩장을 보며.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의 차이점이 단순한 양념종류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손질 및 숙성 방법부터 유통기한까지 완전히 다르다. 평균 4일 이상을 숙성시켜 만드는 간장게장용 게는 게뚜껑을 열지 않고 겉만 잘 씻어준 다음 양끝의 뾰족한 부분과 다리 마디끝부분만 적당히 잘라주면 된다. 그런데 양념게장은 껍데기를 분리해서 허파와 모래주머니를 제거하는 등 귀찮은 손질을 더 꼼꼼히 해야 한다. 조리해서 바로 먹거나 2~3일 내에 다 먹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사진=Kelly Sue in Flickr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에도 간장게장형과 양념게장형의 두 가지가 있다는 점이다. 첫 손질은 적당히 하지만 긴 시간 두고 본 뒤 짭짤한 양념이 완전히 베였을 때 선택하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초반부터 섬세하고 빡빡하게 사람을 관찰하고 재단한 뒤 강렬하고 매콤한 맛에 이끌려 빠른 기간 내에 확 해치워 버리는 이도 있다.


보통은 전자의 결혼 타입을 선호하는 것 같다. 후자일 경우엔 '속도위반?' '뭐 그리 급해?' 등의 의문을 한 번씩은 던지니까. 마치 간장게장 맛집에 대해서는 대단히 부각되지만 양념게장 맛집에 대해선 들어본 적도 없고, 그건 그냥 돼지갈비 집의 밑반찬으로 등장하면 환호를 지르는 것과 비슷하달까. 실은 더 싱싱한 상태의 게를 먹는 건 양념게장임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난 두 가지의 게장을 다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딱히 하나의 게장에 치우치진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맛을 다 섭렵하고 진짜 본인이 선호하는 맛을, 그런 연애와 사랑의 맛을 찾아주기 위해 가게를 오픈한 것이니까. 그러기 위해선 이렇게 잡담을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이제 끓고 있는 간장양념을 꽃게에 붓고 다시 그걸 한 번 더 끓이고...아, 간장양념이 남으면 깻잎지 등을 만들어 먹으면 좋다. 곧 오픈시간이니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아직 오픈 안 했…"
"지난 번에 아르바이트 할 거냐고 물었죠?"


내 말을 끊고 다짜고짜 말을 건낸 여자. 멘보샤(별의별야식 5화 참고)를 만들었을 때 친구와 함께 왔던, 엄청난 연애의 고수임을 짐작케 하던 그 웨이브녀가 나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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